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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총기만행 上편, 총기만행 中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김이병이 쏘아 올린 한 발의 공포탄은 무슨 의미였을까? 힘든 한 해를 마무리하는 회심의 축포였을까? 영원히 마무리 될 것만 같은데 말이다. 때마침 취사장에서 대대장 정신교육을 마친 인원들이 하나둘씩 나오고 있었다. 선두에는 지휘봉을 든 대대장의 위풍당당한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 엣지있게 따라 나오는 중대장들과 참모들, 그들이 향하고 있는 곳은 문제의 지휘통제실이다. 문득 얼마전 전역한 고참이 우리에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내년이 올 거 같냐? 앜ㅋㅋㅋㅋㅋㅋ"
자정까지 4시간도 채 안 남았는데, 왠지 내년이 올 거 같지 않았다. 김이병을 붙잡고 취조를 하던 당직사령이 대대장이 오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는 당황해하였다. 다행히 취사장에 있던 대대장은 공포탄 소리를 듣지 못하였나보다. 별다른 말 없이 지휘관 차량에 올라타더니 그대로 위병소 문을 나가 퇴근하였다.
한참을 김이병과 대화를 하던 당직사령은 우리 중대장에게 자초지종을 보고하였고, 중대장은 사랑스런 표정으로 김이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살포시 헤드락을 걸고, 김이병을 질질 끌고 중대로 올라오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나와 윤일병은 잽싸게 내무실로 돌아왔다.
"가츠 일병님! 만두 군장 미리 싸놓는게 좋지 않습니까?"
"아..아마도!"
잠시후, 교대장(분대장)과 심상병이 상기된 얼굴로 내무실에 들어왔다. 분대장은 들어오자마자 방탄헬멧을 침상에 집어던지고는 고래고래 사자후를 날렸다. 그리고는 우리를 바라보더니 말하였다.
"전원 다 내무실에 집합시켜!"
우리는 총알같이 밖으로 뛰쳐나가 취사장에서 해맑게 웃으며 돌아오고 있는 소대원들에게 달려갔다. 그들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자, 얼굴에 웃음이 싹 사라졌다. 잽싸게 내무실로 돌아온 소대원들은 자신의 침상자리에 각을 잡고 앉았다. 중앙 통로에는 분대장만이 말없이 서있었다.
극도로 긴장된 순간이다. 어느 누가 한 해의 마지막날을 이런식으로 보낼 줄이야! 상상이나 했을까? 내무실에는 무거운 침묵만이 감돈다. 순간, 분대장이 서서히 발걸음 떼었다.
"저벅저벅!"
분대장의 전투화소리에 맞춰 나의 심장도 쿵쿵 뛰기 시작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이병이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도대체 왜 그런걸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평소 체력이 약해서 남들보다 고생하기는 하였지만, 열심히 적응할려는 자세가 돋보였기에, 내무생활에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순전히 실수였을까?
한참을 말없이 걷던 분대장이 감정이 결여된 탁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아나 방금 군만두같은 놈이 공포탄을 쐈어! 왜 쐈을까?"
"모르겠습니다아!"
"자기 말로는 그냥 갑자기 총이 발사되었다고 하는데, 우리 총이 인공지능이 달린 것도 아니고? 나가겠냐"
"안나갑니다아!"
"여튼 중대장님이랑 상담하고 있으니, 이따가 돌아와도 아무 말도 하지마! 모른 척하고 있어! 괜히 갈구지 말고!"
"넵!"
그렇게 말을 마친 분대장은 침상으로 올라가더니, 분대장 수첩을 꺼내고는 무언가를 적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김이병에 관한 내용인가보다. 분대장의 모습을 보니, 역시 전역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창 때의 분대장이었다면 이렇게 조용히 넘어가지 않을텐데 말이다.
잠시후, 김이병이 중대장과의 상담을 마치고 내무실로 돌아왔다. 한껏 얼어있는 김이병을 보자, 화가 나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하였다.
