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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동원훈련에 관한 글입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지난 달, 집으로 돌아오니 현관문에 집배원 아저씨가 붙혀 놓고 간 쪽지가 눈에 띄었다. 부재 중이라 경비실에 맡겨 놓았으니 찾아가라는 내용이었다. 등기라? 설마 상품권이라도 온 걸까? 설레는 마음으로 부리나케 경비실로 내려갔다.
"등기 주세요!"
"옛다!"
"아나! 어흐흑흑ㅜㅜ"
경비아저씨가 건네 준 등기의 출처는 병무청이었다. 올 초에 예정되었던 동원훈련을 연기하였던 나로서는 당연히 동미참훈련을 예상하고 있었다. 여기서 동원훈련이란 2박 3일간 해당 부대에 입소하여 먹고 자며 훈련을 받는 것이고, 동미참훈련은 집에서 출퇴근 하면서 받는 훈련이다.
당연히 출퇴근 하면서 받는 동미참훈련이 더 좋다. 오후에는 집으로 돌아와서 편히 잘 수 있으니 말이다. 물론 동미참 훈련은 6시간짜리 향방작계를 2회 더 받아야 되지만, 어쨌든 부대에서 잠 자는 불상사는 없으니 양호한 편이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시범적으로 몇몇 부대에서 나같은 녀석들을 친절하게도 다시 불러서 입소시킨다는 것이다.
"정녕 가야만 하는 건가!"
아쉽게도 가야만 한다. 이미 연말을 향해 달리고 있는 이 시점에서 더이상 연기는 무의미하였다. 자칫 고발을 당할 수도 있고, 연기할 건수도 없었다. 하루하루 입소 날짜를 기다리며 마음의 준비를 하였다. 이건 마치 다시 군대가는 기분이었다.
입소 당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전투복과 전투화를 챙겼다. 지난 주 무척이나 추운 날씨로 인해 깔깔이와 야상까지 입어야만 했다. 그리고 밤에 있을 츄리닝과 세면도구까지 챙기니 짐이 꽤나 많았다. 문득 현역시절에 경험하였던 동원훈련이 떠올랐다. 당시 선배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죽을 맛이었다.
2009/04/27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동원훈련
현역인 나는 그깟 2박 3일이 뭐가 힘드냐고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절실히 이해가 되었다. 민간인 신분으로서 군복을 입는 거 자체가 고역이었다. 운동화보다 3, 4배는 무거운 전투화를 신으니 마치 족쇄를 찬 기분이다. 어기적거리며 해당부대로 이동하였다.
위병소에 도착하니, 현역군인들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입소자들의 온도를 체크하고 있었다. 재입영훈련이다보니, 입소자들은 평소 때보다 수가 훨씬 적었다. 이 점은 마음에 든다. 씻을 때도 편하고, PX이용시에도 편하고, 밥 먹을 때도 편하고, 잘 때도 편하고, 무조건 적은게 최고다!
원래는 연병장에서 물품 검사 및 보급품 수령을 해야 되지만, 센스있는 부대관계자의 배려로 인해 나의 보급품은 이미 내무실에 셋팅되어 있었다. 간첩이 예비군 훈련 받으러 오지는 않지 않겠는가? 조교는 나의 신분증을 확인하고는 3내무실로 이동하라고 하였다.
"선배님 이 자리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내무실에는 이미 도착한 예비역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패닉상태로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관물대에 가지고 온 짐을 던져 넣고는 그대로 누웠다. 오랫만에 하는 시체놀이였다. 내무실에는 수십여명의 시체와 4명의 조교만이 있었다.
흔히 조교라고 하면, 공포의 상징이지만 동원훈련에서는 그저 귀여운 후배일 뿐이다. 엄밀히 말하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조교이다. 조교의 카리스마는 이미 안드로메다행이고, 통제 전혀 안되는 좀비들을 상대해야 된다. 그렇다고 인상을 찡그릴 수도 없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선배님을 애타게 불러야 된다.
"조교! 우리 언제 집에 보내주노?"
"선배님! 방금 오셨습니다!"
"그래서 안 보내준다는거야?"
"............"
"조교! 뜨거운 물 나와?"
"조교! 오후에 뭐하냐?"
"조교! TV는 왜 없어?"
"조교! PX 언제 열어?"
"조교! 점심 메뉴 뭐야?"
"조교! 여기 배달 안되나?"
우리들은 끊임없이 조교를 불렀다. 바삐 뛰어 다니느 조교를 뒤로 한 채, 내무실를 둘러 보았다. 대개 같은 지역 단위로 훈련을 하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동창을 비롯하여 선, 후배가 꼭 있기 마련인데, 애석하게도 이번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처음 보는 아저씨들이지만, 우리는 전우다. 금새 친해지기 마련이다.
잠시후, 입소자들이 모두 도착하였다. 내 옆자리에는 육군 중위로 전역하신 장교분이 계셨다. 장교의 경우에는 전역후 6년차까지 입소해야 하기에 일반인들보다 2년을 더 받는다. 옆 자리에 있는 중위분은 5년차라고 하였다. 얼핏봐도 왕고포스가 느껴진다. 그렇다고 다른 점은 없다. 우리는 이미 민간인 신분이기에 전쟁이 나지 않는 이상, 그저 편한 동네 아저씨일 뿐이다.
"선배님 총기 수령하여야 됩니다!"
조교는 우리들을 지휘통제실로 안내하였고, 그 곳에서는 간부들이 총기를 분출하고 있었다. 전방에서는 K-2 소총을 사용하지만, 우리는 예비역들이기에 과거에 사용하던 미군 M-16 소총을 주었다. K-2보다 무겁다는 단점을 빼고는 꽤나 괜찮은 소총이다.
군인에게 있어 총은 목숨과도 같은 존재이다. 항상 제 몸 같이, 아니 더 소중하게 다루어야 된다. 하지만, 예비역인 우리에게는 그저 무겁고 걸리적거리는 쇠막대기 일 뿐이다.
"선배님 총 가지고 가셔야 됩니다! 버리시면 안 됩니다! ㅜㅜ"
조교들은 연신 우리들을 챙기며 내무실로 다시 돌아왔다. 다음 순서는 입소식이다. 연대장이 직접 참석하기 때문에 전원 완전군장으로 집합하라고 하였다. 완전군장이라니? 미친 거 아냐? 우리들은 투덜거리며 들은 체 만 체 하였다. 조교들은 집합시간이 다가오니 빨리 준비하라며 울먹이고 있다.
"선배님 빨리 준비하셔야 됩니다! ㅜㅜ"
웃긴 건, 모두 배 째고 안할 것처럼 보여도, 시간이 되면 어느새 일어나서 자신의 군장을 열심히 꾸리고 있다. 참 귀여운 아저씨들이다.
"조교! 이거 어떻게 만드는거야?"
현역시절에는 제대로 된 신형군장과 다양한 보급품들이 있지만, 동원부대는 그만큼 풍요롭지 못하다. 낯선 동원군장을 보며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분명히 현역시절, 내가 직접 동원선배의 군장을 만들어 주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결국 대충 모포 하나 집어놓고는 각만 잡았다.
내무실에서는 집합하라는 방송이 울려퍼지고, 조교들은 기절해있는 우리들을 깨우느라 여념이 없다. 조교의 부축을 받으며 연병장으로 집합하였다. 뒤에서 들리는 조교의 외침!
"선배님 총 메고 가셔야지 말입니다! ㅜㅜ"
"맞다 ㅋㅋㅋ!"
군기라고는 전역할 때 완벽하게 반납해버린 우리들, 과연 무사히 동원훈련을 마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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