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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등병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5년 4월이었다. 유격훈련을 마치고 복귀한 가츠이병은 중대 막내로서 한창 열심히 뛰어다닐 때였다. 동기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중대원들이 하늘과 같은 고참들이다. 또한 이등병이기 때문에 나의 일거수일투족은 항상 감시 당하고 있었다.
'분대장님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23살 먹은 건장한 남자가 화장실를 갈때도 보고를 하고 다닌다. 불과 몇개월전만 하여도 광활한 중국 대륙을 누비고 다녔는데 말이다. 정말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군인들은 항상 배가 고프다. 아침 6시에 기상하여 종일 쉴 틈도 없이 뛰어다니니 오히려 안 고픈 것이 더 이상하다. 병장쯤 되면 마음대로 PX에 가서 간식거리도 사놓고, 아무때나 뽀글이도 해먹으면 되지만, 이등병인 나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나는 음료수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당시에는 상병이 되어야지 관물대에 음료수 PT병를 자유롭게 보관할 수 있었다. 왜 상병이상만 되냐고? 나도 알 수 없다. 그냥 상병이상만 되었다. 나중에 내가 병장이 되었을때는 내무부조리라며 이등병도 보관할 수 있었다. 이상하게 꼭 내가 할 수 있을때가 되면 개선되었다.
그렇지만 이등병이라고 아무것도 못먹는건 아니다. 분대원끼리 식사를 마치고 올라오면, 중대막사 앞에 있는 커피자판기에서 다같이 음료수를 뽑아먹고 담배를 피우곤 하였다. 자판기에서 가장 인기있는 음료는 냉복숭아였다. 지금와서보면 그냥 설탕물 같은 허접한 싸구려 음료수지만, 당시에는 그 어떠한 음료보다도 달콤하고 시원하였다.
그날은 하루종일 작업만 하였다. 정말 하루종일 작업만 하였다. 그리고 저녁식사를 먹고도 쉬지 못하고, 작업만 하였다. 이미 나의 육체는 지칠대로 지쳤고, 매우 허기지고 목이 말랐다. 그러나 PX는 당연히 못가고, 갈 수 있었다고 해도 갈 시간이 없었다.
점호청소를 하고있는데, 박병장이 PX를 갔다왔고, 남은 과자와 냉동을 먹으라고 주었다. 분대원끼리 허겁지겁 먹는데,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바로 저녁점호가 시작되었다.
'22시이후 전원 취침 소등할 수 있도록, 일체 유동병력 없다! 알겠나?'
'네에엣!'
그렇게 점호가 끝났고, 다들 매트리스를 깔고 자리에 누웠다. 점호가 조금 일찍 끝났다. 22시까지는 대략 15분이나 남았다. 소대원들은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TV를 보면서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까 먹은 과자와 냉동때문인가? 목이 너무 말랐다. 물론 정수기 물을 마시면 되겠지만, 정말 한 모금의 음료수가 너무 간절하였다. 그러나 나에겐 어떠한 음료수도 없다. 결국 물이나 마시고 자야지 하면서 일어났다. 정수기는 화장실 앞에 있다. 나갈려는 찰나, 김상병이 나를 불렀다.
'가츠야~!'
'이병 가츠! 네!'
'이것 좀 버려~!'
김상병은 쓰레기를 주면서 버리라고 하였다. 위 사진은 우리 옆 내무실인 본부포반이다. 사진 속에는 내무실 안에 휴지통이 있지만 우리 소대는 외부출입문과 내부출입문 사이의 공간에 휴지통이 있었다. 아래 그림를 참고하면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휴지통이 있는 복도쪽으로 나갔다. 그런데, 외부로 나가는 출입문이 열려있는 것이 아닌가? 원래 점호를 하기 전, 청소를 하면서 행정반 출입문을 제외하고는 외부로 연결된 모든 출입문을 자물쇠로 잠근다. 행여 밤중에 탈영하는 인원이 있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근데 오늘은 깜빡하고 자물쇠를 채우지 않은 것이다. 순간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저 출입문만 나가면 내가 그토록 원하는 냉복숭아를 마실 수 있다. 정말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 나는 잽싸게 관물대로 돌아와서 150원과 담배를 몰래 챙겼다. 고참들은 TV를 보거나 잡담하느라 나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다시 휴지통이 있는 곳으로 나가서는 안쪽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조용히 외부 출입문을 열고는 자판기 앞으로 다가갔다. 이미 다른 중대들도 점호를 취했기 때문에 밖에는 쥐새끼 한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나는 자판기에 150원을 투입하고는 떨리는 손으로 냉복숭아를 클릭하였다.
위이이이이잉~!
아나 놀래라~! 자판기 작동하는 소리가 이렇게 크다니~! 나는 행여 내무실에 있는 고참들이 들을까봐 자판기를 양손으로 껴안았다. 몇초후 꿈에 그리던 냉복숭아 한 잔에 내 손에 들려있었다. 나는 물음표가 쳐진곳으로 깊숙이 들어가서는 입에 담배를 물고는 불을 붙혔다. 한 손에는 담배, 한 손에는 냉복숭아~! 정말 환상의 조합이다. 지금 이순간만큼은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캬햐아~! 이 맛에 군생활한다니깐~! 이제 640일만 자면 전역하는구나~!'
늦은밤, 인적없는 막사 뒷편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등병이 있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음료수를 홀짝홀짝 마시며 연신 담배를 피고 있는데, 출입문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나는 행여 걸릴까봐 벽에 찰싹 달라붙어서는 동태를 살폈다.
맙소사~! 불침번이 열려있는 출입문을 발견한 것이다. 곧, 자물쇠를 이용하여 출입문을 잠궈버렸다. 순간,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다. 어떻게 복귀하지? 이대로 있다가는 내무실에서 내가 사라진 것이 발각될 것이고, 나는 졸지에 탈영병이 되는 것이다.
부대는 비상이 걸릴 것이고, 나는 꼼짝없이 잡히겠지? 그리고는 온갖 고문을 당할거야~! 이런저런 걱정으로 인해 냉복숭아는 더이상 달콤하지 않았다. 오히려 쓴 맛이 났다. 이제 열려있는 출입문은 행정반으로 들어가는 문 하나 뿐이다.
하지만, 그 곳에는 절대 유동병력이 없다고 호언장담한 당직사관과 악마 당직병이 있다. 그냥 이대로 탈영해버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행정반으로 가는게 더 무섭다~! 어흐흑흑ㅜㅜ
'에라이 모르겠다~! 설마 죽이기야 하겠어~!'
나는 마음을 다잡았고, 행정반 출입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마치 기름통을 메고 불구덩이로 향하는 기분이었다.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당당하게 문을 활짝 열어 제꼈다.
갑자기 행정반 문이 열리자, 행정반에 있던 당직사관과 당직병은 상급부대에서 순찰 나온줄로만 알았고, 편하게 앉아있다가 총알같이 일어나서는 나를 향해 바라보았다.
나를 확인한, 당직사관과 당직병은 황당하단듯이 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에 질세라 나는 행정반이 떠나가라~! 큰 목소리로 보고하였다.
'이기자! 이병 가츠! 행정반에 용무있어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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