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지난 글보기
오늘은 일병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5년 9월, 우리 주둔지에도 가을이 찾아왔다. 무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강원도의 가을은 매우 짧다. 잠시 한 눈을 팔면 겨울이다. 우리들은 화창한 날씨를 뒤로 하고, 훈련을 뛰느라 여념이 없었다. 날씨가 좋을수록 훈련량이 많아진다.
중대전술훈련을 복귀하고 주말에 훈련 정비를 하고 있었다. 김상병이 수도꼭지에 호스를 연결하여 물을 뿌려주고 있다. 나와 윤이병은 흙이 잔뜩 묻은 판쵸우의와 텐트를 힘차게 밟으며 씻고 있었다.
"야 깐돌이 팍팍 밟으라고!"
"가츠일병님! 제가 다 밟고 있습니다!"
"이야 깐돌이 많이 컸다! 이제 말대꾸도 하네!"
"........."
티격태격거리는 우리들을 보며 김상병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에게 물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꺅꺅~! 거리고 도망갔다. 얼핏보면 로맨스영화의 한 장면같다. 비록 여자주인공은 없지만 말이다. 평화로운 주말 오후, 김상병이 뿌려주는 물줄기너머 아름다운 무지개가 얼핏 보였다.
다음날, 소대장은 우리에게 따끈따끈한 소식을 전해주었다.
"드디어 너희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기자 페스티벌이 다음주로 예정되어 있다. 퍼레이드행사를 준비해야되니, 차출되는 인원들은 열심히 연습할 수 있도록!"
이기자 페스티벌? 대학에도 축제가 있듯이 군대에서도 축제가 있다. 이름 그대로 이기자부대의 축제이다. 일년 한번 개최되는데 15000여명의 이기자부대원들이 가장 기다리는 순간이다. 무엇보다도 행사기간 동안은 일체 훈련이 없으며, 위수지역인 사창리로 나가서 여러 행사들을 하며, 맛있는 먹거리도 먹을 수 있다.
결정적으로 국군방송 위문열차와 함께하는 야간 행사에서는 가수들의 콘서트가 이어진다. 얼마전, 전역한 이기자 수색대대 출신의 GOD 김태우병장이 있을 때는 정말 대단하였다고 한다. 그의 인맥을 총동원한 막강 섭외로 원더걸스, 백지영 등 당시 톱가수들의 무대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태우는 내가 전역하고 2달 후에 입대하였다. 어흐흑흑ㅜㅜ
어쨌든, 티비에서나 보는 연예인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우리들은 모두 들떠 있었다. 사실 남자연예인은 중요하지 않다. 조인성, 장동건이 와도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여자 연예인이라면 다르다. 아니 굳이 연예인일 필요도 없다. 그냥 연예인지망생이 와도 되고, 길거리에 볼 수 있는 나레이터 누나들이 와도 된다. 그저 와서 무대 위에 서기만 하면, 생애 최고의 환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체력 극강인 군인 15000명이 쉬지않고, 목이 터져라 환호하는 지상 최고의 콘서트 현장~! 평소 듣보잡 연예인마저도 이곳에서는 이효리의 인기를 능가한다.
"군부대 공연은 제가 연예인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우리들은 소대장의 통보를 듣자마자 환호하였고, 곧 상병들의 지휘아래 퍼레이드 팀이 구성되었다. 사실 퍼레이드라고 해서 거창한 행사도 아니다. 그냥 동네 한바퀴 도는 수준이었다. 군복만 입고 돌면 허전하니깐,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물품을 가지고 분장을 한다. 그렇게 일주일 동안 우리들은 부족하지만 열심히 준비하였다. 하지만 허접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행사 당일, 우리들은 각자 맡은 역할에 맞는 복장을 갖추고 사창리로 이동하였다. 가는 내내, 다소 심각한 복장을 한 인원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말이 없었다. 옆자리에 있던 거지 복장을 한 7중대 아저씨는 고참에게 울상을 지으며 투덜거렸다.
"거지 복장은 좀 부끄럽지 말입니다?"
"괜찮아 어차피 못 알아볼텐데! 아는 사람도 없잖아!"
"그래도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사실 많이 부끄럽다. 나라면 절대 소화하지 못했을거야! 근데 은근 잘 어울렸다. 그렇게 걱정하는 사이 사창리에 도착하였고, 우리는 다른 연대와 같이 퍼레이드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우리의 예상과는 달리 길거리는 한산하였다. 소녀떼들은 전부 학교를 갔고, 대학생은 원래 없는 곳이다. 기껏해야 상가 주민들과 군인가족이 전부였다.
거지 복장을 한 아저씨들을 필두로 우리 연대가 퍼레이드를 시작하였다. 우리 용호연대는 이름에 걸맞게 용과 호랑이 장식을 앞세웠다. 방금전까지 부끄럽다던 아저씨는 언제그랬냐듯이 신나게 춤을 추며 걸어나갔다. 진짜 거지 같았다.
"저건 연기가 아냐!"
사진을 보니 용과 호랑이 장식은 은근히 퀄리티가 높아 보이지 않는가? 지금와서 돌이켜보니, 그것들은 우리 연대 용호정사 법당에 장식해놓은 것을 떼온 것이다. 대인배 부처님은 이해해주실거다 앜ㅋㅋㅋㅋ
우리들은 퍼레이드를 무사히 마치고, 다음 연대의 퍼레이드를 구경하였다. 저 멀리서 등장하는 78연대 인원들, 차량까지 동원하여 오고 있었다.
"이야 쟤네들은 차량까지 동원했네?"
"기름이 남아 도는구나!"
그렇게 삼삼오오 모여서 구경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김상병이 나의 등을 두들기며 겁나 웃는게 아닌가? 뭔가 싶어 바라보았다. 곧, 나는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저 자식 분명히 이등병입니다! 스스로 했을리가 없지 말입니다!"
"독한 녀석들! 완전 막장이구나! 저런 식으로 웃길려고 하다니!"
"이건 범죄지 말입니다!"
"헌병에 신고해!"
우리들은 모두 박장대소를 하였고, 거지 분장을 한 아저씨는 그제서야 자신의 복장에 만족하며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렇게 모든 퍼레이드가 끝났고, 하늘에서는 본격적인 축제를 알리는 헬기의 축하 비행이 시작되었다.
가을 날씨가 한창인 강원도의 외딴 산골 마을은 축제 열기로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반응형
'가츠의 군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츠의 군대이야기, 페스티벌 下편 (277) | 2009.09.18 |
---|---|
가츠의 군대이야기, 페스티벌 中편 (255) | 2009.09.17 |
가츠의 군대이야기, 아트로핀 (275) | 2009.09.14 |
가츠의 군대이야기, 친구 (302) | 2009.09.10 |
가츠의 군대이야기, 대대부관 (316) | 2009.09.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