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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취사지원 上편, 취사지원 中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달콤한 휴식도 잠깐이었다. 어느새 취사병들은 저녁준비를 위해 조리실에 투입되었고, 재료 손질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저녁의 메인요리는 닭볶음탕이었다. 취사병이 쉬고 있던 우리에게 다가와서 도움을 청했다.
"야채손질을 해야 되는데, 2명만 와서 도와주세요!"
자연스레 막내인 나와 심이병이 취사병을 따라 조리실로 들어 갔다. 평소 요리라고는 자취할 때 라면 끓이기가 전부였던, 남자들만 조리실의 풍경이 무척 이색적이었다. 신나게 닭을 토막내고 취사병의 칼놀림은 평소 TV에서나 보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그 옆에서는 갓 홍콩에 건너온 요리사처럼 생긴 취사병이 연신 현란한 칼놀림으로 야채를 다듬고 있었다. 생활의 달인에 나가도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손이 안보여! ㄷㄷㄷ"
한참을 넋을 보고 구경하고 있는데, 취사병이 양파가 가득 담긴 바구니를 들고 우리 앞에 내려놓았다. 껍질을 까달라고 하였다. 나와 심이병은 조리장 구석에 자리를 잡고는 양파 껍질을 까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남자들만의 훈훈한 저녁만들기가 시작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자꾸 눈물이 나왔다. 그래도 맨날 삽질을 하다가, 요리를 하니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취사병 중에 막내로 보이는 아저씨가 대파와 당근을 한가득 가지고 와서는 우리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씻고 있었다. 나는 취사병에게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아저씨! 저기 칼질하시는 분은 원래 조리사 출신이예요?"
"아니예요! 무용하시다 오셨어요!"
"헐! 근데 취사병된 거예요?"
"안그래도 취사병하다가 살쪄서 망했다고 맨날 하소연 하세요!"
그랬다! 취사병이라고 무조건 조리에 관련된 병사들이 뽑히는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음식의 맛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많은 분들이 군대 급식은 맛이 없고, 질이 떨어진다고 걱정하는데, 그건 이미 옛날이야기다. 예전에는 온갖 비리와 소홀한 관리 감독으로 인해 최악의 짬밥이 나왔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간부 입장에서도 요즘처럼 매스컴이 발달된 시점에서 괜히 음식으로 인해 사고가 나면 무척이나 부담스럽기 때문에 철저하게 관리 감독을 지시한다.
내가 입대하였을 때만 하여도 꽤나 괜찮은 수준의 음식이 나왔다. 사실 듣보잡 식당에서 먹는 거보다는 훨씬 안전하고 깨끗한 식재료로 조리한다. 일주일 식단이 정해져 있고, 그에 맞는 식재료가 정확한 날짜에 보급되고 소비되기에 일반 식당처럼 남는 재료를 재활용하는 경우는 없다. 어차피 세금으로 구입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문을 남기기 위해 저질 재료를 쓰지 않는다. 오히려 각지역 유명 특산물로 구성된 재료들이 많았다. 고로, 식재료는 완벽하였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조리하는냐에 따라 맛이 좌지우지 되는 것이었다.
다행히 우리 부대 취사병들은 장인정신이 투철하였다. 열악한 조리환경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참으로 고마웠다. 그들은 꼭두새벽부터 나와서 우리를 위해 아침을 준비하였다. 물론 엄밀히 따지면, 소총수인 우리들보다는 편하다. 아니 훨씬 편할 수도 있다. 행군도 안하지, 근무도 안서지, 그 흔한 작업도 안한다. 그들은 그냥 2년내내 밥만 하면 된다.
그래서일까? 이등병때는 취사병이 부럽기도 하였다. 완전군장을 메고 오르막길을 행군하고 있는데, 트럭을 타고 우리 곁을 지나가던 취사병을 보았을 때 말이다. 또한, 맛있는 음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쉬는 날이 없었다. 전역하는 그날까지 공휴일, 주말도 없이 항상 취사장에서 요리를 하여야만 한다. 내가 병장이 되고, 내무실에서 누워서 황제놀이를 할 때도 그들은 좁은 조리실 안에서 뜨거운 열기를 맞으며 조리를 한다.
식사추진이 불가능한 험한 산 속으로 훈련을 떠날 때는 취사병들이 손수 우리들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어 주곤 하였다. 물론 맛은 뛰어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우리가 배고플까봐 챙겨주는 그들의 마음이 참으로 따뜻하였다. 내가 먹는 건 고작 2개였지만, 5, 6명인 그들이 만드는 건 천여개 훌쩍 넘을테니 말이다.
이렇게 장황하게 작성하는 이유는, 악랄가츠의 리얼로그에 오시는 분들 중에는 소중한 사람을 군에 보내신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현역일 때, 우리 어머니도 항상 걱정하였다. 행여 굶지는 않는지? 이상한 음식을 먹는 건 아닌지? 내가 괜찮다고 하였지만, 걱정할까봐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지? 2년이라는 시간을 줄곧 아들 걱정만 하셨다. 하지만 너무 걱정 안하셨으면 좋겠다. 요즘 군대에서는 정말 안전하고, 괜찮은 수준의 음식이 나온다.
"군대이야기 연재하는 가츠가 그러던데! 요즘 군대는 밥 잘 나온다며? 이제부터 소포랑 용돈없다!"
