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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신나군 上편, 신나군 中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요즘 게스트 물이 제대로 올랐죠! 오늘 함께 할 게스트는요! 뭔가 악랄한 기운 안 느껴지시나요? 장안의 화제! 떠오르는 군대이야기의 신 본좌! 악랄가츠 황현씨 모셨습니다!"
"악랄 뭐? 누구야? 난 처음 보는 얼굴이네만 아는 사람이야? 요즘 제작진이 쫌 어렵나봐!"
"왠 듣보잡임?"
손문선 아나운서의 멘트를 시작으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패널들을 융단폭격을 맞으며 어렵사리 첫 인사를 하였다. 이제 겨우 한마디를 하였는데, 벌써 기진맥진하였다. 머리 위에 있는 조명은 너무나 눈부셨고, 나를 잡고 있는 4번 카메라의 렌즈는 흡사 먹잇감을 노리는 매의 눈빛 같았다.
이윽고, 이어지는 질문 공세, 사실 뭐라고 대답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카메라 옆 TV화면에 비치는 내 얼굴이 너무 낯설기만 하였다. 전혀 표정관리 안되는 얼굴은 내가 보아도 안습이었다.
역시 연예인들은 달랐다. 완벽한 시선처리와 표정관리, 재치있는 입담으로 어느새 촬영장 분위기를 유쾌하고 발랄하게 만들고 있었다. 결국 나만 잘하면 되었다. 머릿속에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맴돌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방청석에 앉아 있는 작가들이 보였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잡고 있는 4번 카메라 감독님, 연신 고개를 가우뚱 거리신다.
"흑흑 죄송해요! 제가 방송용 비주얼은 아니예요!"
화면에 꽉 차는 나의 머리가 여간 신경쓰이시나보다. 바로 옆 자리에 앉아있는 이승현 아나운서, 역시 훈훈하다. 문득, 나의 뇌리에 스치는 불길한 생각, 절대 이승현 아나운서와 같이 화면에 잡히면 안된다. 투샷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한다.
간단한 대화를 마치고, 준비한 VTR를 시청하였다. 신병교육대에 관한 내용이었다. VTR를 시청할 때는 그냥 보기만 하면 되었기에, 무척 편하였다. 이제 갓 입소한 훈련병들을 보며 다소나마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곧 VTR이 끝났고, 본격적인 토크가 시작되었다.
"보충대에서 훈련소 갈 때 기분이 어땠나요?"
"저는 GOP부대라서 남들 버스타고 이동할 때, 육공트럭을 타고 갔습니다!"
"하하! 전 전차부대라서 전차가 데리러 왔더라고요! 폼나게 전차타고 훈련소로 갔어요!"
이승현 아나운서가 육공트럭을 타고 훈련소로 갔다고 하자, 전차부대를 나온 기남이형의 과장이 시작되었다. 전차를 타고 간다는게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모두 야유를 퍼부었고, 말숙누나와 주희양까지 가세하였다.
"백마부대는 백마타고 가겠네요!"
"참나! 그럼 맹호부대는 호랑이타고 가냐구! 어흥!"
전차 발언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막 던지기 시작하였다. 전진부대는 전진이 데리러 온다는 차마 돌이킬 수 없는 멘트까지 나왔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나, 왠지 나도 무언가를 해야만 될 거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쉽사리 떠오르는 게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심원철 MC가 나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기 시작하였다.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나는 애드립을 떠올리기 최선을 다하였다.
"가츠씨도 하나 해야죠?"
"아...저...저희 부대는 언론사에서 데리러 왔어요!"
"응? 왠 언론사? 뭥미?"
"언론사 이기자님이 취재하러 오셨거든요!"
"..............."
이 분위기 어쩌면 좋지? 결국, 나도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야 말았다. 출연진들은 지금껏 방송하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리액션을 해주었지만, 저 멀리 PD의 한숨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이게 바로 편집의 공포구나! ㄷㄷㄷ"
그렇게 몇차례의 정적이 더 흐른 뒤에서야 무사히 녹화를 마칠 수 있었다. 눈부신 조명이 꺼지고, 다들 수고하였다며 인사를 건넸다. 녹화시간은 비록 3시간이었지만, 끝나고나자 10년은 늙은 거 같았다.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분장실로 갔다. TV만 틀면 쉽게 볼 수 있는 방송이었지만, 방송을 제작하는 현장에서의 노력은 실로 대단하였다.
옷을 갈아 입고, 회의를 하기 위해 다시 모였다. 그래도 녹화를 마쳐서인지, 녹화 전보다는 훨씬 훈훈한 분위기였다. 최PD는 멀리서 온 나를 위해 회식를 하러 가자고 하였다. 춘천하면 떠오르는게 닭갈비지만, 그에 버금가는 곱창도 있었다. 정말 맛있었다. 부족한 나를 다들 식구처럼 챙겨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본방은 12월 18일에 나온다고 하였다. 기타 방송국은 다음주부터 순차적으로 방영된다. 이제 나는 한동안 태평양 해저 탐험을 떠나야겠다. TV에 나오는 내 모습을 본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내 귓가에는 벌써부터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거 같다.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저를 데리고 녹화하시느라 고생하신 신나군 제작진, 출연진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신나軍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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