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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내일은 어린이날이구나!"
꼬꼬마 친구들이 가장 기다리는 어린이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마냥 어린이처럼 선물을 받아야 될 거 같지만, 괜시리 우기면 범죄인 거 같다. 문득 군대에서 어린이날은 무엇을 했을까? 궁금하여 상병시절에 잠깐 기록하였던 다이어리를 살펴보았다.
"헐! 분명히 내가 쓴 글씨이거늘! 못 알아보겠다!"
06년 당시 5월 5일은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이 겹친 따블데이였다. 이 얼마나 비통한 일인가? 공휴일이 하루 줄어들다니 말이다. 다이어리의 내용은 평범하였다. 농구를 하다가 부상을 입어 대대ATT를 제끼고자 하는 바램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문구가 의미심장하였다. 김상병이라 하면 군종병인 한달 선임이다. 군종병답게 평소 무척 모범적이고 착하기 그지 없는 최고의 선임이었다.
"그의 무서운 집념이라?
한참을 생각해보았다. 당시 시기적으로 우리는 군생활의 파라다이스라고 불리우는 1500고지 정상에 위치한 비밀첩보부대에 경계파견을 나가있었다. 일전에도 한번 소개한 적이 있기에 그 곳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09/05/21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경계파견 上편
2009/05/22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경계파견 中편
2009/05/25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경계파견 下편
2009/05/26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경계파견 번외편
수많은 작업과 훈련을 뒤로 한 채, 하루 2차례 경계 근무만 나가면 하루 일과가 끝나는 곳이다. 고로 전우들과 신나게 놀면 되는 곳이었다. 하루는 김상병이 씩씩거리며 들어왔다.
"김상병님! 무슨 일입니까?"
"아이씨! 열 받네! 개념없는 놈!"
"아니! 우리 천사 김상병님이! 누구입니까?"
"배일병말이야! 이거 이거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해가는데! 한번 제대로 걸려봐!"
배일병, 그가 원흉이었다. 생긴 거부터 뺀질뺀질하게 생긴 그녀석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였고, 항상 요령을 피웠다. 물론 대놓고 그러지 않기에 제대로 갈굴 수도 없었다. 게다가 눈치 하나는 나만큼이나 빨랐기에 항상 위기의 순간을 모면할 수 있었다. 근데 정작 나 또한, 그렇기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하지만 바른생활 사나이, 김상병에게는 배일병이 정말 얄미워 보였나보다. 한번 제대로 걸리기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루는 근무투입하는 나에게 몰래 다가오더니, 손에 무언가를 건네주는게 아닌가?
"이...이것은?"
"아니! MP3 아닙니까? 당신도 결국 타락한 천사였군요! 악마의 물건을 가지고 있다니!"
".................."
"근데 이걸 저한테 왜 주십니까?"
"가츠야!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MP3가 없어서 휴대폰 사진으로 대체하였다. 그는 나에게 MP3를 건네주며 귓속말로 속삭였다. 그가 준비한 계획은 다름아닌 도청이었다. 지금 내가 근무를 투입하면, 다음 근무자가 다름아닌 배일병이었다. 배일병 역시, 상병 진급을 앞두고 있었기에 선임근무자로 위병소 근무를 서게 된다. 고로 위병소에서 귀여운 후임을 붙잡고 놀 것이 뻔하기에 MP3를 이용하여 도청을 하기로 한 것이다.
"오호! 괜찮은데 말입니다!"
김상병은 친절하게 미리 테이프까지 부착해놓았다. 나는 그저 배일병과 근무 교대하기 직전에 책상 밑에 붙혀놓고 오기만 하면 되었다. 배일병 다음 근무는 바로 김상병이었기 때문에 여유롭게 녹음된 MP3를 회수하여 확인할 수 있다. 녹음 된MP3에는 배일병의 약점을 잡을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있을 것이다. 잘 수도 있을 것이고, 후임을 괴롭힐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고참 뒷담화를 하는 내용이 저장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근무지로 떠나는 나를 김상병은 어느 때보다 밝은 표정으로 배웅해주었다. 위병소 의자에 앉아서 김상병의 MP3를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괜찮은 곡이 있나 재생해보았다. 하지만 누가 군종병 아니랄까봐, 그의 MP3에는 죄다 찬송가 밖에 없었다. 이렇게 착실한 김상병이 이런 짓을 할 정도이니, 배일병이 정말 얄밉긴 얄밉나 보다.
"아가야 교대장 오면 말해!"
"네 알겠습니다!"
후임 근무자인 이일병은 위병소 앞에서 부대 막사 쪽을 바라보며 철통 경계를 서고 있었다. 지뢰밭으로 둘러 쌓인 산 꼭대기이다 보니, 위병소 밖으로는 감시 할 게 없었다. 곧 졸음이 밀려왔다. 꾸벅꾸벅 졸기를 수 차례, 다급한 이일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교대장이 오고 있다고 하였다. 나는 비몽사몽한 채로 책상에 MP3를 부착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배일병에게 인수인계하였다.
"미션 클리어!"
막사로 복귀한 나는 김상병과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시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후, 김상병의 근무시간이 다가왔다. 한껏 기대에 부푼 김상병은 위병소로 투입하였다. 나 역시, 어떤 내용이 녹음되어 있을지 무척 궁금하였다. 김상병과 교대하고 돌아온 배일병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뺀질뺀질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너 이제 죽은 목숨이야! 쯧쯧!"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 지루하였다. 그날따라 시간은 왜 이리 안가는지? 이제나 저제나 김상병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후, 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김상병, 나를 보자마자 헤드락을 걸었다.
"왜 이러십니까?"
"죽을래! 녹음이 안되었잖아!"
"그럴리가? 분명히 눌렀는데 말입니다!"
"없어! 아무 것도 없어!"
분명히 녹음 버튼을 누른 거 같았는데, MP3에는 아무 것도 녹음되어 있지 않다고 하였다. 하긴 다급하게 설치하느라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은 나의 불찰이었다. 결국 배일병이 아니라 내가 김상병의 먹잇감이 되어버렸다. 헤드락이 걸린 채로 이리저리 끌려다니다가 TV 앞에서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배일병의 모습이 보였다.
설마 저 녀석이 이미 눈치챈 거는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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