다행히 중대장은 이등병인 김이병에게 별다른 문책을 하지 않고, 좋게 마무리 한 거 같았다. 하긴 몇시간 후면, 새해인데 좋은게 좋은거지! 별다른 후폭풍이 없자, 내무실 분위기는 다시 화기애애졌다. TV의 전원이 켜졌고, 화면에는 연말시상식이 한창이었다. 다들 TV를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관물대에서 무언가를 찾고 있는 김이병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
"만두! 중대장님이 뭐라고 하시든?"
"잘 때까지 총 닦으라고 하셨습니다!"
"내년까지 닦으란 소리군! ㄷㄷㄷ"
그렇게 김이병은 총기수입도구를 꺼내고는 묵묵히 자신의 소총을 닦기 시작하였다. 김이병은 끝까지 자기가 쏜 게 아니라고 말하였지만, 그냥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였다. 나라도 내가 쐈다고 하지 않을 거 같다. 결국 내가 생각한 추리는 김이병이 근무를 서면서 총을 만지작거리다가 실수로 조정간을 안전에서 단발로 옮겨놓았다. 그리고 그 사실을 몰랐던 김이병이 안전검사과정에서 총을 발포한 것이다.
"이거 말고는 답이 없어!"
김이병을 노려보며 나만의 추리를 마쳤다. 쯧쯧! 그렇게 근무시간에 총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하였는데, 한심하다 한심해! 분대장의 엄포만 없었더라면, 제대로 만두피 속에 군기확립이라는 양념을 고루고루 쑤셔 넣어줬을텐데 아쉬웠다.
그렇게 안 올 것만 같았던, 2006년 새해의 아침이 밝았다. 일요일인지라 아침식사를 마치고 종교행사를 가기 위해 중대의 분위기는 어수선하였다. 각 종파별로 인원을 조사하고 행정반으로 보고를 하러 갔다. 행정반에는 심상병과 김이병이 근무투입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만두 오늘은 사고치지마!"
"넵!"
어제 글에서 언급하였지만, 군대에서는 뒤끝없이 살아가야지 행복할 수 있다. 어제의 일은 지나간 과거일 뿐이다. 나는 웃으며 김이병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행정반 상황판에 우리 소대 종교행사 인원을 기록하고 있는데, 비상벨이 한 번 울렸다. 행정반에 설치된 비상벨은 주요 지휘관의 출입여부를 알려주는 것이다. 한번은 대대장, 두번은 연대장, 세번은 사단장이라는 뜻이다. 고로 지금 대대장이 부대로 들어왔다는 뜻이다.
지휘통제실 앞에는 대대장의 레토나가 들어오고 있었고, 당직사령은 인사를 하기 위해 나와 있었다. 그리고 옆에서는 심상병과 김이병이 근무투입을 위해 탄을 받고 있었다. 뭔가 기분이 찝찝하다. 아니나 다를까?
"타앙!"
어제에 이어 김이병의 소총은 또 다시 신나게 불을 내뿜었다. 마치 주말에도 출근하는 대대장을 반겨주는 축포마냥 시원하게 말이다. 밤샘근무로 짙은 다크써클이 내려온 당직사령은 또다시 화들짝 놀라며 김이병을 바라 보았다.
"또...너냐?"
"............."
이 모습을 본 대대장은 차에서 내려 김이병에게로 다가왔다. 이제 김이병은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그 만의 루비콘 강을 건넌 것이다. 당직사령은 당황한 얼굴로 대대장에게 지난 밤에 있었던 내용과 함께 자초지종을 보고하였다. 대대장은 흥미롭단 표정을 지으며 김이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김이병의 손에 들려진 문제의 소총을 잡더니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사색이 된 김이병은 자신에게 내려질 처분을 기다리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한참동안 총을 살펴보던 대대장은 쿨하게 미소를 지으며 탄식하였다.
"새해 첫날부터 부하에게 총을 맞다니, 올해도 진급은 물 건너 간건가?"
그렇게 멸공대대의 새해가 화끈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덧] 2차례의 총기만행(?)으로 인해 김이병의 소총은 사단 정비대의 정밀검사을 받았다. 검사결과, 총기자체결함으로 판명되었다. 얼마후, 김이병은 빛나는 A급 소총을 받았고, 대대장은 부대 내 자살사고로 인해 결국 진급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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