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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혹한기훈련 上편, 혹한기훈련 中편, 혹한기훈련 中-2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오후 9시, 장장 12시간에 걸친 혹한기 출발행군이 끝났다. 하지만 행군이 끝났다고 좋아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이미 녹초가 되어버린 우리들은 재빨리 숙영지 편성을 시작하여야만 하였다. 그러나 이미 깊은 산 속은 칠흑같은 어둠으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전원 신속하게 숙영지 편성을 실시한다! 동시에 식사추진인원과 경계인원도 투입할 수 있도록!"
"네 알겠습니다!"
보이지도 않는 소대장의 음성이 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이미 산 아래에는 보급병이 놔두고간 저녁과 미수고리가 있었다. 분대마다 배식인원이 투입되어 분대별로 먹을 식사를 배급하였고, 나머지 인원들은 텐트를 치기위해 준비하였다. 아쉽게도 던지면 한번에 펼쳐지는 텐트가 아니었다. 각자가 가지고 온, 텐트천과 지주핀, 비닐, 모포로 정성스레 쳐야 한다.
또한, 철저한 전술훈련이기 때문에 숙영지를 구축함에 있어서도 보안이 생명이었다. 큰 소리와 불빛을 낼 수 없었다. 복장도 제대로 갖추고 해야되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한 쪽에서는 저녁 배식이 한창이었고, 몇몇 인원은 길목으로 경계 근무를 나갔다. 나와 이병장, 배일병은 텐트를 치기 위해 준비하였다. 대개 A형 텐트는 2, 3명이 이용하고, D형 텐트는 한 개분대 전원이 이용한다.
주로 전술훈련에서는 A형텐트를 선호한다. 공간, 시간면에서 D형보다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D형텐트의 경우에는 한 곳에서 장기간 머물 때 이용한다. 넓고 편하기는 하지만, A형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얼른 텐트 치고 밥 먹어야지! 빨리 빨리 움직여!"
"근데 손이 얼어서 빡셉니다!"
"그럼 내가 할까? 니가 개념까지 얼었구나? "
"아닙니다! ㄷㄷㄷ"
어둠도 어둠이지만, 너무 추웠다. 군장에서 야상과 깔깔이, 스키파카를 꺼내 입었지만 이미 식어버린 체온은 쉽사리 오르지 않았다. 야삽을 가지고는 땅을 평탄화하기 시작하였다.
"이거 좀 심각한데 말입니다!"
"왜?"
"땅이 꽁꽁 얼었지 말입니다!"
위 사진은 도깨비뉴스에서 참고용으로 가져온 사진이다. 사진에서처럼 텐트를 치기위해 우선 땅을 평평하게 하여야만 한다. 그렇지만 당시, 숙영지 상황은 최악있었다. 평소 훈련을 하지 않던 곳이라, 전혀 숙영지 편성이 되어 있지 않은 곳이었다. 말 그대로 야생 그 자체였다. 수북히 쌓인 눈을 치우고 땅을 깔려고 하자, 이미 꽁꽁 얼어버린 땅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안할 수도 없었다. 경사가 매우 심해서 이대로는 도저히 텐트를 칠 수가 없었다. 조그만한 야삽으로 적수가 되지 않았다. 옆에서 담배를 피며 우리를 지켜보던 이병장이 한심하단 듯이 일어나서는 야삽을 집어 들고 열심히 까기 시작하였다. 보통 분대장은 옆에서 열심히 지시를 하며 관리감독을 하는데, 의외의 모습이었다.
"이병장님! 왜 이러십니까? 오버하지 마십시오! 허리 상합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게 더 빡세! 얼어 죽을 거 같애!"
혹한의 추위는 육군 병장도 삽질하게 한다. 새로운 사실을 배운 우리들은 열심히 텐트를 쳤다. 결국 평탄화 작업은 무위로 돌아갔고, 시간이 촉박하여 대충 눈만 걷어내고, 칠 수 밖에 없었다. 딱 봐도, 경사 진 텐트였지만, 추위만 피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했다. 텐트 안에 군장을 넣어 놓고는 바로 식사를 시작하였다. 이미 조리한 지는 수시간이 지나서 차갑게 식어버린 저녁이었지만, 정말 꿀 맛이었다.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빈 숟가락을 빨며 아쉬워하였다.
하루종일 걸어서였을까? 밥을 먹고도 배고픔이 가시질 않았다. 아마 나 뿐만이 아니라, 소대장을 비롯해 소대원 전원이 그랬을 것이다. 문득, 산을 올라 오기 전에 발견한 허름한 구멍가게가 생각났다.
"이병장님! 아까 산 밑에 있던 구멍가게 기억나십니까?"
"그걸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소대장님한테 가서 쇼부치지 말입니다!"
"안그래도 이따가 몰래 투입하기로 했어!"
