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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동원훈련 上편, 동원훈련 中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2년 10개월만에 느끼는 눅눅한 매트리스와 모포 그리고 냉기, 자다가 몇번을 뒤척였는 지 모르겠다. 무척이나 건조한 내무실은 나의 목을 따갑게 하였다. 게다가 양 옆으로 바짝 붙어서 자는 아저씨들로 인해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었다.
"내 귀에 캔디 꿀처럼 달콤했니 니 목소리로 부드럽게 날 녹여줘~♪"
얼마나 잤을까? 나의 얼굴에 따스한 숨결이 느껴졌다. 떨리는 숨소리는 나로 하여금 무척이나 간지럽게 하였다. 곧,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곳은 내무실이다. 오직 늑대같은 아저씨들만 존재하는 곳이란 말이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숨결은 절대 네버 꿀처럼 달콤한 숨결이 아니다.
화들짝 놀라서 눈을 떠보니, 나의 눈 앞에는 천진난만하게 자고 있는 옆 자리 아저씨가 보였다. 그와 나의 거리는 연인사이에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웠다. 닿을락 말락!
"아낰ㅋㅋㅋ 빼빼로 게임이라도 하자는 건가?"
가까스로 아저씨를 반대편으로 밀어내고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현역 시절에는 불침번이 친절하게 내무실 바닥에 물도 뿌려주고, 코골이가 심한 인원을 관리해주지만 동원 훈련에서의 불침번은 제 몸 하나 챙기기 힘들다. 어렴풋이 눈을 떠서 내무실을 둘러보니, 전투복을 입고 멍하니 앉아 있는 예비역이 보였다.
"저 아저씨가 불침번인가보군!"
이미 그는 유체이탈 단계에 접어 들었고, 괜시리 동원훈련에까지 와서 불침번을 서고 있다는 사실에 측은하였다. 가까스로 다시 잠을 청하였다. 얼마나 잤을까? 눈이 부시다. 부신 눈을 비비벼 주위를 둘려보니, 다들 전투복을 입고 있었다. 현재 시각 오전 6시, 아직 창 밖은 어두컴컴하였지만 군대에서의 하루가 시작 되는 시간이다.
"선배님들 6시 20분까지 연병장으로 집합해주십시오!"
아침점호를 하는건가? 2년 동안 매일같이 하던 아침점호, 전역하고 2년이 지나서 다시 한다는 생각에 짜증이 확 밀려왔다. 게다가 밖은 무척이나 추웠다. 신기하게 밤새 음주를 즐기며 돌아다니면 한겨울에도 추운 줄 모르겠는데, 군대에만 있으면 항상 춥다.
티셔츠, 전투복, 깔깔이, 야상을 챙겨입고는 점호를 취하러 나갔다. 당직사관의 지휘에 맞춰 복무신조를 시작으로 도수체조, 아침구보까지 하고 나자, 아침부터 녹초가 되었다. 둘째날부터는 하루종일 야외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본격적인 단풍놀이가 시작되는 셈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따뜻한 모닝커피를 한 잔 뽑았다. 현역시절, 자주 사 먹은 자판기 커피, 문득 지난 이등병 시절이 생각났다. 당시 냉복숭아 한 잔 마실려다가 하마터면 탈영범이 될 뻔 하지 않았는가?
2009/07/31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냉복숭아
이등병 시절에는 한 잔에 150원이었는데 전역할 때즈음에 200원으로 바뀌었다. 전역하고 꽤 시간이 흘렀으니 인상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여전히 200원이었다.
"오호 아직도 200원이구나! 150원할 때가 엊그제가 같은데!"
"150원? 저는 50원할 때 사먹었는데! 시간 참 빠르구나!"
고개를 돌려보니, 우리 삼촌이 오신 줄 알았다. 외모로만 보면 대대장급이었는데, 무척이나 사연이 많으신 거 같았다. 병든 병아리 마냥, 따뜻한 아침햇살을 쬐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는데, 어김없이 조교들이 집합시간이 다 되었다며 성화다.
