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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혹한기훈련 上편, 혹한기훈련 中편, 혹한기훈련 中-2편, 혹한기훈련 中-3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혹한기훈련 편을 작성하다보니 생각보다 무척 길어지고 있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신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지난 이야기를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지난 겨울, 우리 부대는 혹한기훈련을 떠났다. 명지령과 진내미 고개라는 사상 최악의 행군코스를 걸어 12시간여만에 도착한 이름 모를 야산에서 숙영지를 편성하였다. 깊은 새벽, 배일병과 함께 숙영지 근무를 서고 있는데, 소대장 텐트쪽에서 정체불명의 소리가 나는데.....
"텐트까지 70보!"
나는 저 멀리 보이는 소대장 텐트를 향해 걸어갔다. 아직 아침해가 뜨지 않았기에, 전방은 어두컴컴하였다. 분명히 소대장 텐트 앞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화장실을 가는 인원이라면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낼텐데, 아무런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
"텐트까지 30보!"
무전기의 볼륨을 낮추고는, 액정화면의 불빛을 제거하였다. 혹시 대항군이라도 있다면, 무조건 제압하여야만 했기에, 우리의 위치가 노출되면 안되었다. 잔뜩 긴장한 배일병은 나의 신호에 즉각 공포탄을 발포하기 위해 방아쇠에 검지를 걸고 있었다.
"텐트까지 10보!"
미세하게나마 분명히 들린다. 산짐승도 아니고 분명히 사람이 내는 신음소리였다. 아니 거친 호흡소리에 가까웠다. 이정도 거리면 보일 법도 한데, 보이지는 않았다. 전투조끼에 달려 있는 LED전등을 꺼내고는 점등할 준비를 하였다. 배일병에게 수신호를 한 뒤, 쏜살같이 소대장 텐트 앞으로 뛰어갔다.
"꼼짝마! 움직이면 쏜다!"
"뭥미?"
"이일병인데 말입니다!"
"왜 밖에서 자고 있냐?"
"텐트 밖으로 밀려난 거 갔습니다!"
그랬다. 정체불명의 소리는 다름아닌 노일병의 호흡소리였다. 자다가 추운지 본능적으로 한번씩 큰소리로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마 텐트 안에서의 자리다툼에서 밀려난 거 같았다. 소대장 텐트에는 소대장, 전령, 1총사수, 1총부사수 총 4명이 자고 있었다. 3명만 자도 꽉 차는 텐트이기에 4명은 꽤나 비좁았다. 자연스레 이일병은 누군가의 발길질에 밀려 텐트 밖으로까지 상황에 이른 것이었다.
그나마 침낭안에 있어서 아직까지 숨이 붙었다. 말이 좋아 발길질이지, 이건 살인죄나 진배없는 상황이었다. 침낭 주위에는 이일병의 입김으로 서리가 하얗게 맺혀 있었다.
"눈 먹는 놈에 이어 눈밭에서 자는 놈이라?"
"..........."
"그래도 아직 숨은 붙어있군!"
"어떡합니까?"
"조금 있으면 기상시간이잖아! 걍 냅둬! 어차피 들어갈 자리도 없네!"
"역시 악랄하지 말입니다!"
그렇게 혹한기훈련의 둘째날 아침이 밝았다. 다행히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아침을 마치고,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텐트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당시 우리중대가 주공으로 선정되어 최전방에서 공격을 하여야만 하였다. 괜히 선봉중대가 아니었다.
문득, 사진을 보다가 생각났다. 당시 연대장이셨던 곽대령, 매우 멋진 분이셨다. 이등병으로 군생활을 시작하여 하사, 단기사관후보생을 거쳐 대령까지 진급하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나이가 지긋하신 지휘관이셨다. 마치 슬램덩크에 나오는 안감독 삘이었다.
하지만 당시, 우리 연대는 연이어 줄줄이 터진 자살사고로 인해 연일 매스컴에 오르락 내리락 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자연스레 연대장의 입지도 좁아질 수 없었다. 사병 출신이셔서 그런지, 유난히 병사들의 마음을 잘 이해하여 주셨는데, 정말 가슴이 아팠다.
대대장이 우리를 혹사시킬 때마다 연대장이 친히 우리를 보호해주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그가 연대를 떠나는 날, 우리들은 모두 영외도로에 나와 떠나는 그를 배웅하였다. 씁쓸하게 떠나시는 그의 모습이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였다. 그렇게 노장은 떠났다.
그리고 방금, 무심코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는데, 우리의 노장은 작년에 단기사관후보생 최초로 장군으로 진급하였다는 기사가 나왔다. 기사를 클릭해보니 사진까지 떡하니 나왔다. 장군으로 진급하시면서 회춘하신건가? 사진 속의 노장은 더욱 젊어지셨다. 물론,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나는 그를 기억하며 그 때의 고마움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그날 오후, 연대장은 주공인 우리에게 패스트리 빵을 선사하며 기필코 목표지점을 탈취하라고 하였다. 작전개시 시간은 자정이었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우리는 23시 30분, 텐트에서 나와 신속하게 전장정리를 하였다. 다시 찾아온 강원도의 밤, 미칠듯이 추웠다. 땅에 박힌 지주핀은 땅과 함께 꽁꽁 얼어있었다. 낑낑대며 지주핀을 뽑고는 얇게 얼은 텐트를 접어서 다시 군장에 결속하였다.
"현시간부로 거점 공격을 실시한다!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전원, 목표지점에서 만나자!"
중대장의 훈시가 끝나고, 우리는 야간기동을 실시하였다.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들의 눈동자만 반짝거렸다. 행여 대항군에게 노출될까봐 일체의 조명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앞 전우의 등만 의지하며 깊은 산 속을 걷고 또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새 우리의 등 뒤로 아침을 알리는 태양이 떠올랐다.
그리고 전방에는 목표 지점이 무명 고지가 보였다. 곧 이어, 연막탄이 터지고 우리는 소총수답게 고지를 향해 돌격하였다. 대항군 또한, 공포탄과 훈련용 수류탄을 던지며 격렬히 저항하였다. K-3 기관총 사수인 나는 공포탄을 쏠 수 없기에, 열심히 입총을 쏘았다. 입총이란, 말그대로 입으로 총소리를 내는 것이다. 사실 폼은 하나도 안난다!
"타타타탕탕탕탕탕!"
"고지를 점령하였다!"
훈련통제관의 확인을 받으며,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였다. 잠시후, 우리들은 목표 고지에 자랑스런 선봉중대기를 흔들며, 공격임무를 완수하였다. 그리고 상황이 종료되었다.
점령한 고지에서 출발할 때, 보급병이 나눠 준 전투식량을 꺼내서는 식사를 하였다. 전투식량은 이미 식을대로 식었고, 밥알은 퉁퉁 뿔었지만, 임무를 완수한 탓일까?
정말 꿀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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