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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야간방어에 이어 전사상자 훈련까지 무사히 마치고 집결지로 모여 전장정리를 하였다. 어느덧 짧은 겨울해는 산등성이 걸렸다. 이제 혹한기훈련의 마지막 관문만 남았다. 그것은 바로 훈련의 꽃인 복귀행군이다. 한 주 내내 추운 산속에서 훈련을 뛰면서 지칠대로 지친 우리들에게는 꽤나 힘든 과제였다. 게다가 지난 밤, 야간방어로 인해 제대로 자지도 못하였기에 피곤함을 최고조에 다다랐다.
저녁을 먹을 때까지, 잠깐의 휴식시간이 보장되었다. 분대별로 오순도순 모여 앉아 금새 쪽잠을 청하였다. 차가운 땅바닥이었지만, 불편함을 느낄 새도 없었다. 최대한 쉴 수 있을 때, 쉬어야 된다. 이제 복귀행군만 무사히 마치면 따뜻한 내무실에서 편하게 잘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씻을 수 있고, 취사장 식탁에 편하게 앉아서 먹고 싶은만큼 마음껏 밥을 먹을 수 있다.
훈련을 하지 않을 때는 부대에 갇혀 있는게 너무 답답하였고, 매일 같이 먹는 짬밥이 싫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모든 것이 너무 그립고 간절하였다. 잠시후, 이른 저녁을 먹고 출발 준비를 하는데, 무전기 교신이 다급하게 들려왔다.
"로미오장 방문한다고 알리는구나!"
로미오장이라고 하면 연대장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복귀행군에 앞서 연대장이 직접 우리들을 격려해주기 위해서 오는 것이었다.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연대장을 맞이하였다. 연대장은 추운 날씨에 고생이 많다며 손수 우리들과 악수를 하며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사아앙벼어엉 가아아츠으으! 감사합니다아!"
"그래 주둔지에 보자! 파이팅!"
어찌보면 단순한 악수 한번이었지만, 연대장과의 악수는 실로 어마어마하였다. 연대장의 손가락질 한번에 있는 산도 없어지고, 없는 산도 만들 수 있는 그야말로 신의 손이다. 따뜻한 그의 격려에 없는 힘도 다시 샘 솟는 거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대망의 혹한기 복귀행군을 시작하였다.
행군코스는 출발 때랑 비슷하였다. 그러나 뭐니뭐니 명지령이 관건이었다. 출발행군 때도 최악의 낙오자를 배출한 코스였기 때문에 그 때 낙오하였던 후임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어두기만 하였다. 모르고 가는 거랑 알고 가는 거랑은 또 기분이 다르다. 모르고 갈 때는 막상 그 상황이 닥칠 때까지는 괜찮지만, 알고 가는 것은 아는 순간부터 걱정이 밀려온다. 정신적으로 지치게 되는 것이다.
"이일병! 또 혼자 깔깔이 쳐입고 있는 거지 아니겠지?"
"아닙니다! 흑흑!"
"배일병! 넌 또 가서 눈 먹고 기도하면 진짜 묻어버릴거야!"
"아닙니다! 흑흑!"
출발행군 때의 히어로에게 확실하게 정신교육을 시켜주고는 명지령을 향해 나아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다들 양호하였다. 짧게나마 휴식도 취하였고, 저녁도 든든히 먹었기에 컨디션은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겨울의 짧은 해는 금새 떨어졌다. 다시 찾아 온 겨울밤의 추위는 행군하는 우리들을 지치게 만들기 충분하였다.
"평지를 걸으면 춥고, 오르막을 오르면 덥고, 더우면 땀 나고, 식으면 더 춥고, 이건 뭐 싸우자는거냐!"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였다. 앞서가는 중대장은 최대한 빨리 주둔지에 도착하기 위해 스피드를 내기 시작하였다. 어느새 눈 앞에 공포의 명지령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명지령은 왜 그대로냐고!"
"4일 밖에 안 지났지 말입니다!"
하긴, 4일 전에 넘어왔으니 그 때의 포스 그대로 떡하니 우리를 반겨주었다. 햇볕이 드는 곳은 눈이 녹았지만, 굽이굽이 오르막길로 들어서자 반짝반짝거리는 빙판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다시 시작되는 아이젠의 공포.
"전병력! 아이젠 착용할 수 있도록!"
우리들은 투덜거리며 군장에서 아이젠을 꺼내서는 전투화에 장착하였다. 확실히 미끄럼 방지에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발바닥이 너무 불편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본격적인 오르막길에 접어들자 하나 둘씨 쳐지는 인원들이 속출하였다. 행군도 경험이다. 한번 악착같이 버티고 버텨서 무사히 완주하면, 그 코스는 절대 다시 낙오하지 않는다.
그 때보다 훨씬 지치고 힘든 상황이라도, 자신이 정복한 코스는 절대 낙오하지 않는다. 그러나 낙오를 한 코스라면, 또 낙오를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고참들은 낙오하는 후임이 생기면 악착같이 버텨서 스스로 이겨내라고 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인생도 비슷하지 않은가?
"얼마나 먼 길을 걸어봐야 비로소 참된 인간이 될까?"
포크의 전설, 가수 밥 딜런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니 노래 하였다. 참된 인간이라?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 부대원들은 전원 예수님이요, 부처님이지 않을까? 이미 참된 인간의 범주를 충분히 능가한 것만 같았다.
물론, 그 답은 지금 내 얼굴을 차갑게 때리고 있는 바람만이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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