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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상병 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오전 6시, 어김없이 아침이 밝았다. 지난 밤 잠자리에 들면서 끊임없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였다. 상황이 발생되면, 신속하게 일어나서 침구류를 정리하고, 전투복을 입는다. 전투화를 신고, 단독군장을 착용한다. 완전군장을 결속하고는 치장물자 창고로 가서 화학자동경보기(km8k2)를 가져온다. 분대장에게 보고를 한 뒤, 행정반에 가서 96k 무전기를 수령한다. 그리고 지휘통제실로 가서 증가초소 투입을 보고하고는 위병소를 나선다. 영외도로를 건너 각개전투교장를 향해 뛰어간다. 각개전투교장에 도착하면, 화학자동경보기를 설치하고, 지휘통제실과 유선망을 확보한다.
위 사진이 화학자동경보기이다. 이 모든 것을 30분 이내로 해야 된다. 그냥 내무실에서 맨 몸으로 걸어가도 각개전투교장까지 20분이 소요된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속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군인이기에 가능하였다. 그나마 나는 다행이었다. 옆 소대의 증가초소는 312고지 정상이었다. 그냥 걸어가도 40분이 넘게 걸리는 곳이다.
"배일병! 오늘 어리버리까면 진짜 묻어버린다!"
"넵! ㄷㄷㄷ"
오늘은 군인이라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훈련, 군생활의 양대 산맥인 혹한기훈련이다. 유격훈련이 자신과의 싸움이라면, 혹한기훈련은 추위와의 싸움이다. 소총수에게 추위는 공포의 대상이다. 그만큼 군장에 넣어가야 할 방한용품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럼 자연스레 부식을 많이 챙겨갈 수 없다. 이는 다시 배고픔으로 이어진다. 자고 일어났는데, 텐트 문이 안 열린다면? 두말할 것도 없다. 눈 속에 파묻힌 것이다. 추위, 배고픔, 생존과의 싸움, 그것이 바로 혹한기 훈련이다.
요즘 아침 출근길이 너무 춥다. 그러나 영하 9도이다.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날 아침, 증가초소를 투입하기 위해 뛰어 갈 때, 행정반 문에 걸린 온도계는 영하 16도였다. 그렇게 4박 5일간의 혹한기 훈련이 시작되었다.
삐이 삐이~
제 1부 화스트 페이스 화스트페이스!
제 2부 2006년 2월 20일 06시
제 3부 통제단장
제 4부 안면위장실시, 소산진지투입, 증가초소운용, 치장물자 직접분배, 탄약, 식량 차량적재
내무실 문이 열리고, 통제관들이 카메라를 들고 들이 닥쳤다. 우리들은 이미 모두 깨어 있었다. 긴장한 채로 눈만 감고, 자는 척을 하였다. 다들 자신의 임무를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면서 말이다. 경보음이 울리자, 용수철처럼 일어난 우리들은 전투복을 입고, 군장을 꾸리기 시작하였다.
초FM훈련이기 때문에 모든 상황이 실제처럼 적용되었다. 군장을 꾸리는 와중에 1분대는 치장물자를 가지고 왔고, 소잔진지로 투입하였다. 2분대는 식량을 옮기러 1종 창고를 향했다. 당연히 3분대는 대대탄약고로 향하였다. 나는 이미 배일병과 함께 위병소를 벗어나 영외도로를 건너고 있었다.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지 않은가?
영외도로를 건너면, 각개전투교장으로 향하는 작은 다리가 있었다. 나와 배일병은 완전군장을 멘 채로 화학자동경보기를 양쪽에서 잡은 채 열심히 뛰었다. 게다가 나는 K-3기관총 사수였다. 생각하면 할 수록 아름다운 상황인 거 같았다. 수십킬로의 완전군장, 6.85킬로의 K-3기관총, 8킬로의 화학자동경보기까지, 혹한의 날씨였지만, 이미 나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야! 정지!"
"무슨 일입니까?"
"군장 벗어! 여기 짱박고 가자!"
