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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일병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5년 12월 31일 토요일, 한 해의 마지막 날이다. 또한 일병으로서의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명실상부 대한민국 육군 상병이 되는 것이다. 1월에 입대하여 훈련병, 이등병, 일병시절을 보내며 숨가쁘게 달려왔다.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도 있고, 의외로 즐거웠던 기억도 있었다.
"가츠야 지나고 나면 다 추억이다!"
문득, 고참이 해준 말이 떠오른다. 하긴 블로그에 열심히 군대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니, 좋든 싫든 다 소중한 추억인가 보다. 사회에서는 연말이라며 가족, 지인들과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겠지만, 군대는 별반 다를게 없다. 토요일이지만, 경계근무는 여전히 존재하였다.
당시 일병이었지만, 후임들이 고참보다 많았던 나는 선임근무를 나갈 수 있었다. 대개 선임근무자는 상병급 이상으로 구성되어야하지만, 인원이 나오지 않을 때는 일병끼리라도 나가야만 하였다. 게다가 나름 A급으로 인정받고 있었기에 부담없이 나를 근무팀에 집어 넣었다.
고로 토요일 저녁, 황금시간대에 근무는 밥 안되는 일병팀의 몫이다. 나와 윤일병은 아무도 오지 않는 탄약고 초소를 지키며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깐돌아! 이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뭐가 말입니까?"
"아니 지금 술 마시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근무라니! 갑갑하다!"
"하하 누가보면 말년병장인줄 알겠습니다!"
나는 윤일병을 붙잡고 신세한탄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칼바람이 전투복을 파고 들때마다 따뜻한 집이 그리웠다. 항상 자식 걱정으로 밤잠을 못 이루시는 부모님이 떠올랐다. 문득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니, 무수히 많은 별들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깐돌아! 하늘봐봐! 미칠듯이 아름답다!"
"아직 1년은 더 볼 수 있지 말입니다! 앜ㅋㅋㅋ"
"깐돌아! 저기 앞에 큰 소나무 보이지?"
"넵!"
"찍고 오는데 10초! 고고!"
"................."
윤일병과 티격태격거리며 한 해의 마지막 근무를 서고 있었다. 어느덧 1시간 30분의 근무시간도 다 되었다. 이제 후번 근무자가 올 시간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마지막 10분은 무척이나 더디다. 연신 장난치던 윤일병도 근무 교대시간이 되니 진지한 자세로 근무에 임하였다. 후번 근무자들이 오면, 수하를 해야 되기 때문에 멍때리고 있다가는 복귀하는 내내 교대장에게 갈굼을 받을 지도 모른다.
다행히 후번 근무자는 나랑 무척이나 친한 팀킬 심상병이었다. 한달 고참인 그는 상병답게 신병인 김이병과 같은 근무팀이었다. 여기서 오늘의 주인공 김이병을 소개하겠다. 전방 예비사단의 자존심, 전군 최고의 훈련량을 자랑하는 이기자부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자그만한 키에 통통한 체구, 유난히 앳되 보이는 얼굴을 가진 김이병은 전입오자마자 소대원들을 인기를 독차지 하였다.
"이 녀석! 완전 귀엽다!"
"슬램덩크에 나오는 영감님 닮았는데 말입니다!"
"아니야! 이 녀석은 만두다! 무조건 만두다!"
그렇게 김이병은 오자마자 만두라는 별명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귀여움도 잠시, 계속된 훈련에서 그의 저질체력은 그의 군생활을 험난하게 만들었다. 행군을 하다가도 지체없이 기절해주었다. 오르막길도 아닌데, 픽픽 쓰러지는 만두군, 우리는 그때마다 주섬주섬 터진 만두를 봉합하여 다시 끌고 갔다.
그러나 너무 착하고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하였기에 미워할 수만은 없었다. 게다가 예전에 소개한 바 있는 관심병사로 인해 한바탕 홍역을 치른 바 있기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잘 대해 주었다.
2009/07/14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완전군장
"올 시간이 되었는데! 왜 안 오냐고! 추워죽겠구만!"
"만두 이색히! 빠져가지고! 오면 갈아마셔야겠습니다!"
하긴, 이게 만두 탓이겠는가? 근무자들이 아무리 빨리 근무투입을 준비하여도 교대장이 항상 여유롭게 느릿느릿 준비하기에 그렇다. 그러나 항상 혼나는 건, 후임들이다. 어쩌겠는가? 분대장인 교대장에게 화를 낼 수는 없지 아니한가? 게으른 분대장을 제시간에 데리고 오는 것도 후임의 능력이다.
아마 예능프로를 보느라 늦게 오는가보다. 그래도 호랑이같은 대대장 덕분에 경계근무 기강은 무척이나 강하였기에, 다들 알아서 투입하였다. 대개 근무 10분전에 교대해주는 것이 관례였기에, 아무리 늦어도 정시에는 교대가 이루어졌다. 정시가 다 될 무렵, 철조망 너머로 불빛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교대장의 빨간 경광봉이 반짝반짝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윤일병은 한껏 오바를 하며, 납작 엎드려서는 총구를 들이대며 암구호를 말하였다.
"정지! 정지!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커플 커플!"
"지옥!"
"누구냐?"
"근무자!"
"용무는?"
"근무교대! 아나 그냥 간다? 계속 쓸래?"
"초소 3보 앞으로!"
"아나 깐돌이 이거 엎드려서 하네! 진짜 위장군기 하나는 정말 최고다 최고! 근무자들 빨리 인수인계 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교대장은 나에게로 다가와서 근무일지에 사인을 하였다. 나는 심상병에게, 윤일병은 김이병에게 근무간 특이사항을 인수인계하였다. 인수인계를 마치고, 교대장을 따라 복귀하기 시작하였다. 영하의 날씨에 한참을 서있어서 그런지 빨리 내무실로 가고 싶었다.
연대탄약고는 중대에서 무척이나 먼 곳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걸어서 족히 20분은 소요되었다. 우리들은 사이좋게 발을 맞추며 따뜻한 내무실을 그리워하며 신나게 걸어갔다. 인적이 끊긴 영외도로를 얼마나 걸어갔을까? 스산한 칼바람이 길가에 쌓여있는 눈을 연신 휘날리고 있었다. 문득 옆에 있던 윤일병이 갑자기 안절부절하기 시작하였다. 배라도 아픈건가?
"야 너 왜그래? 배아파?"
"저... 이게... 어흐흑흑ㅜㅜ"
교대장과 나는 당황해하는 윤일병을 바라보았다. 윤일병의 목에는 별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물체가 걸려있었다. 일명 PVS-7이라고 하는 군용 관측 장비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간투시경이다. 야간경계시에는 전방의 시야가 확보되지 않기에 야간투시경을 소지한 채 근무를 선다. 하지만, 풍요롭지 않은 군대이기에 한 개의 야간투시경으로 계속 돌려쓴다. 이에 인수인계할 때 후번 근무자에게 넘겨줘야 되는데, 깜빡하고 안 준 것이다.
"아나 똘아이 같은 놈! 위장군기만 겁나 있어!"
"이거는 보고해서 영창 보내야 되는 거 아닙니까? 완전 배신죄이옵니다!"
우리는 야간투시경을 건네 주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연대탄약고로 발길을 돌렸다. 가는 내내 윤일병에게는 지옥 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깔끔하게 근무를 마치고 한 해를 마무리할려고 하였는데, 왠지 불안한 기분이 들기 시작하였다.
다시 탄약고로 돌아가는 우리들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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