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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병장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6년 추석이다. 당시의 추석은 신이 내린 황금연휴였다. 개천절을 시작으로 연달아 이어지는 추석연휴는 가히 한주를 통째로 놀아주는 긴 연휴였다. 한창 훈련시즌이 우리들은 오랫만에 갖는 달콤한 휴식에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게다가 나는 2박 3일의 달콤한 외박까지 계획되어 있었기에 더할 나위없이 좋았다.
그래도 군인인 우리들은 고향으로 갈 수 없었다. 작업이나 훈련을 안할 뿐이지 그리운 가족을 만날 수는 없다. 병사들이 안가는데, 간부들도 선뜻 갈 수 없다. 우리는 이미 한 배를 탄 전우들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편하게 내무실에서 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였다.
그러나 대대장은 긴 연휴를 맞이하여 체육대회를 준비하였다. 축구, 농구, 줄달리기, 민속놀이등 중대별로 토너먼트방식으로 최강의 중대를 가리기로 하였다. 물론 그에 응당한 포상휴가도 준비되어 있었다. 이에 전 간부와 중대원들은 중대의 자존심을 걸고 체육대회를 준비하였다.
"5중대 우승 못하면 연휴도 뭐고 없는거야!"
중대장은 우리를 향해 필승을 다짐하였고, 우리들 또한 간만에 찾아온 포상휴가증에 신이 나서 최선을 다짐하였다. 그러나 말년 병장인 나에게는 무의미하다. 게다가 연휴중에 2박 3일 외박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심정이었다. 그저 후임들에게 알아서 잘 준비하라고 지시를 하고는 시체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가츠병장님! 농구하시겠습니까?"
"왜이래! 형은 중간에 외박나가잖아! 생각 좀 하고 살자!"
"아흑! 가츠병장님의 신들린 트리플떠블이 꼭 필요한데 말입니다!"
다들 포상휴가증에 눈이 멀었다. 은퇴한 나에게까지 구원의 손길을 내밀다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외박을 나가야 하기에 불가능하였다.
개천절 아침이 되자, 대대원들은 연병장에 도열하여 체육대회의 시작을 알렸다. 나름 전문성있게 간부로 구성된 심판진과 중대별로 나름 S라인으로 구성된 짐승응원단까지 갖췄다. 문득, 연휴가 연휴같지 않았다. 그냥 내무실에서 TV를 보면서 쉬고 싶었는데, 이거 하루종일 응원하게 생겼으니 말이다.
드넓은 연병장 곳곳에서 농구와 축구, 족구시합이 펼쳐지고 있었고, 나머지 인원들은 자신의 중대를 응원하며 관전하였다. 그렇게 우리들만의 가을운동회가 시작되었다.
"야 깐돌이 발 보인다! 제대로 안 뛰어!"
나는 선수들을 독려하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오후가 되자, 오늘의 하일라이트인 기마전이 시작되었다. 기마전의 규칙은 말위에 올라탄 기수의 모자를 뺏으면 된다. 규칙은 매우 간단하지만, 게임 자체의 퀄리티는 매우 높다. 기본적으로 말이 되는 인원의 힘과 지구력, 기수의 영리함과 민첩성이 중요하였다. 게다가 같은 팀의 공수의 조화, 전략까지 한마디로 전쟁의 축소판이었다.
그리고 왕의 개념이 있었다. 중대별로 중대장은 왕이다. 상대방의 왕을 먼저 무너뜨리면 바로 경기가 끝나기때문에 왕을 보호하거나 신속하게 상대방의 왕을 공격하여야했다. 우리 중대장은 예전에 중대장2편에서 소개한 적이 있지만, 특공대 출신의 힘 하나는 장사였다.
"나만 믿어라!"
"와아아 중대장님 만세!"
경기 시작전부터 중대장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우리들을 안심시켰고, 필승을 다짐하였다. 우리 또한 늠름한 중대장의 포스에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중대장의 말 또한, 중대에서 가장 신체가 크고, 튼튼한 녀석들로 투입되었다. 딱봐도 강호동같은 김상병, 입대전 요인경호를 하다온 이일병, 취미가 암벽타기인 박일병까지 초호화 캐스팅이다. 그리고 그 위에는 특공대 출신의 우리 중대장, 절대 무너질 수 없는 거대한 산이었다.
"이건 뭐 응원할 필요도 없겠다!"
"사실상 결승전이지 말입니다!"
총 3판 2승제로 치러지는 우리의 첫 상대는 7중대였다. 각 종목마다 포상휴가가 걸려있기때문에 출전한 병사들의 각오는 대단하였다. 곧 심판의 호각소리에 따라 경기가 시작되었다. 우리 중대는 든든한 중대장을 믿고 상대방의 왕을 무너뜨리기 위해 산개하였다.
이건 뭐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이다. 누가봐도 전쟁이었다. 상대방을 모자를 뺏기 위해 내뻗는 손은 복서의 주먹과 다를바 없었다.
"야 봤냐? 방금 저거! 어퍼컷 날렸는데?"
"헐! 턱이 돌아갔지 말입니다!"
"야 송병장 니가 투입해서 다 엎어버려!"
"전 프로지 말입니다!"
승부욕에 불탄 군인들은 연병장을 뛰어다니며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경기 시작전, 가뿐하게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는데 상대방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다. 하긴 중대의 자존심이 걸려있는데 쉽게 승부가 날리가 없다. 게다가 빛나는 포상휴가증까지 있으니 말이다.
"어어? 우리 중대장님 포위되셨는데 말입니다!"
"뭬야?"
우리 말들이 상대방의 왕을 쫒아다니고 있는 와중에 우리 중대장이 적들에게 포위되었다. 그들은 우리 중대장을 향해 매섭게 돌진하였다. 처음에는 편안하게 관전하던 우리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있었다. 가슴 속 깊이 잠재되어 있던 전우애가 폭발하였다.
"중대장님 파파파이팅이잉!!!!"
"이것들아! 나 중대장이야! 육군 대위라고! 캡틴 몰라? 캡틴?"
"적의 수장을 베었다!"
혈기왕성한 상대방의 병사들은 우리 중대장을 순식간에 나락으로 밀어버렸다. 일순 허탈해진 우리들은 실망스런 눈빛으로 중대장을 바라보았다.
중대장은 한없이 작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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