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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이등병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5년 3월, 자대배치를 받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주말이다. 아직 모든게 낯설다. 같은 소대원이 30명가량 있는데, 아직 이름도 완벽하게 다 외우지 못하였다. 이름도 모르는데 서열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저 그들이 대화하는 것을 듣고, 어렴풋이 유추할 뿐이다.
처음 자대로 가면 가장 어려운 부분이 고참들의 이름과 서열을 외우는 것이다. 일반적인 중대의 경우 10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100여명의 이름과 서열을 외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고참에게 저기요~!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는가? 고참들은 당연히 나의 이름을 알고 있다.
그들 입장에서는 원래 알고 있던 99명중에 나의 이름이 하나 추가되는 거 뿐이다. 나는 이틀동안 연신 눈 앞에 지나가는 고참들의 이름표만 뚫어지랴 보고 또 보았다. 문제는 다 그 놈이 그 놈 같다. 죄다 까만 피부에 짧은 머리, 비슷한 말투, 같은 복장이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나는 열심히 외우고 또 외웠다.
"가츠~ 너 종교행사 어디로 가냐?"
"이병 가츠! 기독교입니다!"
분대장은 이상병에게 나를 잘 데리고 다니라며 말하고는 다시 大자로 누워서 기절해버렸다. 이상병은 나를 바라보며 연신 귀엽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참고로, 내 키는 181, 이상병은 169, 내 나이는 23, 이상병은 22이다. 그러나 이상병은 병장진급을 코 앞에 둔 소대 최고의 실세이다. 나는 연신 눈웃음을 지으며 이상병을 향해 교태를 부렸다.
"부비부비~! 이뻐해주세요~♥"
분대장은 어차피 조금 있으면 갈 사람이잖아. 이상병한테 잘 보여야 돼~! 능력 좋고 마음씨 착한 이상병은 간부들에게도 인정받고, 후임들에게도 존경받는 고참이었다.
얼마후, 연병장에서는 종교행사 인원들이 집합해 있었다. 역시 기독교 인원들이 제일 많았다. 이상병이 최고 선임이었기에 우리들을 인솔하기 위해 옆으로 나와 있었다. 이상병과 떨어지니 왠지 불안하다. 그가 나를 지켜줄 것만 같은데 말이다. 중대 단위로 이동하기 때문에 다른 소대원들과 같이 이동하고 있다.
나의 주위를 둘러보니, 낯선 얼굴들이다. 물론, 소대원들의 얼굴도 확실하게 다 알지는 못했지만, 이들은 정말 첨보는 사람들이다. 옆에 같이 걸어 가고 있던 고참이 나를 향해 윙크를 하였다. 못본 척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같이 윙크로 보답할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고, 이거 뭐 어쩌라는거야?
"얼레? 이색히 이거! 고참이 윙크를 하는데도 반응이 없네?"
"이이벼어엉 가아아츠으으! 감사합니다아!"
"머가 감사해?"
"어어 그게..."
"얼씨구~! 이등병이 더듬게 되어 있나?"
"아닙니다아!"
이 녀석 질이 좋지 않아! 이대로 있다가는 교회의 문턱을 밟지도 못하겠다. 이 녀석에게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대열을 이탈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참은 안절부절하는 나를 보며 연신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갑자기 앞에서 얌전히 걸어가던 다른 고참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썩소를 작렬하였다.
"얼레? 이색히 이거! 고참이 웃어주는데도 반응이 없네?"
"이이벼어엉 가아아츠으으! 감사합니다아!"
"머가 감사해?"
"●█▀█▄ 여긴 지옥이다!"
교회는 어디 있는 걸까? 나는 고개를 정면으로 향한 채, 고참들의 시선을 피하였다. 그러나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옆에 있던 고참은 나에게 자꾸 이것 저것 질문하기 시작하였다. 이미 지난 이틀 동안, 수십번은 대답한 질문을 어김없이 또 물어보고 있다.
"여자친구 있냐?"
나는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 분명히 이쁘냐고 물어 볼 것이다. 이때 잘 대답해야된다. 진짜 객관적으로 생각해서 이쁘면 이쁘다고, 못 생겼으면 못 생겼다고 솔직하게 대답해야 된다. 이쁜데 못 생겼다고, 못 생겼는데 이쁘다고 하면 곤란하다. 어떻게 아냐고? 다음 질문이 뻔하기 때문이다.
"사진 있냐?"
당연히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갑 속에 넣어둔 사진을 꺼내 보여 주었다. 고참은 나를 한번 훝어 보더니,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아나~! 지난 이틀동안 사진을 본 고참들은 죄다 같은 반응이다. 이제 다음 질문에 답할 준비를 하자. 다음 질문도 정말 너무 뻔한 질문이다.
"니 여자친구~ 친구들 많냐?"
많으면 어쩔건데? 나는 솔직하게 다들 남자친구가 있다고 하였다. 고참의 표정이 급 어두워졌다. 그러면 다음 질문에 또 답할 준비를 해보자. 다음 질문도 정말 너무 뻔한 질문이다.
"니 여자친구~ 여동생은 있냐?"
아나~! 있으면 어쩔건데? 나는 있다고 하였다. 그러자 다시 고참의 얼굴에 화색이 돌기 시작하였고, 어김없이 이쁘냐고 물어 보았다. 나는 솔직하게 이쁘다고 하였고, 고참의 입은 귀에 걸렸다. 그리고는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어깨동무를 한다. 정말 하나같이 다 똑같다.
그렇게 고참은 연신 신나서 나에게 이것 저것을 물어보고 있다. 그러자 앞에서 걸어 가고 있던 고참이 고개를 돌려 나를 째려 보았다. 나는 바로 표정관리에 들어갔고, 긴장하였다. 그는 다시 한번 나에게 썩소를 날리며 물었다.
"가츠야~ 나는?"
뭐~! 어쩌라고? 이것들 답이 안 나온다. 알고보니 이것들 동기였다. 둘은 서로 티격태격거리며 여자친구의 여동생은 자기꺼라고 난리다. 이거 왠지 불안해진다. 아니나 다를까? 둘은 나를 붙잡고는 누구한테 소개 시켜 줄꺼냐고 물어 보았다.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어쭈? 이등병이 생각하게 되어 있나?"
살려줘... 나는 이미 지칠대로 지쳤다. 교회가는 길이 이렇게 험난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법당으로 간다고 할 껄~! 이제와서 후회해도 늦었다. 처음 보는 타 소대의 고참들에게 나는 그렇게 한없이 유린당하고 있었다. 이것들 완전 똘아이야~!
그순간, 뒤에서 누군가를 나의 어깨를 잡았다.
"가츠야~ 내가 누구게?"
낯익은 얼굴이 자신의 이름표를 손으로 가리고는 나를 불렀다. 분명히 그는 나와 같은 소대원인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다. 기억해내야 된다. 살려면 기필코 기억해야 된다. 그러나 도저히 기억이 안난다. 나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멍하니 그를 바라 보고 있었다. 그의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화를 내기는 커녕, 정말 천사같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가린 손을 치우더니 나에게 자신의 이름을 보여주었다.
"조..O..O..상병님?!"
"그래 임마! 이거 같은 소대원 이름도 모르고 큰일인데!"
"죄송합니다아!"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내 옆으로 와~ 같이 가자!"
그렇게 조상병은 그들로부터 나를 구원해 주었다. 나는 정말 조상병이 고마웠고, 든든해 보였다. 왠지 믿음이 가는 고참이랄까? 그와 함께라면 괜찮아~!
저 멀리 교회가 보이기 시작하였고, 조상병의 안경테가 햇살에 비쳐 반짝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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