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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야! 눈 떠 새까!"
"죄송합니다아!"
"너 그거 밖에 안돼!"
"아닙니다아!"
끝 없는 오르막길, 우리들은 하나 둘씩 지쳐가고만 있었다. 어느덧 영하의 날씨를 느낄 새도 없이 온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가빠지는 호흡소리, 여기 저기서 울려퍼지는 고함소리, 그러나 나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로지 앞 전우의 전투화만 보며 걷고 또 걸었다.
"힘내라! 정상이 코 앞이다!"
"5중대 파이팅!"
이윽고, 김이병이 또 말썽이었다. 유난히 체력이 약한 김이병은 이미 출발행군 당시, 이 곳을 점령하지 못했다. 제대로 드러눕고 기절하는 바람에 중대장의 발길질 세례를 받을 뻔하였다. 물론, 기절한다고 발길질을 하지 않는다. 진짜 기절했는지 확인을 하고 싶을 뿐이다. 가끔 너무 힘든 나머지, 기절하는 척 하는 병사들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우리들의 용어로는 뺑끼라고 한다. 할 수 있는데, 못하는 척 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 김이병은 뺑끼를 부리다 딱 걸렸다. 기절한 김이병 주위로 중대장과 소대장, 의무중대장까지 모여서 걱정을 하였다. 열심히 흔들어 깨워보았지만 기절한 김이병은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중대장은 사자후를 날리며 발길질 하려고 하였다.
"어디 이등병노무새끼가 약해 빠져가지고, 이걸 확!"
"움찔!"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 딱 걸렸어!"
그렇게 중대장의 협박에 다시 부활한 김이병은 세상 모든 갈굼을 다 받으며, 울면서 행군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다시 만난 고개에서 그는 또 쳐지고 있었다. 사실, 약해보이는 그의 체격으로는 누가 봐도 무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버리고 갈 수는 없다. 그도 언젠가 고참이 될 것이고, 분대장이 될텐데, 본인을 위해서라도 기필코 완주하여야 한다. 자신의 분대장이 픽픽 쓰러지는 약한 존재라면, 전혀 통제가 되지 않을테니 말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어느새 해가 지고, 사방이 칠흙같은 어둠으로 뒤덮였다. 이제는 졸음과의 싸움이다. 지난밤은 혹한의 날씨 속에 방어를 하느라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아니 지난 5일동안 제대로 누워서 눈을 붙힌 시간은 다 합쳐도 10시간도 되지 않을 것이다.
행군하다가 논두렁에 빠지는 일, 충분히 가능하다. 다리는 계속 움직이고 있는데, 눈은 나도 모르게 스르르 감긴다. 자다 깨다 하기를 수십번, 잠시 휴식을 가지기로 하였다. 마지막 고비를 위해 재정비 할 시간이 필요하였다.
"쉬는 동안, 이등병들은 양말 갈아신을 수 있도록! 나중에 물집 잡혀서 울지 말고!"
땀에 젖은 양말은 물집이 잡히기에 딱 좋다. 그러나 이미 대다수의 신병들은 물집이 잡힌 상태였다. 그들에게는 지금 이시간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고통스런 순간일 것이다. 매일 아침, 따뜻한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어머니가 해주시는 맛있는 아침을 먹으면서 살아 왔을텐데, 지난 일주일 동안, 그들은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하였다. 짐승은 추위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털이라도 있는데 말이다.
옆에서 툭 치면, 금방이라도 울 거 같은 그들의 표정을 보며, 나는 타들어가는 담배를 한모금 깊게 빨고는 허공을 향해 뿌연 연기를 내뱉었다. 불과 1년 전, 나의 모습도 그들과 같았다. 군복을 입은 1년이라는 시간이 나를 누구보다도 강인하게 만들어 주었다.
허벅지가 저려온다. 어느새 길은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 되었다. 이 고개만 무사히 넘으면 주둔지가 있다. 그러나 밤새도록 걸은 우리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산이었다. 앞 쪽에 밝은 불빛이 보이고, 한 무리의 병사들이 있었다.
"힘내세요!"
"고마워요!"
군종병은 행군하는 우리를 격려하기 위해 초코파이를 가지고 나온 것이다. 자신은 행군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안한 나머지,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우리에게 초코파이를 건네주고 있었다.
1년 전만 하더라도, 그들이 미칠듯이 부러웠다. 아니 도로통제를 하고 있는 헌병, 트럭을 타고가는 취사병 등, 걷지 않는 모든 병사들이 미칠듯이 부러웠다. 하지만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었고, 부러워만 한다면 군생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지금은 더 이상 부럽지 않았다. 인간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기 때문이다.
"가자! 마지막이다!"
그렇게 우리는 동이 틀 무렵, 마지막 고개를 무사히 넘을 수 있었다. 이제 수백미터만 더 가면, 꿈에 그리던 주둔지가 나올 것이다. 이미 멀리서 우리를 반겨주는 군악대의 웅장한 연주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신병들도 들은걸까? 그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3소대 군가하자! 군가! 최후의 5분!"
숨 막히는 고통도 뼈를 깎는 아픔도
승리의 순간까지 버티고 버텨라
우리가 밀려나면 모두가 쓰러져
최후의 5분에 승리는 달렸다
적군이 두 손 들고 항복할 때까지
최후의 5분이다 끝까지 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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