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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동원훈련 上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연병장에는 입소식 준비를 하기 위해 예비역들과 조교, 교관 등이 위치하고 있었다. 완전군장을 메고 있는 우리들은 한껏 인상을 찡그리며 투덜거렸다. 전역하고는 다시는 메지 않으리라 다짐하였던 군장이 나의 어깨를 더욱 죄어오고 있었다. 중앙 단상에는 대대장이 직접 나서서 예행연습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현역시절에 대대장은 신과 같은 존재였다. 어쩌면 신보다도 더 강력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의 손짓 하나에 완전 무장한 군인 500여명이 한 몸이 되어 천고지가 넘는 산을 평지마냥 뛰어다니곤 하였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 눈 앞에 있는 대대장은 그냥 동네 아저씨 같았다. 친근한 동네 아저씨 말이다.
"야야 거기! 줄 안 맞춰! 퇴소 시킨다!"
대대장의 귀여운 협박에 우리들은 몸을 비비 꼬며 줄을 맞추기 시작하였다. 이미 군기는 빠질대로 빠진 우리들이지만, 몸의 세포는 본능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대충 서 있는거 같은데도 어느새 오와 열이 완벽하게 정렬되었다. 그제서야 만족하였는지 대대장은 예행연습을 시작하였다.
"연대장님께 경례!"
"........."
"아나 이것들! 목소리 봐라! 진짜 집에 갈래! 다시 다시!"
"단결! 백골! 충성! 진격! 필승! 이기자!"
"아나 이것들! 여기가 무슨 지구방위대냐! 충성으로 통일해! 다시 다시!"
"충성!"
힘겹게 예행연습을 마치고서야 대대장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으며 내려갔다. 다시 어수선해진 우리들은 하나같이 짝다리를 짚으며 힘들어 하였다. 순간, 앞 쪽에 위치한 간부들의 몸놀림이 분주하기 시작하였다. 저 멀리 위병소에서 연대장 차량이 진입하고 있었다.
실전에 강한 우리들, 언제 그랬냐듯이 바른 자세와 강렬한 눈빛을 내뿜으며 전방을 향해 응시하였다. 이미 우리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예비역 병장들이 아닌가? 해야 될 때는 확실하게 해준다. 대대장도 이런 우리들을 믿었기에 웃으면서 다독거려 준 것이다. 잠시후, 무사히 입소식을 마친 우리들은 다시 내무실로 들어 왔다.
"아나 입소식 하다가 쓰러질 뻔 했네! 현기증 나네!"
"조교! 환자 보고 좀 하고 와라! 허리 나간거 같애!"
다들 지친 기색이 역력하였다. 침상과 하나가 되어서는 그대로 시체가 되었다. 이런 우리들을 지켜보는 조교들은 그저 한숨만 푹 쉬고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는 대대장이 주관하는 안보교육이 예정되어 있었다. 보통 첫째날은 주로 정신교육을 위주로 실시하고, 둘째날부터 본격적으로 나가서 교육을 받는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시체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오전에는 무척이나 쌀쌀하였는데 오후가 되자 제법 따뜻한 햇살이 내무실를 비추어 주었다. 배도 부르고, 오침하기에 딱 좋았다.
"선배님들 이제 집합하셔야 됩니다!"
"zzZ zZZ ZZZ~♪"
조교들은 바삐 움직이며 우리들을 하나하나 깨우기 시작하였다. 조교들은 시체가 되어버린 우리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고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들을 무척이나 어려워하던 조교들도 이제는 다소 친해졌다고 판단, 가벼운 스킨쉽을 시도하였다. 단잠을 자고 있던 나는 조교의 부드러운 손길에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다들 집합을 하기 위해 연병장으로 나가고 있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한 개비를 꺼내서 입에 물고는 걸어나가는데 등 뒤로 귀여운 조교의 외침이 들려온다.
"선배님 전투모 쓰고 가셔야지 말입니다! ㅜㅜ"
"맞다! ㅋㅋㅋ"
이윽고, 강당에 모인 우리들은 내무실별로 자리에 위치하여 안보교육을 받았다. 유쾌한 입담을 소유하신 대대장의 강의는 제법 재미있었다. 전방에 설치 된 대형 프로젝션에는 반가운 얼굴이 등장하였다.
"앜ㅋㅋㅋ 손발이 오그라드는 거 같애!"
국방부 홍보지원병으로 군복무 중이 토니가 해맑은 표정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름 귀여운 맛이 느껴지는 곡이었다. 우리들은 연신 웃으며 흥얼거렸다. 이어서 예비군의 필요성, 임무 등을 교육 받았다.
사실 많은 이들이 생각하기를, 2년 뼈 빠지게 나라에 봉사했으면 된거지! 도대체 전역하고서도 왜 이런 고생을 해야되는 건가? 불평 불만을 토로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엄연히 우리는 분단국가에서 살아가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국방력의 대다수는 전방에 주둔하고 있다. 후방지역에는 극소수의 지원병력만이 존재할 뿐이다.
북한에는 수십만의 특수전 병력이 언제라도 우리나라에 침투하여 교란을 일으킬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의 주된 임무는 전방이 아니라, 우리나라 후방에 침투하여 주요 거점을 폭파하고, 요인 암살 등을 시도하는 것이다. 평소 매일 지나는 낯익은 건물이 적군에 의해 무너져 내릴 것이고, 가족같이 지내는 이웃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 바로 그순간 필요한 사람들이 우리 향토 예비군이다.
지금은 제대로 군기 빠진 아저씨들이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닥친다면 누구보다도 최선을 다해 자신이 자라온 고향과 가족들을 위해 전투에 임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사랑하는 조국이 있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임무이기 때문이다.
"쵸...쵸큼 멋있는 거 같애!"
2시간여에 걸친 안보교육이 끝났고, 전방의 설치된 프로젝션에는 우리들을 믿는다는 문구가 자랑스럽게 올라왔다. 누군가에게 믿음을 받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작금의 시대는 전쟁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다. 진지한 교육을 받아도 아 그런가보다! 라는 느낌만 들 뿐이다.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어?"
그래도 미래는 어떻게 될 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 아니한가? 지금 이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생사를 건 전쟁이 계속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닥치면, 믿음직스런 우리 예비군들이 최선을 다해 나라를 지켜내지 않을까? 나는 뿌듯해 하며 믿음직스런 전우들을 둘러 보았다.
"이...이녀석들 믿어도 될까? ㄷㄷㄷ"
그렇게 동원훈련 첫날밤이 깊어져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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