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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춘천에 다녀온 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어느덧 시계의 시침은 숫자 2를 가리키고 있다. 새벽 2시, 초저녁부터 잘려고 마음먹었는데 결국 시간은 자정을 훌쩍 넘었다. 일부러 오전부터 몸을 혹사시켰는데 밤이 깊어질 수록 초롱초롱해지는 눈망울, 천상 나는 야행성동물인가보다. 그렇게 이불을 뒤척이기를 수차례, 겨우 잠을 들 수 있었다.
얼마나 잤을까? 6시에 울리게 셋팅한 알람이 힘차게 울린다. 피곤에 쩔은 몸을 겨우 일으키고는 씻으러 갔다. 이제 춘천으로 떠날 시간이다. 전역하고는 한번도 가본 적 없는 춘천, 왠지모를 설레임, 나는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네비게이션을 찍으니, 예정시간이 5시간이나 걸린다고 하였다. 물론 정규속도로만 갔을 때 말이다.
"먼 여정이 되겠군!"
아침 공기를 마시며 힘차게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며칠전부터 추워진 날씨는 도통 풀릴 기미가 없었다. 금호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진입하였다. 이제 북으로 북으로 올라간다. 에어컨의 표시되는 외부온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낮아진다. 한참을 달려 충청도를 지나 강원도로 진입하였다. 어느덧 외부온도는 영하 1도를 표시하고 있었다.
강원도로 진입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눈이 내렸다. 결국, 올해의 첫 눈은 강원도에서 보았다. 하지만 강원도는 이미 눈이 자주 왔었나보다, 산 꼭대기에는 흰 눈이 녹지않고 쌓여 있었다. 그리고 오랫만에 보는 강원도의 고산, 맨날 동네 앞산만 보다가 강원도의 고산을 보니, 숨이 턱턱 막혔다.
출발할 때, 반 정도 차 있던 기름은 어느새 바닥을 드러냈고, 경고등에 불이 들어왔다. 할 수 없이 나는 휴게소로 핸들을 돌렸다. 휴게소로 진입하는 순간, 반가움이 밀려왔다.
"저...저것은?"
주차장 한 켠에 군용차량이 빼곡히 주차되어 있었다. 얼마만에 보는 군용트럭인가? 나는 근처에 차를 세워 본능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렀다. 문득 현역시절 뛴, KCTC훈련이 생각났다. 당시, 우리 대대원 전체는 화천 사창리에서 육군과학화훈련장이 위치한 인제까지 군용트럭을 타고 이동하였다.
2009/04/13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첫 포상휴가
우리를 태운 수십여대의 차량은 춘천시내를 가로질러 중앙고속도로를 통해 훈련장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잠시 휴게소에 들러 휴식을 취하였다. 500여명이 넘는 중무장한 군인들이 휴게소에 나타나자, 시민들은 신기한 듯 우리를 바라보았고, 개중에는 사진도 찍었다.
"전원 화장실만 이용하고, 신속히 복귀한다!"
중무장한 우리들이 휴게소를 이용할 경우, 행여 시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에 온갖 먹거리가 가득한 휴게소에서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화장실만 이용하였다. 바지주머니에는 물건을 사먹을 때 지불해야 된다고 배운 화폐가 분명히 있었는데 말이다. 당시에 나에게는 그저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하였다.
지나가는 꼬맹이 손에 들고 있는 핫바가 세상에서 그렇게 맛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나는 잽싸게 주위를 살피며 핫바 파는 곳을 찾아보았지만, 이미 곳곳에는 간부들이 배치되어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곧 묘책이 떠올랐다. 휴게소에는 시민들만 있는게 아니었다. 휴가 나온 군인들도 있었다. 나는 먹을 것을 갈망하는 눈빛으로 김상병을 바라 보았다.
"김상병님! 핫바 먹고 싶지 않습니까?"
"그게 지금 말이라고 하냐?"
"제가 사오겠습니다!"
"어떻게!"
