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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등병 때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5년 3월, 강원도에는 아직 꽃피는 봄이 오지 않았다. 아침에는 항상 영하의 날씨로 떨어졌고, 때때로 눈까지 펑펑 내리고 있었다. 막내였던 나는 항상 걸레를 독차지하였다. 입대 전만 하여도 걸레를 만질 일이 없었던 나는 매일같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에 걸레를 빨았고, 전투복과 양말도 손수 손빨래를 하여야만 하였다.
"집에서 완전 귀한 자식인데!"
입대 전, 곱디 고운 손은 그렇게 트기 시작하였다. 차가운 물에 빨래를 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샤워를 하는 것이었다. 상급 부대로 가면 겨울철 항시 온수가 나왔는데, 일반 대대급 부대에서는 온수를 구경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 부대는 항상 훈련이 뛰기 때문에 훈련에 사용하는 기름마저도 모자랐다. 고로 상급부대로 자대배치를 받아야 한다.
그나마 2주에 한번씩 주말마다 대대 목욕탕에서 온수샤워가 있었다. 그러나 좁디 좁은 목욕탕에서 대대원 500여명이 사용하여야 하기때문에 중대별로 순서를 정하여서 씻는다. 첫번째로 가서 씻으면 뜨거운 물을 펑펑 쓸 수 있지만, 기다리는 전우를 위해 아껴써야만 한다. 게다가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스피드하게 씻어야만 한다.
"5중대 온수샤워 준비하시랍니다!"
주말 오후, 행정반에서 전파가 왔다. 분대장들은 행정반으로 모여서 다시 소대별로 순서를 정하였다. 목욕탕의 수용인원은 30여명도 안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가위바위보를 하고 돌아온 분대장은 일등을 하였다며 바로 준비해서 집합하라고 하였다. 막내인 나는 발수건을 한웅큼 챙겨들고는 연병장으로 나갔다.
자대배치를 받고 처음하는 온수샤워라서 무척 설레였다. 뜨거운 물로 씻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뻤다. 연병장을 가로질러 대대목욕탕으로 가니, 이미 다른 중대가 샤워를 하고 있었다. 목욕탕 앞에서 세면백을 들고 각잡고 서있는 30여명의 남자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 웃긴다.
"3소대 입장!"
곧 우리 소대 차례가 되었다. 탈의실로 들어갔는데, 이미 바닥은 물천지였다. 하지만 짬이 안되는 우리들은 양말을 씻고 있었다. 군인은 복장이 생명이기 때문에 항상 이동시에는 활동화와 양말을 신고 있어야만 하였다. 물론 병장들은 예외였다. 그들은 쿨하게 맨발로 왔다. 심지어 말년병장들은 슬리퍼를 신고 말이다. 사소한 것 하나부터 부럽기 그지 없었다. 행여 양말이 젖을세라 조심스레 탈의실로 들어가니 이미 병장들은 사물함에 옷을 다 벗어 놓고는 목욕탕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고참들보다 빨리 씻고 나와야한다. 아니면 추운 날씨에 고참들이 젖은 몸으로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있을 수 없는 참극이 발생하니깐 말이다. 나는 허겁지겁 옷을 벗기 시작하였다. 이미 사물함은 고참들이 사용하여 꽉 차있었기 때문에, 나는 심이병과 같이 사용하였다. 군용 보급품인 일명 선인장 비누를 하나 손에 꼭 쥐고는 목욕탕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야! 문 닫어! 바람들어오잖아!"
열자마다 닫으라니! 나는 총알처럼 들어가서는 문을 닫았다. 한 쪽 벽면에 위치한 대형 욕조에서는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고 있었다. 너나할 것없이 바가지로 욕조에 있는 물을 퍼서 몸에 뿌리고 있었다. 분명히 벽면에 샤워기가 설치되어 있는데, 아무도 샤워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고로 나도 사용하지 않았다. 아니 사용할 수 없었다.
당시에만 해도 나는 샤워기가 고장난 줄만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병장이 되었을 때, 샤워기를 틀어보니 잘만 나왔다. 지금까지도 왜 아무도 샤워기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다.
"물 뿌리겠습니다!"
연신 물 뿌리겠습니다!를 연호하며 바가지로 몸에 물을 뿌렸다. 그리고는 비누칠을 하기 위해 비누를 집었다. 문득 입대 전, 선배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샤워할 때, 고참이 바닥에 떨어진 비누를 집어달라고 하면 조심해라! 낄낄낄!"
순간, 나는 잽싸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로 내 옆에는 일전에 천사와 악마편에서 등장한 조상병이 우아하게 샤워를 하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불안해졌다. 자리를 이동하고 싶었지만, 괜시리 눈에 띄는 행동은 더 큰 위험을 자초할 것만 같았다.
2009/08/28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천사와 악마 上편
최대한 티를 안내며, 씻고 있는데, 조상병이 특유의 사악한 웃음으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내 등을 잡더니 밀어주었다. 그의 손길이 닿자 나의 몸에 닿자, 순간 찌릿하였다. 지난 세월, 아버지에게만 허락한 나의 등을 낯선 남자가 밀어주고 있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해야 된다. 정신 바짝 차려야 된다. 나는 끊임없이 자기암시를 하였다.
"허걱! ㅅㅂ나러니라ㅓㄴ얼ㄴㅇ!"
너무 의식한 탓일까? 나도 모르게 그만, 비누를 잡은 손에 힘을 주다가 떨어뜨려버렸다. 절대절명의 위기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뒤에 있는 조상병을 곁눈질 하였다. 이거 완전 제대로 걸렸다. 집긴 집어야 할텐데, 잘못하다가는 선배의 예언대로 되는 게 아닐까? 나의 머릿속은 무척이나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나의 등을 밀어주고 있는 조상병은 손길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아니나 다를까? 조상병은 나의 귓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가츠야 얼른 집어! 누가 밟고 미끄러지면 어떡할려고!"
"아! 네...넵!"
나는 떨어진 비누를 집기위해 허리를 숙였다. 이런 자세를 두고, 흔히 무방비 상태라고 한다. 제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비누를 잡는 순간, 조상병의 손이 나의 엉덩이로 향하였다. 그리고는 힘차게 때렸다. 뭥미? 설마 새디스트?
"이런 개념을 밥 말아 처먹은 놈아! 어따대고 고참한테 엉덩이를 들이대! 돌아서 집어야지! 이걸 확!"
그랬다! 조상병은 자신에게 엉덩이를 들이댔다며 불쾌하였던 것이다. 비록 엉덩이는 시큰하였지만, 너무나 기뻤다. 다행히 조상병은 건전한 성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등을 시원하게 밀어주며 무사히 샤워를 마칠 수 있었다.
그제서야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한 내가 부끄러웠다. 선배가 한 말은 필시 나를 놀릴려고 한 말이었을텐데 말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고참 앞에서 비누를 집을 때는 항상 조심하여야 한다.
꼭 돌아서 집을 수 있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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