물론 이러시면 정말 곤란하다! 순식간에 나는 60만 장병의 공공의 적이 되어 버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군인들은 항상 배가 고프다는 것도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열심히 양파를 까고 있는데, 고참들도 하나둘씩 취사병의 손에 이끌려 조리실로 들어왔다. 결국에는 전원 투입되어 저녁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다들 맛있는 저녁을 위해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출입문에서 취사반장이 들어왔다.
"취사장 밖에 배구수 막히겠다! 나가서 확인해봐!"
순간, 나에게로 집중되는 끈적끈적한 시선들, 막내인 내가 가는게 당연한 수순이다. 나는 애써 웃으며 취사장 밖으로 연결된 배수구로 갔다. 각종 음식지꺼기로 인해 배수구는 막히기 직전이었다.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손을 집어 넣고는 음식지꺼기를 걷어내었다.
"눈을 떠 소리를 높여봐더 크게외쳐봐 그댄 Superstar~♪"
어디선가 달콤한 쥬얼리의 음성이 들렸다. 환청이라도 들리는 건가? 고개를 돌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보았다. 취사장 뒷 편에 있는 벤치에는 말년휴가를 다녀오고 전역신고를 준비하고 있는 취사병 왕고가 카세트를 들으며, 대대장에게 쓰는 편지를 작성하고 있었다.
누구는 백일휴가도 안 나간 이등병이고, 누구는 전역을 하루 앞둔 병장, 누구는 더러운 배수구에 맨 손을 집어 넣고 있는데, 누구는 음악을 들으며 편지를 쓰고 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게 현실이다. 나는 부러운 눈빛으로 그를 힐끔힐끔 바라보며 배수구 청소를 마무리하였다. 손을 씻고 다시 조리실로 갈려는데 그가 나를 불렀다.
"아저씨! 이리와요! 좀 쉬었다 해요!"
"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에이 괜찮아요! 이리와요! 담배펴요? 한 대 펴요!"
그는 내가 측은해보였는지, 말을 걸어주며 사제 양담배를 건네 주었다. 나는 그의 옆자리에 앉아서 담배를 피기 시작하였다.
"많이 힘들죠?"
"아니예요! 괜찮아요! 근데 취사병들은 포상휴가 많이 나가요?"
"음 그래도 꼬박꼬박 나가는 편이죠! 왜요 취사병하고 싶어요? 취사병 좋아요! 일단 행군을 안하잖아요! 그거 하나면 되는 거임! 게다가 요리실력도 늘고 좋아요!"
그는 연신 나에게 취사병을 지원하라고 권유하였다. 왠지 달콤하였다. 아침구보도 안할 것이고, 추운 새벽에 근무도 서지 않고, 맛있는 음식도 마음껏 먹을 수 있고, 포상휴가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고, 살아가면서 필요한 요리실력도 갖출 수 있다며 연신 나를 유혹하였다.
순간, 나의 마음도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취사병들 분위기를 보니, 내무생활도 지금보다 훨씬 편해 보였다. 그리고 요리가 재밌어 보이기도 하였다. 결정적으로 소총수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어차피 저 전역하면 추가로 뽑아야할텐데, 기왕이면 이등병을 뽑는게 낫거든요! 제가 바로 추천해드릴게요!"
"아니예요! 그냥 소충수할래요!"
그는 생각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나를 유혹하였다. 그의 설명만 듣는다면, 취사병이 훨씬 좋아 보이긴 하였다.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정든 소대원들을 배신하고 취사병이 된다고 하기가 부담스러웠다. 영영 안보면 상관없지만, 매일같이 만날텐데 말이다. 생각만하여도 무척 어색할 거 같았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 그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며 더이상 권유하지 않았다. 잠시후 취사장에서 박병장이 나오더니 담배를 피며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부랴부랴 다시 일을 하러 취사장으로 들어갈려고 일어났다. 근데, 박병장이랑 취사병 왕고랑 아는 사이인가보다.
"어이 박병장! 나 내일 집에 간다!"
"아나 완전 부러워! 좋겠다!"
"근데 박병장 막내 잘 뒀네! 의리 있는데!"
"응?"
"내가 취사병하라고 겁나 꼬셨는데, 안 넘어오던데!"
"후훗! 당연하지! 누구 분대원인데!"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돌아가는 나의 등에는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순간 착한 줄로만 알았던 취사병 왕고가 조커같아 보였다. 역시 군대에서는 한순간도 방심하면 안된다. 그래도 나는 배신하지 않았기에, 뿌듯하였다.
푸짐한 닭볶음탕이 완성되었고, 우리들은 먼저 식사를 하고 다시 설거지 준비를 하였다. 배도 부르겠다! 열심히 설거지를 하였다. 설거지만 마치면 취사지원 임무도 무사히 끝난다. 잠시후, 모든 뒷정리를 마치고는 내무실로 올라갔다. 내무실에 들어서자 나머지 소대원들이 TV를 보며 쉬고 있었다. 들어온 우리들을 보며, 다들 구박하며 외치기 시작하였다.
"아나! 이거 무슨 냄새야! 짬냄새 쩔어! 저리가! 오지마! 나가!"
"............."
문득, 나의 선택이 후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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