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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등병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5년 4월, 자대배치를 받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다. 아직 후임이 한 명도 들어오지 않았기에 나는 중대 막내로서 열심히 뛰어다닐 시기였다. 차라리 뛰어다니면 편했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면, 침상에 얌전히 앉아서는 무엇을 해야할 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눈만 껌뻑거리며 멍하니 있었다.
수요일 오전, 우리 소대가 취사지원을 해야하는 날이다. 취사지원이라 함은 말그대로 취사장에 지원을 나가는 것이다. 당시 우리 취사장은 시설이 매우 열악했지 때문에 식사를 마치고 식판과 수저를 씻을 공간이 없었다. 고로 중대마다 돌아가면서 한개 분대씩 식판을 설거지 하기 위해 지원을 나갔다.
설거지 뿐만 아니라, 취사병들을 도와 야채도 다듬고. 취사장 청소도 하여야 한다. 하지만 빨리 일을 마치면 다음 식사 시간까지 쉴 수 있기에, 힘든 작업이나 사격 등 빡센 일과가 있는 날은 편할 수도 있다. 쉴 때는 책도 보고, PX에서 냉동이나 과자도 사서 맛있게 먹는다. 게다가 설거지를 위해 병사들이 식사를 하러 오기전에 미리 식사를 하기 때문에 맛있는 반찬 등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이거 괜찮은데? 좋아!"
심이병에게 취사지원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내심 좋아하였다. 또한 우리 분대원끼리만 하기에 마음도 편안하였다. 나를 호시탐탐 노리는 고참들과 떨어져 있으니 말이다. 우리 분대 고참들은 다들 친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무척 편안하였다.
아침 점호를 마치고, 우리 소대 분대장들은 취사장에 내려갈 분대를 뽑기 위해 짱께를 치기 시작하였다. 사실 분대장들은 취사지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냥 일과시간을 보내도 편하기 때문에 괜히 취사장에 내려가서 하루 종일 있는게 피곤하기 때문이다.
"아나 걸리면 안되는데!"
"오늘 수요일잖아! 아침에 햄버거 나오네!"
당시 우리 부대에서는 수요일, 토요일 아침에는 군대리아로 지칭되는 햄버거가 나왔다. 지금이야 먹으라고 하면, 무척 맛이 없지만 군대에서는 나름 먹을만 하였다. 사진에서는 치즈가 없는데 치즈도 나온다. 취사지원 입장에서는 군대리아가 나오면 무척 짜증난다. 샐러드에 있는 마요네즈와 스프로 인해 식판이 무척이나 지저분하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분대는 7명이었다. 7명이서 500여개의 지저분한 식판을 닦는거는 무척이나 힘든일이다. 취사반장이 항상 식판 상태를 확인하기 때문에 대충 닦을 수도 없다. 문득, 막내인 내가 최전선에서 식판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급 싫어졌다. 차라리 삽질하는게 나을 거 같기도 하였다.
"가위 바위 보!"
"앜ㅋㅋㅋㅋㅋ"
"브라보! 1분대 당첨!"
아나! 매번 중요한 승부에서 짱께가 약한 우리 박병장이 당첨되었다. 그러고보면 짱께를 잘치는 분대장을 만나는 것도 복이다. 우리는 활동복으로 환복을 하고 행정반에 보고를 한 뒤, 취사장으로 내려갔다. 아직 아침식사시간 전이라 취사장에는 조리를 하는 취사병들과 우리들 뿐이었다.
병사들이 식사를 하러 오기 전에 빨리 식사를 마쳐야 한다. 취사병은 우리에게 먼저 아침을 내어 주었다. 군대리아를 정성스레 만들고는 한 입 베어먹었다. 밖에서 사먹는 햄버거 맛은 아니지만, 나름 먹을만 하였다. 하긴 이등병이 무엇이 맛있지 않겠는가?
"가츠야! 맛있어?"
"넵! 맛있습니다!"
"패티 뭘로 만드는 줄 알어?"
"잘 모르겠습니다!"
"닭대가리! 닭눈알! 닭벼슬!"
"헙!"
"얼레 가츠 패티에 눈알이 꺄아악!"
"................"
물론 아니다. 그러나 고참들은 항상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들을 놀린다. 나는 먹던 햄버거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다행히 눈알은 보이지 않았지만, 내심 불안하였다. 이상하게 군대리아만 먹으면 10분내로 배에서 신호가 왔기 때문이다. 정말 변비인 사람들에게는 군대리아를 적극 추천하고 싶다. 그 어떤 변비약보다도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식사를 마친 우리들은 설거지 하는 곳으로 가서 식판을 닦을 셋팅을 하였다. 먼저 식사를 마친 병사들이 식판과 수저를 들고 우리에게로 와서 식판을 놓고 지나간다. 그럼 나랑 심이병은 신나게 식판을 비누칠한다. 여기서 왜 비누칠이라고 할까? 보통 퐁퐁을 사용하지 않는가? 그러나 우리들은 비누칠을 한다. 그것도 빨래비누를 이용한다.