"대신 제 총이랑 장비 좀 챙겨주십시오!"
나는 잽싸게 군복 위에 걸친 전투조끼와 탄띠, 방독면 등을 풀어헤쳤다. 어차피 휴가자들도 군복을 입고 있기 때문에 장비를 해체하고 부대마크만 손으로 잘 가린다면, 확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휴가나온 군인들은 전투모를 쓰고 있지만, 우리들은 방탄헬멧을 쓰고 있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순간, 화장실로 들어가는 우리 옆 부대, 칠성부대 이등병 한 명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김상병에게 묘책을 설명하고는 같이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칠성부대 이등병은 백일휴가를 가는 길인지,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은 채 용변을 보고 있었다. 우리는 다짜고짜 용변을 보고 있는 이등병 양 옆에 서서는 총구를 들이대며 나직히 속삭였다.
"저기요!"
"이이이벼어엉! 아차! 아니지;; 왜 그래요? 살려주세요! 고향에서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그게 아니고, 저희가 진짜 죽도록 먹고 싶은 게 있어요!"
"네?"
"저기 앞에 파는 핫바 2개만 사다 주시면 안되요?"
"앜ㅋㅋㅋㅋㅋ"
그렇게 우리는 백일휴가 가는 이등병에게 돈을 쥐어주고는 핫바를 사달라고 하였다. 설마 돈만 들고 도망가진 않겠지? 우리는 그의 뒷통수에 총구를 조준하고 혹시 모를 불상사를 대비하였다. 다행히 착한 이등병은 핫바를 사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왔다. 나와 김상병은 연신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가서 한 입에 베어 물었다.
"바로 이 맛이야!"
행여 소대원들이 볼까봐 허겁지겁 입 속에 집어 넣었다. 그때 먹은 핫바가 내 인생에 최고의 핫바가 아니었나 싶다. 잠시 추억에 잠긴 나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주유소로 향하였다. 주유소로 발길을 돌리면서도 다시 한번 감탄하였다.
"각 만큼은 양보할 수 없어!"
앞 뒤로 호송용 레토나 2대와 육공 9대, 총 11대의 군용차량은 한치의 어긋남 없이 일직선으로 엣지있게 주차되어 있다. 군대에서는 차량마저도 각을 심하게 잡는다. 군대만의 타협할 수 없는 자존심이자, 고집이다. 그렇게 그들을 뒤로 한 채, 다시 춘천으로 길을 재촉하였다.
11시 30분,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약속 시간까지는 30분 가량 남았기에 주위를 둘러보기로 하였다. 마침, 맞은 편에 춘천지구전적기념관이 있었다. 잠시 들러서 구경해보기로 하였다. 입구부터 M4 A-3전차가 나를 반겨주었다.
"탐나는데?"
마음 같아선 냉큼 올라타고 싶었지만, 어차피 나를 찍어 줄 사람이 없기에 포기하였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춘천지구전적비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설명문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지난 6.25 전쟁 개전초기 유일하게 대승을 거두었던 춘천지구 전투를 재조명하고, 당시 전선에게 혁혁한 전공을 세우고 산화해간 순국선열의 넋을 기리고 이 소중한 역사적 교훈을 통하여, 우리의 미래를 밝히고자 춘천지구전적비를 세우다.
"저 엣지있는 팔 각도를 보라!"
조국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친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며 신기해 하고 있는 내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 옆에 서서는 조용히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었다. 전쟁없는 시대에 태어나서, 무사히 군복무까지 마치고, 군대이야기를 신나게 연재하고 있는 내 자신을 보니, 정말 복 받은 녀석이다.
어느새 약속시간인 12시가 다 되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휴대폰 벨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액정화면을 확인해보니 그녀였다. 나는 통화버튼을 누르고는 고개를 돌려, 맞은 편에 위치한 건물을 응시하였다. 수화기에서는 달콤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렀다.
"가츠님 어디예요?"
"지금 주차장이예요! 바로 들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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