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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전차중대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얼마나 잤을까? 옆자리에 있던 노일병이 나를 깨우기 시작하였다. 손목에 차고 있는 전자시계를 조명을 켰다. 시계의 숫자는 새벽 3시를 알리고 있었다. 주섬주섬 일어나 방한화를 챙겨 신고는 완전무장을 하였다. 현재 바깥 기온 영하 22도, 체감온도는 영하 30도를 육박할 것이다.
"지금 나가면 죽을지도 몰라!"
체육관 창문을 신나게 때리고 있는 바람소리를 들으니, 살벌하였다. 당장이라도 나를 잡아 먹을 거 같았다. 두툼한 방한수갑을 손에 끼고는 황색 수기를 들었다. 근데 이 놈의 황색 수기는 너무나도 컸다. 깃발 하나가 한 개 중대를 묘사하는 탓일까? 잘만 펼치고 있으면 바람을 타고 날아갈 수 있을만한 크기였다.
"느낌이 좋지 않아!"
아니나 다를까? 수기를 들고 밖으로 나오자, 강한 바람에 수기가 미친듯이 휘날리기 시작하였다. 이내 수기를 잡은 손에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 오더니, 나의 몸을 흔들어대기 시작하였다. 이 상태로는 가만히 서있는 거 조차 힘들었다. 소대장과 노일병은 이런 나를 보며 연신 재밌다는 듯이 방긋 웃고 있었다.
이제부터 우리의 임무는 78연대가 방어하고 있는 지역을 돌아다니며 방어태세를 점검하는 것이다. 물론, 평소 같으면 공포탄, 신관, 연막탄 등으로 실전을 방불케하는 전투를 펼쳐야 되지만, 지금은 수기로 대체되었다. 고로 무척 편하다고 생각하였는데, 수기가 이렇게 클줄이라고는 상상도 못하였다.
"노일병! 내가 무전기 멜게!"
"안됩니다! 가츠상병님은 음어(통신암호) 모르시지 않습니까!"
"그래 니 잘났다! 소대장님! 제가 상황판 들고 가겠습니다!"
"어 그래! 자!"
"이게 아니지 말입니다! 어흐흑흑!"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팔이 후들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산악 기동을 하지 않고, 잘 포장된 도로로만 이동한다는 것이었다. 무지막지한 수기를 들고 산 속으로 들어간다면, 온갖 나뭇가지에 다 걸려서 훨씬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 후, 중사로 보이는 통제관이 우리에게 배속되었다. 보통 통제관은 장교 위주로 되어 있는데, 신기하게 부사관이 왔다. 이 것은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다. 장교의 경우라면 우리 소대장보다 계급이 높으면 최악이겠지만, 동기거나 후임이라면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하지만, 부사관이기에 서로 터치할 만한 관계가 못 되었다.
행여 당연히 장교가 계급이 높으니 짱이지 않은가? 라고 물으신다면, 무개념 소위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갓 임관한 20대 초반의 파릇파릇한 소위가 30년 넘게 산전수전 다 겪은 주임원사에게 왜 경례안하냐고 하는 거랑 같다. 내가 근무할 때는 다행히 한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댓글 달아 주시는 구독자 분들을 이야기를 보니, 꽤나 많았다. 상상만 해도 아찔한데, 몸소 실천하다니 정말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어찌 되었건 그렇게 통제관과의 어색한 동행은 계속 되었다. 당시 K-3를 잡기 직전인지라 나의 정확한 보직은 4번 유탄수였다. 고로 K-201이 나의 개인화기였다. 그러나 훈련을 나오는데 굳이 무겁게 유탄을 달고 나올 이유가 없다고 판단, 후임의 소총에 대신 달아놓고 왔다. 원래 기관총이나 유탄의 경우는 화력이 강하기 때문에 항상 편제되어 있어야 한다. 휴가나 파견, 입실 시에 인계하고 와야 된다.
한참을 기동하고 나서,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다. 당시 소대장과 노일병, 나는 철저한 애연가였다. 고로 당연히 흡연을 해야 되는데, 통제관은 매서운 눈빛으로 평가판을 들고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소대장을 바라보며 협상을 시도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소대장 또한, 자신있게 나서지 못하였다.
그렇게 영하 20도가 넘는 야심한 새벽, 4명의 군인은 뻘쭘하게 서 있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나는 조심스레 전투조끼에 달려있는 LED등을 만지는 척 하며 주머니에 들어있던 담뱃갑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떨어진 담뱃갑을 본 그들의 시선은 한결같이 초롱초롱 빛났다. 통제관의 눈망울, 그 또한 머리부터 발 끝까지 영락없는 애연가의 눈빛, 그 자체였다.