어기적거리며 내무실로 돌아가니, 이미 단독군장차림으로 집합하고 있었다. 대다수는 이미 내무실 밖으로 나갔고, 몇몇 시체들이 조교에게 힐을 받고 있었다. 나도 서둘러 탄띠를 허리춤에 메자, 조교가 잽싸게 총기함에서 총기를 챙겨가지고는 나에게 건네 주었다.
"야야! 가져간다 가져가! 아따 급하기는!"
귀여운 녀석이었다. 얼핏보니 윤이병을 닮은 거 같기도 하다. 나중에 호랑이가 되겠군. 좋은 눈빛을 가진 녀석이었다. 윤이병 닮은 조교가 챙겨준 총을 집어 들고는 내무실 밖으로 나갔다. 이때 등 뒤에서 어김없이 조교의 외침이 들려온다.
"선배님 방탄헬멧 쓰고 가셔야지 말입니다! ㅜㅜ"
"맞다! ㅋㅋㅋ"
힘겹게 다 모인 우리들은 교관의 통제에 따라 3개조로 나뉘어졌다. 3개조는 각각 화생방, 구급법, 각개전투를 순환식으로 교육받기로 하였다. 나야 소총수 출신이므로 현역시절 2년 내내 교육받던 내용이다. 항상 병기본 교육을 받고, 평가를 보고, 때로는 조교로 직접 교육하기도 하였다.
참고로 병기본 과목에는 개인화기, 화생방, 구급법, 지뢰/철조망, 수류탄, 진지구축, 경계, 분소대 전투기술, 태권도 등 아주 다양하고 많다. 여기서 주특기 교육과 정신 교육까지 받게 된다. 하지만, 소충수가 아닌 예비역들은 훈련소에서나 잠깐 배운 넘어가는 낯선 과목들이다.
구급법 교장으로 이동한 우리들은 교관의 설명을 받으며 체험식 교육이 시작되었다. 구급법이라말로 전쟁시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과목이다. 월남전 당시, 미군은 무수히 많은 병사들이 전투를 하다가 죽었다. 그들의 대다수가 제때 지혈을 하지 못해,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였다. 이에 미군은 응급처치에 대한 중요성을 느꼈고, 대대적인 구급법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 후 일어난, 걸프전에서는 미군의 사망자가 현격히 줄어 들 수 있다. 물론, 월남전과는 전혀 다른 전투 방식이었지만 병사들 모두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또한 구급법은 굳이 전쟁에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과목과는 달리 일상생활에서도 유용하다.
"자네! 바닷가에서 그녀를 구해 주고 싶지 않은가?"
"꿀벅지의 그녀! 기필코 제 손으로 아니 제 입술로 꼭 구하고 싶습니다!"
"그럼 열심히 배워 두도록!"
다들, 자신만의 달콤한 상상을 하며 교관의 설명 하나 하나를 열심히 경청하였다. 역시 사람들은 뚜렷한 목표의식가 정해지면 열심히 한다. 교관의 설명이 끝나고, 한명씩 나와서 직접 해보라고 하였다. 다른 과목 같으면 죽어도 하기 싫다며 고개를 숙이며 회피하던 예비역들이 하나같이 교관을 바라보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날렸다.
열심히 심폐소생술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든든하였다. 어쨌던 그들과 함께 있으면, 물에 빠져서 죽지는 않을 거 같았다. 붕대 감기와 부축법까지 마스터한 후에 다음 교장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였다.
다음 과목은 각개전투이다. 병기본 중에서도 무척이나 기피하고 싶은 과목 중에 하나이다. 물론 공포의 가스 마시는 화생방, 허리가 끊어지랴 죽어라 삽질만 하는 진지구축, 전투복이 갈갈이 찢겨나가는 철조망 등 악명높은 과목도 있다. 하지만 각개전투는 그 모든 것을 한번에 다 할 수도 있다. 올림픽에 마라톤이 있다면, 병기본에는 각개전투가 있다.
각개전투 교장으로 가는 우리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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