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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등병 때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우리는 열심히 정상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산만 있으면, 무조건 정상을 향해 돌진해야되는 소총수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그 산이 동네 앞산이든, 천 고지가 넘는 고산이든 중요하지 않았다. 앞서가던 소대장은 신병들이 연거푸 낙오를 하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10분간 휴식을 명령하였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나의 첫후임들과 함께 한 화악산 매봉정찰 때이다.
2009/04/15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첫 후임
"3소대원 현위치에서 10분간 휴식!"
나는 이미 지칠대로 지쳤기 때문에 바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바로 앞에 있던 분대장은 방탄헬멧를 벗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연신 술을 마시는 시늉을 취하였다. 나는 잽싸게 탄띠에 결속되어 있는 수통을 꺼내서는 분대장에게 건네 주었다. 이럴 때 센스없게 뭐? 라는 표정을 짓는다면 당신의 군생활은 무척이나 험난할 것이다.
분대장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물을 마시고는 담배를 꺼내서는 불을 붙혔다. 그리고는 나에게도 피라며 권유하였다. 고된 행군을 하며 잠깐 피는 담배 한모금은 정말 꿀맛이다. 특히 천고지가 높는 고지에서 멋진 경관을 바라보며 핀다면 두말할 것도 없다. 지금까지는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에게는 황이병이라는 2달 선임이 한 명 있었다. 그는 흔히 말하는 제대로 풀린 군번이었다. 바로 윗고참과 4개월이나 차이나기 때문에 조그만 고생하면, 소대 실세로 급부상하게 된다. 그의 밑으로는 줄줄이 후임들로 가득하였다.
하지만, 신은 공평한 것일까? 신은 그에게 엄청나게 풀린 군번을 주었지만, 최악의 내무생활도 같이 주었다. 평소 잠이 많고, 체력이 약한 그는 항상 고참들의 갈굼을 한 몸에 받았다. 천성은 분명히 착한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였기에 후임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하였다.
게다가 그의 식탐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 얼마전 유격훈련을 나갈 때였다. 대개 훈련을 나가게 되면 분대별로 각종 부식을 준비한다. 일주일 동안 산 속에서 생활하여야 하므로 간단한 군것질거리랑 식사랑 같이 먹을 찬거리를 챙겨간다. 하지만 소총수인 우리들은 항상 군장속에 직접 챙겨서 가야되기에 먹고 싶은 것들을 다 가져갈 수 없다. 그만큼 군장이 무거워지니깐 말이다. 꼭 챙겨가야할 부식을 고르는 행위는 진열대에서 생일케이크를 고르는 거 만큼이나 어렵다.
"도대체 무엇을 챙겨야 된단 말입니까? 정녕 다 가져가면 안됩니까?"
그렇게 우리들은 분대별로 필요한 부식을 구입하고 분대장의 지시에 따라 분배하여 군장에 결속한다. 물론 개인적으로 따로 초코바나 캔디 등 먹고 싶은 간식을 더 챙겨도 된다. 어차피 자기가 들고 가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있는 만큼 가져가면 된다.
유격훈련은 비전술훈련이기 때문에 출발할 때 준비태세를 하지 않는다. 고로 미리 전날 군장을 결속해도 된다. 그렇게 다들 군장을 결속하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나에게는 첫 훈련이었기 때문에 무척이나 긴장되고 떨리는 밤이었다. 한참을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 얼마나 지났을까? 2분대장의 사자후가 들렸다.
"야아아! 이게 다 뭐야?"
깜짝 놀라 실눈을 뜨고는 2분대 쪽을 바라보았다. 2분대장은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다시한번 분대원들의 준비상태를 확인를 하기위해 관물대를 점검하고 있었다. 황이병의 관물대를 확인하는 순간, 그는 분노의 사자후를 날린 것이다. 엄청난 식탐을 가진 그는 훈련준비를 하면서 엄청난 양의 과자를 구입한 것이다. 분대원들도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그의 관물대에서는 초코파이 2박스를 비롯하여 미처 군장에 결속하지 못한 과자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원래 관물대에는 음식을 보관할 수 없다. 위생상 바로바로 먹어야 된다. 물론 과자 한 두개, 근무를 마치고 먹을 라면같은 어느 정도의 융통성은 있지만, 과도한 양의 음식물은 보관해서는 안된다. 특히 당시의 이등병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과도한 욕심은 화를 부른다. 차라리 미리 말했더라면, 전우들끼리 좋게 나눠 먹거나 다른 사람의 군장에 넣어가지고 갈 수 있었는데 말이다. 안그래도 약한 체력때문에 이등병임에도 불구하고 군장을 최대한 가볍게 해주었는데, 온통 자신만의 과자로 채울려고 하였으니, 분대장 입장에서는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아나! 진짜 이걸 확 갈아마셔! 너 씨이! 이거 다 쳐먹고 자!"
결국 황이병은 눈물을 흘리며 열심히 초코파이를 먹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내 한계를 느낀 그는 초코파이를 들고는 잠자고 있는 나에게로 와서는 먹으라고 권유하였다. 대략 이런 느낌의 고참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씻는 것을 겁나 싫어한다. 진짜 내가 본 사람 중에 최고였다. 매일밤 고참들은 그의 위생상태를 점검할 정도였다. 왠지 앞으로 자주 등장 할 거 같다.
예전에 동원훈련을 포스팅하면서 올린 사진인데, 이 사진 한 장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바로 왼쪽 편에 누워있는 사람이 바로 황이병이다. 자세히 보면 과자봉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009/04/27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동원훈련
다시 돌아와서, 나는 분대장과 함께 담배를 피며 멋진 경관을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곳은 군사시설 보호구역이다보니 천혜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정상에 위치한 군부대에서는 경고방송이 연신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이 곳은 지뢰매설 지역입니다. 안전선 밖으로 나가지 마십시오!"
생전 처음 듣는 경고방송에 긴장이 되었다. 지뢰라니? 얼마나 무시무시한 무기인가? 흔히 영화에서 보면 누군가 지뢰를 밟으면, 항상 주인공이 짠하고 나타나서 구해준다. 하지만 이건 영화일 뿐이고 잘못된 정보이다. 흔히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발목지뢰의 경우, 약 9Kg이상의 압력을 받으면, 바로 터진다. 구해주고 할 것도 없이 말이다.
나는 내심 앉은 자리를 확인해보았다. 휴식시간이 되면 다들 길 가장자리로 나와서 쉬기 때문에 안전선을 넘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안전선 안이었다.
그순간, 전역을 2달 남긴 말년 소대장이 미친듯이 어디론가 뛰어가고 있었다. 평소 숨쉬는 것 또한 귀찮아 하던 그였기에, 그의 빠른 몸놀림은 나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유난히 땅달한 그의 체구가 허공을 향해 아름답게 비상하는 모습을 말이다.
"주우우우거어어어라아아아!"
그는 나비처럼 날아서 매처럼 먹이를 향해 돌진하였다. 그의 완벽한 일자 드롭킥은 황이병을 향해 정확히 꽂혔다. 알고보니 우리의 황이병은 안전선을 훨씬 벗어나서 해맑게 웃으며 시원하게 소변을 보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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