'당신도 꼴초군요!'
잠시 후, 길가에는 자연스레 담배를 피고 있는 4명의 행복한 군인의 모습이 목격되었다. 그렇게 별다른 상황없이 정오가 될 때까지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12시가 되자, 무전이 들렸다.
"현 시간부로 상황종료! 전 병력 철수!"
상황종료를 알리는 교신이 나오자, 산 속에서 78연대 병력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새 도로는 대항군과 78연대 병력으로 가득 찼다. 지난 밤, 혹한의 추위와 맞서 싸우며 산 속에서 맨 몸으로 방어를 한 그들의 모습은 마치 설인같았다. 이제 내일 우리는 방어, 그들은 공격으로 다시 만날 것이다.
다음 집결지로 가는 78연대 병력들과 주둔지로 돌아가는 대항군 병력들로 2차선 도로는 군인들로 바글바글 하였다. 얼마나 걸어가고 있었을까? 재차 무전이 들려왔다.
"잠시후 사단장님 지나가실 예정임! 주의바람!"
"전원 소산! 빨리 숨어!"
순식간에 수백여명의 군인들은 도로 옆의 가드레일을 넘어 산 속으로 숨기 시작하였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군인들로 가득 찬 2차선 도로는 개미 새끼 한 마리도 없이 텅텅 비었다. 예비역이라면 왜 우리들이 숨은 지 알 것이다. 굳이 지나가는 사단장을 마주할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별 문제없이 넘어가면 괜찮지만, 괜히 지적사항이라도 하나 나온다면 피곤해질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의 말 한마디는 엄청나다. 예를 들어, 요즘 전력소모가 심해서 아껴써야 된다. 상황보고에 사단장이 다음과 같이 한마디 했다고 하자.
"일조시간에 맞춰서 전등을 확실하게 끌 수 있도록!"
물론, 어느 조직사회에서나 보스가 다음과 같이 말하면 지켜진다. 그러나 군대에서는 지켜지는게 아니라 목숨걸고 지켜야 된다. 아침에 깜빡하고 전등 스위치 한번 안 내렸다고, 끌려가서 경위서 쓰고, 하루 종일 완전군장 돌 수도 있는 곳, 그 곳이 바로 군대이다. 절대적인 상명하복의 원칙이 존재한다. 고로 우리들은 숨어야 한다. 철저하게 말이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듯이, 우리는 우리의 지휘관을 마음 놓고 마주할 수 없었다.
며칠 전, 구독자분께서 제가 나온 이기자부대에 관한 기사를 댓글창에 링크하여 주셨다. 반가운 마음에 가서 읽어 보니, 훈훈한 내용이었다.
[관련기사] "기습폭설로 마비된 마을을 구하라!"
기사를 확인해보니, 역시 훈훈, 그 자체였다. 강원도 산간지역의 경우에는 폭설이 내리면 고립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주로 노인분들이 거주하시기 때문에 제설작업을 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자랑스런 군인들이 투입된다. 그들이 있기에 혹한의 추위도, 폭설도 두렵지 않다.
마침 기사에 나온 전인범 사단장님으로부터 받은 편지가 한 통 있어서 소개하겠다. 그는 육사 37기로 22사단 대대장, 9사단 연대장, 국방부 국제협력관실 대미정책과장, 합참 전략본부 전작권 전환 추진단장을 거쳐 제 34대 27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일전에 책이 출간되었을 때, 부대로 선물하였는데, 친절하게 답장을 해주셨다. 현역시절, 감히 마주하기도 힘든 큰 산이었는데, 배려깊은 그의 편지를 받으니 참으로 신기하였다.
[관련기사] "기습폭설로 마비된 마을을 구하라!"
기사를 확인해보니, 역시 훈훈, 그 자체였다. 강원도 산간지역의 경우에는 폭설이 내리면 고립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주로 노인분들이 거주하시기 때문에 제설작업을 할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런 곳에는 어김없이 자랑스런 군인들이 투입된다. 그들이 있기에 혹한의 추위도, 폭설도 두렵지 않다.
마침 기사에 나온 전인범 사단장님으로부터 받은 편지가 한 통 있어서 소개하겠다. 그는 육사 37기로 22사단 대대장, 9사단 연대장, 국방부 국제협력관실 대미정책과장, 합참 전략본부 전작권 전환 추진단장을 거쳐 제 34대 27사단장으로 부임하였다.
일전에 책이 출간되었을 때, 부대로 선물하였는데, 친절하게 답장을 해주셨다. 현역시절, 감히 마주하기도 힘든 큰 산이었는데, 배려깊은 그의 편지를 받으니 참으로 신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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