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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신교대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벌써 입대한 지도 20일이나 지났다. 불과 엊그제 입대한 거 같은데 말이다. 하루하루는 무척이나 길었지만, 돌이켜 보면 빨리 지나가는 거 같다. 처음에는 지옥같았던 훈련소 생활도 적응이 되어서 그런지 불편함이 없었다. 물론, 실상은 무척이나 불편하고 힘들지만 그렇게만 생각하면 버틸 수 없기에 다들 마인드컨트롤을 하며 적응하는 거였다.
"가츠야! 이제 2주도 안 남았네!"
"응! 자대가면 여기가 그립겠지?"
"당연하지! 일단 여긴 고참들이 없잖아!"
"하아! 가면 겁나 갈구겠지?"
"넌 갈굼 좀 먹어야 돼! ㅋㅋㅋ"
자대가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동기들도 없을 것이다.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과연 말을 할 수 있을까? 누가 먼저 말을 걸어 주지 않는 이상, 입도 뻥긋하지 못할 것이다. 얼마나 답답할까? 괜시리 훈련소를 퇴소할 생각을 하니 우울해졌다. 나중의 일은 나중에 걱정하자!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애써 해밝게 웃었다. 60번 훈련병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일까? 나를 보며 썩소를 날리고 있었다. 이럴때는 자판기 커피를 한 잔하면서 담배 한 대를 딱 피어줘야 되는데, 현실은 시궁창이다. 오전 교육일과를 준비하고 있는데, 조교가 들어왔다.
"주목! 금일 예정되었던 각개전투는 부득이하고 취소되었다. 대신 화생방 훈련을 실시한다. 전원 방독면 착용하고 집합할 수 있도록!"
"화...화생방?"
원래 화생방 훈련은 퇴소하는 주에 하기로 예정되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변경되었다. 화생방 훈련은 군대를 안 간 사람이라도 이미 많은 예비역들의 생생한 경험담을 들어서 낯설지 않을 것이다. 위와 같은 관련 자료도 풍부하니 말이다. 나도 군대이야기를 연재하지만, 지인들과 술자리에서 하는 군대이야기는 늘 사실보다 부풀려지기 마련이다.
자기는 하루 종일 40킬로 걸었네! 라고 하면, 반대편에 앉은 지인은 받고, 따당! 을 외칬다. 하루 종일 걷고 밤새도록 걸어서 80킬로! 라고 말이다. 그러면 다시 자기는 밥 한끼, 물 한모금 못 마시고 이틀내내 행군만 하였다고 한다. 그러면 옆에서 조용히 경청하고 있던 지인은 촉촉히 젖은 눈으로 외친다.
"우리는 탱크 연료가 바닥나서 복귀할 때까지 밀고 갔어!"
"............"
늘 이런 식이다. 나중에는 하나같이 슈퍼맨이 되어 버린다. 물론 지기 싫어하는 사람의 심리와 기왕이면 좀 더 재밌게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심한 허풍을 쳐도 다들 쉽게 수긍하는 내용이 있다. 그것이 바로 화생방 훈련이다. 훈련소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한 훈련이다.
물론, 훈련소마다 강약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고통은 매한가지다. 10분을 했던, 1분을 했던, 그 시간은 무의미하다. 당사자에게는 1초가 천년만년 같으니깐 말이다.
완전군장메고 40킬로 산악행군 할래? 10분동안 방독면없이 화생방 훈련 할래? 물론 10분동안 화생방 훈련 하는게 결과론적으로는 나은 선택일 것이다. 40킬로 산악행군은 아무리 빨리 걸어도 9, 10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다. 물론 육체적으로도 무척이나 힘들 것이고, 심지어 절벽으로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동도 들 것이다. 고로 10분 고생하는 화생방 훈련이 훨씬 나을 수 있다. 단 10분만 고생하면 되니깐 말이다.
"과연?"
장담하는데 가스실에 들어가면 1초만에 후회할 것이다. 9분 59초동안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저주할 것이다. 말이 9분 59초지 체감상으로는 400킬로를 행군하는 시간이랄까? 더할 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가장 기피하고 싶은 훈련 중에 하나다. 그 훈련을 오늘, 지금 한다는 것이다.
"지...지금 조교가 뭐라고 한거야?"
"꿈이야! 걱정마! 지금 나는 꿈꾸고 있는거야! 하하하!"
안타깝게도 꿈이 아니었다. 동기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서로에게 확인을 하였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듯한 표정으로 관물대에 비치해둔 방독면을 꺼냈다. 그제서야 방독면피를 열어서는 자신의 방독면 상태를 확인하였다.
"이거 불량품아냐? 찢어진 거 같애?"
"난 정화통이 깨진 거 같은데?"
"이상한 냄새나!"
"나도 어흐흑흑ㅜㅜ"
사실, 본다고 상태를 알 리가 없다. 아직 화생방교육을 받지 않은 우리들은 방독면 자체가 낯선 물건이었다. 원리도 제대로 몰랐고, 무엇을 점검해야되는지도 모르니 말이다.우리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연병장에 집합하였다.
이미 연병장에는 중대장을 비롯 교관들과 조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득달같이 샤우팅을 외치며 빨리 정렬하라고 하였다. 오늘만큼은 아프고 싶었다. 사열대 계단을 내려가며 살짝 뒹굴까? 그러나 계단의 높이는 나를 망설이게 하기에 충분할 만큼 높았다. 영원히 쉴 수도 있을거 같았다.
"다들 교관, 조교들 통제 잘 따르고, 사고 없이 무사히 복귀할 수 있도록 한다! 알겠나?"
"네에에엣!"
중대장은 금일 교육에 관해 연신 침 튀기며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대장의 말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천재지변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는데, 무심하게도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였다. 중대장의 브리핑이 끝나자, 조교들은 우리들을 인솔하러 앞산에 위치한 화생방 훈련교장으로 출발하였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조교의 발걸음이 빠른 거 같았다. 우리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앞만 보고 묵묵히 걸어갔다.
저 멀리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낡은 가스실이 우리를 반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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