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지난 글보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전투사격 上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어느덧 전투사격 훈련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올 한 해 무수히 많은 훈련을 뛰면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가? 지난 3월, 자대배치를 받고, 유격훈련으로 스펙타클하게 스타트를 끊었다. 그리고 격주 단위로 이어진 수십여개를 훈련, 훈련 하나당 소소하게 50km씩만 걸었다고 치더라도 1000km를 가뿐하게 넘었다. 하지만 오늘 하루만 지나가면, 올해의 공식적인 훈련이 모두 종료된다.
"심일병님! 오늘만 버티면 끝인데 말입니다!"
"가츠야 내년은 훈련안하냐? 생각이 없어!"
"내년은 안 오지 말입니다!"
"멋진 녀석!"
심일병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며 훈련 준비를 하였다. 이미 지난 이틀간 꼭두새벽부터 나가서 자정이 다 될 때까지 신나게 행군을 하였다. 행군을 하는 것은 힘들지 않다. 무거운 군장을 메고 산을 타는 것도, 잠깐 이 악물고 오르면 된다. 심장과 허벅지가 터질듯이 아프지만, 터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다름아닌 추위였다. 다음주면 12월이 되기 때문에 강원도의 날씨는 무척이나 추웠다.
이미 기온은 영하를 훌쩍 넘었고, 체감온도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차라리 계속 걸을 때는 그나마 참을만 한데, 공격과 방어를 하기 위해 대기할 때는 정말 추위와의 전쟁이었다. 다들 살기 위해 자신만의 방한책을 강구하여보지만, 무슨 짓을 해도 추운 건 추운거다.
"가츠야! 눈 떠! 눈 감으면 죽는다!"
"산 채로 죽을 바에는 차라리 잠든 채로 죽고 싶습니다!
"멋진 녀석!"
점심을 먹고, 방어를 하기 위해 하염없이 대기하였다. 바닥에는 판초우의를 깔고, 군장에서 모포를 꺼내서는 온 몸을 휘둘렀다. 그래도 강원도의 칼바람 앞에서는 추풍낙엽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마저 구름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정녕 우리는 버림받는 것인가?
분대장의 무전기에서 무전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곧 부대 이동을 시작한다며 떠날 채비를 하라고 하였다. 지금 우리의 위치는 따뜻한 내무실이 있는 주둔지와 걸어서 불과 20분 거리에 있다. 산 중턱에서 내려가는데 20분이다. 내려가기만 하면 바로 주둔지다. 근데 미치도록 웃긴 사실은 20분 거리에 있는 이 곳에 오기 위해 꼭두새벽부터 6시간을 빙빙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은가?
"이제 어디로 가는 겁니까?"
"절골을 올라가서 도마치 고개 정상을 찍고, 유격장고개를 빽치기 한다는구나!"
"누구 아이디어입니까?"
"대대장!"
"혹시 실탄 없습니까?"
"대대장님 쏘기라도 하게?"
"지나가는 차량 탈취해서 방송국 갈 겁니다!"
"왜?"
"저희보고는 가혹행위하지 말라고 하면서, 저희에게는 가혹행위 시키지 말입니다!
"멋진 녀석!"
차라리 창고 뒤로 끌려가서 1시간내내 맞는 게 행복할 지도 모르겠다. 그가 말해 준 코스는 지금부터 미친듯이 걸어도 꼬박 7 ,8시간은 걸어야지 주둔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라리 큰 훈련처럼 멀리 나가서 주둔지를 향해 복귀하는 거라면 괜찮다. 어차피 가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따뜻한 내무실이 바로 코 앞에 보이는 데, 그걸 돌아서 간다고 생각하니 울화통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도 별 수 없다. 가라면 가야된다. 주섬주섬 군장을 꾸리고 집합하였다. 추위를 대비해서 군장에 방한용품을 많이 챙겨 넣은게 후회가 되었다. 출발하기도 전인데 어깨가 천근만근이다. 절골코스는 예전에도 한번 말했지만, 미치도록 지겨운 코스다. 고개를 돌면 똑같은 풍경이 무한 반복된다. 정말 귀신같이 똑같다. 저 고개만 넘으면 끝날 거 같은데, 어김없이 눈 앞에는 똑같은 고개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다. 행군코스로는 최악이다.
그렇게 우리들은 주둔지를 뒤로 하고 절골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중대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우울하고 어두웠다. 간부들 마저도 힘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하긴 그들도 사람인데, 어찌 짜증나고 힘들지 않겠는가? 오히려 그럴 때마다 부하들을 다독거려 가야하니 더 힘들지도 모른다.
오르막 길을 오르자, 언제 추웠냐는듯이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그순간, 얼굴에 차가운 물체가 느껴졌다. 흠칫하며 고개를 들자, 하늘에서는 첫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하였다.
"눈...눈이다!"
군대에서 눈이라고 하면, 치가 떨리지만 오랫만에 보는 첫 눈이다보니, 무척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러나 즐거운 마음도 잠시, 펑펑 내리는 눈을 보니, 행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중대장은 내리는 눈을 보자, 쌓이기 전에 오르막길을 올라가기 위해 더욱 더 속도를 올렸다.
"치직! 당소 교육장교! 전방에 5찰리 등장바람!"
"당소 5찰리장! 무슨일인가?"
"현시간부로 상황종료! 전 병력 복귀바람!"
"우와와와와아아아아!"
무전기에서 들리는 교신을 들은 우리들은 우뢰와 같은 환호성을 지르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갑작스런 폭설에 안전사고를 걱정한 대대장은 훈련종료를 명하였고, 바로 복귀하라고 하였다. 그동안 수많은 훈련을 뛰었지만, 이처럼 간단명료하게 상황종료가 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중대장도 내심 기쁜지, 웃으면서 외쳤다.
"5중대 현위치에서 뒤로 돌아아앗! 앞으로 가아아앗!"
오르막 길을 오르던 우리들은 그대로 몸을 돌려 주둔지를 향해 내려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온갖 죽을 상을 다하던 우리들은 어느새 해맑게 웃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마치 산타가 미리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랄까?
경쾌한 발걸음으로 내려가니 금새 주둔지가 보였다. 내무실로 복귀한 우리들은 잽싸게 장구류를 정리하고는 첫 눈을 맞으며 강아지 마냥 뛰어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고참들은 이미 내무실에서 시체놀이에 돌입하였고, 우리들은 부소대장의 디카를 가지고 사진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눈을 뭉쳐서 눈싸움을 하기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추운지도 모르고 한참을 놀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심일병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슨 일 있습니까?"
"한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무슨 말이십니까?"
"이거 누가 치우냐?"
".............."
그랬다! 현 시간부로 우리의 주적은 북한군이 아니었다. 앞으로 몇달간은 지금 내리고 있는 눈! 바로 사랑스런 악마의 똥가루가 우리의 주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행정반에서 계원이 나오면서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하였다.
"전 병력! 제설작업 집합하시랍니다!"
반응형
'가츠의 군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츠의 군대이야기, 2소대 (222) | 2009.12.02 |
---|---|
가츠의 군대이야기, 온수샤워 (288) | 2009.12.01 |
가츠의 군대이야기, 전투사격 上편 (211) | 2009.11.25 |
가츠의 군대이야기, 지뢰 (253) | 2009.11.23 |
가츠의 군대이야기, 국군방송 (323) | 2009.11.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