"역시 가츠 상병님은 천재이십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각개전투교장까지 제 시간내에 올라갈 수 없었다. 결국, 군장을 벗어서는 수풀 속에 완벽하게 위장하여 숨겨두었다. 어차피 통제관이 이 곳까지 올라 올리가 없었다. 제시간에 설치하고 보고만 하면 된다. 마음 같아서는 총과 방독면까지 다 벗어 던지고 가고 싶었지만, 마지막 양심이 그것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고는 각개전투교장에 도착하였다. 나는 통신선을 찾아서 연결하였고, 배일병은 경보기를 설치하고 있었다. 곧, 배일병이 설치를 완료하였다며 수신호를 하였고, 나는 지체없이 지휘통제실로 보고를 하였다. 경보기는 이상없이 작동하였고, 비교적 빠른 시간내에 보고하였다. 이제 나의 임무는 끝났다. 사실 여기까지 오느라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주둔지에 있는 거 보다는 훨씬 좋았다. 지금 이 시각 주둔지에서는 각종 상황이 걸리고, 쉴새없이 통제관을 피해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배일병! 담배나 한 대 피자!"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평화롭게 앉아서 담배를 피며 산 아래 보이는 주둔지를 구경하였다. 얼씨구! 연병장에서 노란 가스가 뭉게뭉게 피어 올랐다. 곧 이어, 무전기에서 적 가스 공격이라며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화생방 상황이 걸린 것이다. 식량과 탄을 옮기던 인원들은 잽싸게 방독면을 착용하고는 헤롱헤롱 거리고 있었다. 보고만 있어도 숨이 턱턱 막혀온다.
옆에 앉아 있던 배일병이 주섬주섬 방독면을 꺼내 들고는 착용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잽싸게 착용해야 되는 것이 맞는 거지만, 통제관도 없는데 굳이 답답한 방독면을 쓸 이유가 없었다. 나는 한심하단 듯이 배일병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오바하지마 새까! 넌 항상 그게 문제야!"
"가츠 상병님! 방독면 쓰면 얼굴이 따뜻해요!"
"오호! 천재인데?"
그렇게 사이좋게 방독면을 착용한 2명의 군인은 준비태세가 끝날 때까지 산 정상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후, 무전기에는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하였다. 나와 배일병은 장비를 챙기고 산을 내려왔다. 다행히 숨겨둔 군장도 무사히 있었다. 주둔지로 돌아와서는 장비를 반납하고 취사장으로 가서 식사를 하였다. 이제 취사장에서 먹는 마지막 밥이었다. 다들 걱정스런 표정으로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었다. 취사병들도 출동 준비를 위해 취사도구를 차량에 싣느라 분주하였다.
"오늘 행군코스는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첫번째 코스가 명지령이라는 것 밖에!"
"명지령말입니까?"
"나도 작년에 한번 갔었는데, 토 나올 뻔 했지 후훗! 진심 리얼 존내 슬픈 코스다!"
"명지령이라? 왠지 근사한데 말입니다!"
분대장은 우리에게 각별히 주의를 주었다. 명지령? 령이라? 보통 령이라고 하면 추풍령, 대관령이 떠오른다. 주 행군로인 도마치고개, 유격장고개와는 스케일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잔뜩 긴장한 우리들은 식사를 마치고, 연병장에 집합하였다.
"2대대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힘찬 구호를 외치고는 대장정의 길을 올랐다. 그 때 시간, 오전 9시였다. 다행히 해가 떠서 다소 따뜻해지기는 하였지만, 그래봤자, 추운 건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행군할 때는 최소한의 복장만 갖추고 출발한다. 얇은 전투복 상하의만 입고 말이다. 더이상 입으면, 오르막길에서 바로 낙오한다. 군장을 메고 걷는 것 자체가 추위를 잊게 해준다. 오르막길에 당도하면 혹한의 날씨에서도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초반에는 3시간가량 도로를 타고 평지를 걸었다. 이기자 부대 소총수들에게 평지란? 완전군장을 메고 있다하더라도, 강아지와 산책하는 기분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기쁨도 잠시, 어느새 우리들이 걷던 도로는 아스팔트에서 비포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경사가 시작되기 시작하였다.
"야! 무슨 일이야?"
무슨 시츄레이션인가? 뒤에 따라오던 이일병이 벌써부터 쳐지기 시작하였다. 신병도 아니고, 일병이 쳐지다니, 어디 아픈 곳이라도 있는걸까? 분대장은 깜짝 놀라 이일병에게로 다가갔다. 나도 어이가 없어서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잠시후, 분대장은 자신이 알고 있는 욕이란 욕을 다 퍼부으며 이일병을 갈구기 시작하였다.
"야이 개또라이 같은 놈아! 지금 소풍가는 겨! 누가 행군하는데 내복에 깔깔이에 야상까지 입으래!"
"죄송합니다아!"
"니가 그러고도 일병이야! 아나 짬밥을 어디로 먹은겨!"
"죄송합니다아!"
"다른 놈들은 머리에 총 맞아서 전투복만 입고 있냐? 아나 이런 걸 분대원이라고 데리고 다니다니!"
"죄송합니다아!"
그랬다! 우리의 이일병은 춥다며, 혼자 바리바리 껴입고 있었던 것이다. 왠지 멋있었다. 브라보! 짝짝짝! 그렇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는 다시 출발하였다. 고개를 들자, 오늘의 첫번째 관문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하였다.
"아담하니 좋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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