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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크리스마스 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우리 부대는 부대집중정신교육을 실시하였다. 부대집중정신교육이라 함은 일주일동안, 모든 교육훈련을 열외하고 오전에는 지휘관과 함께 안보교육을, 오후에는 체육대회 및 장기자랑, 회식 등 다양한 행사를 실시한다. 일종의 축제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가츠 병장님! 크리스마스 외출, 외박자 조사하는데 나가실렵니까?"
"장난하냐? 여친도 없는데! 크리스마스 때 외박 나가라고?"
군인이라면 누구라도 당연히 부대 밖을 벗어나고 싶겠지만, 때가 있는 법이다. 크리스마스 때는 돈은 돈대로 나가고, 기분은 더욱 암울해질 것이다. 차라리 부대에서 전우들과 함께 노는 것이 훨씬 낫다. 그리고 어차피 놀기 때문에 굳이 나갈 필요가 없다. 자고로 부대가 빡셀 때, 나가야지 더욱 달콤하다.
"크리스마스 때까지 소대 꾸미기를 실시한다!"
"에이~ 장난하십니까?"
"진심이다! 대대장님 명령이야! 대신 1등하면 포상휴가증 3장!"
"오오옷!"
소대꾸미기라? 20살 넘은 다 큰 남자들에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그래도 포상휴가증이 걸려 있다는 말에 다들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그날부터 우리는 대대 분리수거장에서 소대꾸미기에 필요한 재료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박스와 펫트병을 모으고, 한 켠에서는 알록달록한 색종이를 열심히 오렸다.
색종이 잘못 올렸다고 끌려가서 갈굼 먹어 본 적 있는가? 없으면 말을 하지 마시라! 그만큼 우리들은 치열하게 소대꾸미기를 준비하였다. 승부욕에 활활 불타오른 소대장은 위수지역까지 나가서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과 조명을 공수해왔다. 어느새 소대꾸미기는 총칼 없는 전쟁이 되었다.
"크리스마스 트리 구해와!"
우리들은 뒷산으로 올라가 크리스마스 트리로 쓸만한 전나무를 찾기 시작하였다. 후임들은 의욕적으로 산을 뛰어다니며 전나무를 찾기 시작하였다. 곧, 김일병은 마음에 드는 전나무를 발견하였나 보다. 큰소리로 우리를 부르더니, 나무 몸통에 톱을 갖다대기 시작하였다.
"야이 미친 거 아냐! 무슨 세계 크리스마스 트리 축제라도 나가냐? 개념 챙겨! 내무실에 쓸 거라고!"
역시 멍청하면서 부지런하면 큰일이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윤병장은 살포시 날아올라 나무 사이를 딛고는 그대로 김일병에게 회축을 날렸다. 잠시 후, 내무실에 적합한 조그만한 전나무를 구해가지고는 돌아왔다. 조명과 장식을 설치하니, 그런대로 크리스마스 트리 분위기가 나는 거 같았다.
크리스마스 이브 당일, 부대에는 면회객들이 들어왔다. 대대에서 준비한 크리스마스 행사를 맞이하여, 장병들의 가족과 여자친구를 초청한 것이다. 행사를 마치고, 면회온 장병들은 바로 외박을 나갈 수 있다. 우리들은 미리 준비한 장기자랑을 뽐내며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전병력 취사장으로 집합하시랍니다!"
좁은 취사장에 빼곡히 들어간 우리들은 오랫만에 즐기는 축제의 즐거움을 만끽하였다. 옆에 있던 윤병장이 흥분하여 나에게 속삭였다.
"가츠 병장님! 저기 저 여자 보십시오!"
"헐!"
"완전 제대로 개념복장이지 말입니다!"
"쩌...쩌는데!"
"완전 부럽지 말입니다!"
"야야 다 한 때야! 나도 저 때는 그랬어!"
"지금은 시궁창! 앜ㅋㅋㅋㅋㅋ"
"박어!"
취사장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무대 위에 있는 커플을 보며 부러워 하였다. 면회조건에 외모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하나같이 아름다운 여성분들만 면회를 왔다. 그러나 다들 이등병 여친이었다. 가끔 일병 여친이 보였고, 상, 병장은 한명도 없었다. 왠지 모를 씁쓸함이 가슴 한 구석을 파고 들었다.
"다들 목숨 걸었어! ㄷㄷㄷ"
"연말 가요대상 보는 거 같은데 말입니다!"
다시 행사는 무르익었고, 다들 준비한 장기자랑을 뽐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뒷 쪽에서는 대대장이 손에 든 포상휴가증을 펄럭이며 인자한 미소로 화답하고 있었다. 대대장의 손짓에 장기자랑하는 병사들의 몸놀림은 더욱 현란해졌다.
"2번 카메라!"
그 흔한 걸그룹 하나 없는 우리들만의 무대였지만, 무척 재미있었다. 평소 볼 수 없었던 간부들의 모습과 병사들의 끼가 유감없이 드러났다. 어리버리하기만 하던 신병이 알고보니, 팝핀의 황제였다. 카리스마있는 중대장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개그맨이 떡하니 있었다.
"부끄러워! ㄷㄷㄷ"
얼마나 웃었을까? 그렇게 우리들만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깊어만 갔다. 잠시 후, 모든 행사가 끝났고, 포상수여가 시작되었다. 소대꾸미기는 아쉽게도 등수에 들지 못하였다. 김일병이 벨려고 하였던 전나무를 베었어야만 했던걸까?
면회온 장병들은 행사가 끝나자마자 바로 가족, 여친들과 함께 위병소를 나갔고, 우리는 내무실로 들어왔다. 소대별로 준비한 맥주와 치킨, 피자를 먹으며 회식을 하였다. 이정도면 군대에서 보내는 크리스마스치고는 꽤나 훌륭하였다. 그러나 어김없이 찾아오는 저녁점호시간, 우리들은 잽싸게 뒷정리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혹시, 산타가 선물을 주진 않을까? 잠깐이나마 유치한 상상을 해보았다. 다 큰 녀석이 말이다. 그러나 거짓말처럼 산타가 간밤에 짠하고 선물을 주고 갔다. 아침에 불침번이 외치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금일 아침점호는 생략하고, 전병력 제설작업 집합하시랍니다!"
정말 고마운 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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