군대에서 퐁퐁이라는 세제는 무척 사치스런 물품이다. 물론 PX에서 개인 사비를 털어서 구입하면 되겠지만, 차라리 그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먹겠다. 고로 남아도는 빨래비누를 물에 살짝 놓여서 세제처럼 사용하는 것이다. 나와 심이병이 열심히 수세미로 식판을 비누칠하여 김일병과 심상병에게로 넘겨준다.
다음 단계는 비누칠된 식판을 물로 헹군다. 그리고 1차 검사를 통해 덜 닦인 식판이 있으면 다시 나에게로 돌려준다. 그리고 헹구기가 완료된 식판은 분대장인 박병장에게로 전달된다. 박병장은 다시 한번 물에 헹구고서는 옆에 식판을 차곡차곡 쌓아둔다. 어느 정도 식판이 쌓이면, 내가 잽싸게 투입되어 식판을 식판 건조기에 넣는다. 이렇게 하면 모든 과정이 끝나는 것이다.
빨리 씻으면 씻을수록 쉬는 시간이 많아지는 철저한 성과제이기때문에 우리들은 한 마음으로 열심히 설거지를 한다. 고로 군대리아처럼 식판이 많이 지저분해지는 메뉴가 나오면 안습이다. 주로 튀김류를 제일 선호한다. 기름기가 잘 닦으면 빨리 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침식사 시간이 되자, 중대별로 병사들이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그들을 기다렸다. 설거지를 하면서 이렇게 전투적으로 하기는 또 처음이었다. 그러고보니 입대 전에는 좀처럼 설거지를 해본 적이 없다. 아마 군대에서 평생 할 설거지는 다한 거 같다.
"오...오고 있습니다!"
식사를 마친 아저씨들은 식판을 나에게 건네주고는 수고하라는 말을 하고서는 유유히 떠났다. 나는 식판을 받으며 열심히 비누칠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에게 식판을 건네 주는 사람은 크게 2가지 부류로 나뉜다.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 착한 사람은 깔끔한 식판을 건네주는 사람이고, 나쁜 사람은 덕지덕지 더러운 식판을 건네 주는 사람이다.
'아나! 겁나 더러워! 너는 기필코 기억하마! 두고봐라!'
나는 더러운 식판을 건네주는 아저씨의 얼굴을 기억하며 언젠가 복수를 하리라고 다짐하였다. 10분단위로 100여명의 중대원들이 내려와서 식사를 하기 때문에 한시도 쉴 수가 없었다. 치열하게 식판에 설거지를 하다보면, 어느새 나의 활동복은 물로 홍건히 젖어 있었다. 그나마 4월이기에 천만다행이었다. 한겨울이라면, 설거지 하는 이 곳의 온도는 건물안이라고 해도 바로 바깥출입문과 연결되기에 영하의 날씨다. 얼마나 고생하겠는가?
얼마나 씻었을까? 걸쭉한 스프와 마요네즈때문에 식판대에는 식판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나마 더이상 식사를 하는 인원이 없었기에, 눈 앞에 보이는 식판만 다 닦으면, 주업무인 설거지는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다. 설거지가 끝나면, 취사장 청소를 하고는 취사병들이 점심식사 준비를 할 때까지 쉴 수 있었다.
"빨리하고 푹 쉬자! 파이팅!"
"넵!"
박병장은 우리들을 독려하며 파이팅을 불어 넣어주었다. 나는 바쁘고 피곤하여 답장을 하진 못한 편지가 많았기에, 쉬는 시간에 답장을 할 생각에 열심히 닦고 또 닦았다. 나의 손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분주하게 움직였다. 점점 줄어드는 식판을 보자 나의 마음도 가벼워졌다. 문득, 박병장이 무언가 생각이 났나보다.
"근데 오늘 점심이랑 저녁은 뭐냐? 확인한 사람?"
"아까 내려올 때, 아직 취사병이 적어놓지 않았습니다!"
"가츠야! 입구에 있는 급식메뉴판에서 점심, 저녁 메뉴 확인하고 와봐!"
"넵!"
나는 박병장의 지시에 따라 수세미를 내려놓고 취사장 입구로 쪼르르 달려갔다. 지금 시간쯤이면 취사병이 기록해놓았을 것이다. 고등어 튀김이나 소세지 볶음이 나왔으면 좋겠다. 고등어야 통째로 짬통으로 버리면 되고, 소세지는 남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입구에 걸려있는 급식메뉴판에는 까만 글씨가 빼곡히 적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확인을 하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메뉴판에는 커다란 글씨로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점심 : 비빔밥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박병장이 미워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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