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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상병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06년 05월, 상병 5개월차의 천상 군인이었다. 대충 삽을 잡아도 엣지가 철철 넘쳤다. 군복이 더 잘 어울리고, 군대 용어가 더 익숙한 시점이었다.
일과시간이 시작되는 오전, 내무실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대대 탄약고 주변을 재보수하는 아주 타이트한 작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일과를 준비하고 있었다. 전역을 두달 남은 김병장은 연신 투덜거리며 신세 한탄을 하고 있었다.
"가츠야~ 지금 내가 작업을 해야 되냐?"
"시키면 해야지말입니다 ㅋㅋㅋ"
"정말 하루하루가 일년 같구나~!"
김병장의 하소연을 듣고 있는데 갑자기 내무실 문이 열리더니 2소대 부소대장인 김하사가 들어왔다. 축구를 좋아하는 김하사는 쾌활하고 밝은 사람이었다. 항상 병사들과 장난치고 놀기를 좋아하였다. 고로 병사들에게 인기 많은 간부였다.
"어디보자~! 누가 좋을까?"
김하사는 누군가를 찾고 있는 거 같았다. 다들 본능적으로 김하사의 눈빛을 회피하며 모른척 하였다. 군대에서는 무조건 뭉쳐 있어야 한다. 그러면 본전이라도 하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다같이 힘드는게 훨씬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나랑 김병장도 대화를 멈추고 관물대를 만지작 거리는 시늉을 하였다.
뒤통수가 따갑기 시작하였다. 분명히 나를 보고 있는게 틀림없다. 나는 더욱 부지런히 관물대 정리를 하였지만, 이미 늦은 거 같다. 아니나 다를까? 김하사는 나를 불렀다.
"가츠야~♥ 나랑 가자~!"
"상병 가츠! 어디말입니까?"
"따라오면 알어~!"
그제서야 소대원들은 안심을 하였고, 다시 시끌벅적 떠들기 시작하였다. 아나~! 나도 얍삽하지만 니들도 만만치 않구나~! 나는 복장을 점검하고는 김하사를 따라 나갔다. 김하사는 나를 커피자판기로 데려가서는 커피를 뽑아 주었다. 그리고는 담배를 내밀며 피라고 하였다.
왜 이리 잘해주는거지? 더 불안해지기 시작하였다. 김하사는 나를 보며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나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였다.
"가츠야~ 내일까지 나랑 같이 신병관리를 해야 돼~!"
"신병관리말입니까?"
"어제 우리 대대에 신병이 12명 왔거든~! 내일까지 우리가 데리고 있으면서 연대장, 대대장님 전입신고를 시켜주고, 그냥 데리고 놀면 돼~!"
오호~ 이거 왠지 편안함이 물씬 느껴지는데~! 나가서 삽질하는 거 보다는 신병들 데리고 다니면서 노는 게 훨씬 편하니깐 말이다. 김하사가 너무 사랑스럽다.
평소에는 그냥 중대 내에서 자체적으로 관리를 하였는데, 이번에는 대대에서 통합관리를 하는 거였다. 그 임무를 김하사가 맡았고, 나는 일종의 도우미가 된 것이다. 12명의 신병중에는 우리 중대로 배치 받은 후임은 2명이었고, 나머지는 다른 중대원들이었다.
훈련병도 아니고 당당히 훈련소를 퇴소한 대한민국 이등병들이다. 게다가 다른 중대원이니 엄연히 내 후임도 아니다. 2명을 제외하고는 존댓말을 정확하게 사용해줘야 했다..
신병들은 벌써 대대 도서관에 모두 모여있다고 한다. 김하사는 나보고 가서 놀아주라고 하였다. 궁금한 거 있으면 대답해주고 그냥 식사시간되면 인솔해서 밥도 먹이고, PX도 마음대로 이용하라고 하였다. 호오 마치 조교가 된 기분이랄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도착하였다. 조교처럼 전투모를 최대한 깊게 눌러쓰고는 도서관 문을 열었다.
갑자기 열린 문소리에 신병들은 일제히 각을 잡고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호오 이녀석들 귀엽다~! 나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인사하였다.
"반갑습니다. 저는 내일까지 여러분들을 인솔하는 5중대 상병 가츠라고 합니다. 고참도 아니고 조교가 아닌 도우미 역할로 왔으니 어려워 하지 마세요~!"
"........"
머야~! 이녀석들~! 내 말을 전혀 믿지 않고 있어~! 이렇게 친절하게 웃으며 말하였는데, 연신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나를 불신하고 있었다.하긴, 내 인상이 결코 선한 인상은 아니구나~!
"하하~! 너무 각 잡지 말고 편하게 편하게 앉아요!"
아나~! 꿈쩍도 않았다. 이번 기수는 군기가 아주 꽉 잡혔구나~! 근데 이런 녀석들이 빠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다. 내가 그랬으니깐 말이다. 아직은 시간이 많으니 나중에 차차 대화하기로 하고, 신병들에게 책을 보면서 대기하라고 하였다. 나도 오랫만에 독서나 해볼까 하며 책장을 기웃거렸다.
왠지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전역을 기다리며!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열었다. 한 장, 두 장 연신 책장을 넘기는데, 이건 무협지가 아니었다. 분명히 까만색은 글자가 맞는데, 도무지 나의 머릿속에서는 쉽게 해석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제목 그대로 고도를 기다리는 내용인 거 같다.
굳이 군인 버전으로 해석해보자면, 군인은 누구나 전역을 기다리고 있다. 아직은 앞이 보이지 않고, 한없이 기다려야 되지만, 언제가 반드시 올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2년여의 긴 기다림 끝에 전역을 맞이하여도 오히려 군대보다 더 험난한 사회가 떡하니 있다.
머야~ 이거! 전혀 희망적이지 않아! 나는 책을 덮었고, 신병들을 바라 보았다.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나를 바라보며 아이컨텍을 시도하는 녀석들이 몇몇 보였다.
"음~! 뭐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요~!"
"외출, 외박은 언제 나갈 수 있습니까?"
"원래는 자대배치 받으면 바로 나갈 수 있는데 눈치가 보여서 잘 안가죠~!"
"훈련할 때 얼마나 힘듭니까?"
"음... 신교대에서 야간행군 했죠? 힘들었나요?"
"네! 그렇습니다!"
"그거 딱 100배 앜ㅋㅋㅋㅋㅋ"
이제 너도나도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기 시작하였다. 나도 신병인 시절이 있었기에, 그들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아직은 낯설기만한 군대에 얼마나 궁금증이 많을까?
"중대에 있는 세탁기는 언제 사용할 수 있습니까?"
"구경만 하세요~!"
"PX는 언제 갈 수 있습니까?
"없다고 생각하세요~!"
하하~! 이런저런 질문을 받으며 분위기는 한껏 화기애애 하였다. 신병들도 이제 어느정도 안심이 되었는지 표정도 한결 밝아 보였다. 구석에서 사뭇 진지하게 생긴 신병 하나가 나에게 질문을 하였다.
"여자친구는 있습니까?"
"크헉~! 저녀석이 감히 ㄷㄷㄷ"
나의 아픈 곳을 찌르다니, 내가 교육실습 나온 교생도 아니고 말이다. 왜 이딴 질문을 하는거야? 저녀석 요주의 인물이다. 기억해주마! 나는 울면서 일병때 헤어졌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여자친구가 있어 보이는 신병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녀석들.... 벌써 나를 의지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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