후훗! 군생활에서 중요한게 많지만, 그중에서도 융통성있는 간부를 만나야 된다. 곧 특작조가 구멍가게에 투입되어 음료수와 과자를 사가지고 왔다. 마음같아선 독한 보드카를 마시며 몸을 녹이고 싶었지만, 음주는 철저하게 금지되었다. 비록 알콜은 없었지만, 탄산음료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찌릿하였다.
과자까지 먹고 나자, 그제서야 배가 불렀고, 곧 피곤이 몰려왔다. 바로 자면 된다. 훈련 중에는 쉴 수 있을 때, 알아서 쉬어야 된다. 굳이 씻을 곳도 없고, 씻을 물도 없다. 그러고보니 지난 혹한기 훈련동안 단 한차례의 세수도 하지 못했다. 어차피 안면위장때문에 할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게다가 언제 바로 떠나야 될 지 모르기에 최대한 눈을 붙여놔야 된다. 그렇지만 군인의 기본, 경계근무는 그 어떤 상황이라도 어김없이 가동된다. 곧, 전령이 텐트 앞으로 오더니 근무시간을 알려주었다.
"가츠상병님! 배일병이랑 동초 말번 근무입니다!"
"야! 미친 거 아냐! 근무를 왜 넣어! 형 힘들어!"
"그래도 말번이지 말입니다!"
하긴, 이제 갓 상병인 된 내가 비번일 수는 없었다. 그나마 말번이니 다행이다. 그러고 보면 초번이 제일 좋다. 한창 다들 텐트치고, 배식하느라 바쁠 때, 경계하러 나가서 있다가 오면 되니깐 말이다. 근무 시간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이병장과 배일병, 나는 잠을 자기 위해 텐트 안에 누웠다. 처음에는 높은 곳에 머리를 두고 누웠는데, 자꾸 아래로 몸이 미끄러졌다. 결국 우리는 낮은 곳에 머리를 두고 반대로 누웠다.
"이병장님! 완전 불편하지 말입니다!"
"머리로 피 몰린다! @.@"
"아낰ㅋㅋㅋㅋㅋ!"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참을 만했다. 우리의 체온으로 인해 텐트 바닥, 꽁꽁 얼은 땅이 녹기 시작하였다. 질퍽질퍽한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진흙이 되어버렸다. 정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도 금새 잠이 들었다. 텐트 밖에는 영하 20도의 강추위였지만, 텐트 안은 나름 버틸만 했다. 침낭 속에 들어가서 애벌레가 된 우리들은 서로의 체온을 의지하며 밤을 보냈다.
부스럭 부스럭!
공포의 시간이 다가왔다. 본능적으로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아니 자면서도 계속 신경이 쓰였다. 따뜻한 텐트에서 자는데, 근무시간이라고 깨우면 정말 싫다. 아니 죽도록 싫다. 그러나 어김없이 깨우러 온다. 신기하게 단 한번도 제시간에 깨우러 오지 않은 적이 없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배일병! 배일병! 근무다! 가츠 상병님 깨워드려!"
"일어났어! 저리가!"
나와 배일병은 주섬주섬 복장을 갖추기 시작하였다. 가운데서 세월아 네월아 풀취침을 하고 있는 이병장이 부러웠다. 행여 얼까봐 텐트 안에 고이 모셔둔 전투화를 신고는 텐트 문을 열었다. 뼈속까지 시려오는 차가운 공기가 금새 나를 각성시켜 주었다. 전번 근무자와 인수인계를 하고, 배일병과 나는 은신처를 찾기 시작했다.
딱히 하는 일은 없다. 텐트 주변을 감시하며 행여 있을지 모르는 거수자를 통제하면 된다. 일반 산 속이다보니 민간인이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고 있는 우리들의 총이라도 훔쳐가면 곤란하니 말이다. 민간인 뿐만 아니라, 대항군의 공격이 있을 수도 있으니, 어쨌든 주변을 살펴야 된다.
나름 은신이 되는 곳을 발견한 우리들은 그 곳에서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물었다. 입김인지 담배연기인지 분간이 안되었지만, 뽀얀 연기는 밤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문득 올라가는 연기를 보며 고개를 들었는데, 밤하늘은 별들로 가득하였다.
"아름다워!"
그렇게 나는 넋을 놓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새벽이 오고 있었다. 불과 하루 전만해도 따뜻한 내무실에서 아침을 맞이하였는데, 지금은 어디인지도 모르는 낯선 산 속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신기해 하는 것도 잠시, 소대장 텐트쪽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설마 대항군이라도 온 것일까? 나는 무전기가 들린 손에 꼭 쥐었다. 그리고 K-3를 들고는 조심스레 소대장 텐트를 향해 다가갔다. 배일병 또한, 자신의 K-2 소총에 조정간을 안전에서 단발로 바꾸고는 나를 따라왔다. 기도비닉을 유지한 채 소대장 텐트를 향해 다가가는 우리들의 두 눈은 한층 빛나고 있었다.
내 소대장은 내가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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