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보기
오늘은 지난 시간 중봉파견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이용해주세요!
지난 글에서 우리소대는 꿈에 그리고 그리던 중봉 경계파견을 왔다. 처음 일주일간은 부대 적응을 위해 소대장님은 나름 FM으로 일과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좁은 곳에서 경계근무만 확실히 나가면 되기에 곧 일과시간의 개념이 없어졌다.
보통 주,야간 합해서 3,4타임 근무만 나가면 하루 일과가 끝이 났다. 나머지 시간은 그냥 내무실에서 뒹굴뒹굴거리면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생활인가? 물론 파견부대 주임원사가 종종 작업을 시키기도 했지만, 주둔지에서 하는 작업이랑은 차원이 다른 것이다. 여기서 가츠네 이기자부대는 경계부대, 그 곳의 부대는 파견부대라고 지칭하겠다.
그리고 작업을 할때마다, 음료수와 빵을 주었기에 다들 기쁘게 작업을 하였다. 이 곳의 부대는 약간 특수하다. 자세한 부대 임무는 보안상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그 곳의 인원들은 주로 장병,군무원, 간부순으로 있었다. 특히 장병들은 육,해,공,해병대에서 각각 차출되어 온 병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루는 파견부대에서 전역자가 있었다. 보통 하루에 2차례 운행하는 통근차량을 타고, 인원들이 이동하기 때문에 마침 근무중이던 나는 전역자와 배웅해주는 동료들을 볼 수 있었다.
'이병장, 나 먼저가~! 앜ㅋㅋㅋㅋ 나 먼저 간다구우~! 고생해~!'
'.............................'
그랬다! 전역하는 병사는 육군이었고, 이병장이라고 불리는 선임은 공군이었다. 이병장이 한달 선임이지만 공군이므로 전역하는 후임보다 더 늦게 전역하는 것이다. 후임의 전역의 먼저 보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어느덧 파견 온 지 2주가 다 되어간다. 당시 최고의 인기드라마였던 손예진 주연의 연애시대, 한가인 주연의 닥터 깽을 보면서, 백지영의 사랑 안해를 들으면서 이대로 시간이 멈추기를 바라며 그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2주가 지나도록 우리 중대측에서 부식이 올라오지 않는 것이다. 월급은 안줘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그곳에서는 돈 쓸일이 없기때문이다. 경계파견나가면 매일 라면과 빵도 나온다는데 하나도 안 준다. 또한 연초(군담배)도 안오는 것이다. 당시 소대원 80%가 흡연자들이었는데 담배가 단 한개피도 없이 동이 난 것이다.
심지어 소대장, 부소대장님 사온 사제담배마저 다 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니, 소대 전체는 금단증상으로 맛이 가기 시작했다. 당시 우리 경계부대 내무실은 부대 건물의 외곽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중심부는 철저하게 통제되어있고, 우리 소대장님 조차도 출입을 못하였다. 고로 우리 내무실 주위에는 부대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다.
하지만 파견부대 이등병 아저씨는 꼭 우리 내무실앞에 위치한 야외화장실을 이용하였다. 이등병의 입장에서는 최대한 고참들이 없는 곳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이다. 어딜가나 이등병의 마음은 똑같군!
우리에게 그 아저씨가 구세주였다. 상병짬밥에 차마 담배 좀 달라고 하기 부끄러워서 노일병을 투입시켰다. 이건 상병 짬밥도 아니다. 소대장님이 적극 지시하였으니 중위짬밥이구나.
소대장님의 특명을 받고, 투입된 우리 노일병, 파견부대 이등병에게 다가간다.
'저기~! 아저씨, 담배 좀 있어요?'
'아 예~, 여기요~!'
'아니. 한 10개비만 필요한데~!'
'......................'
다행히 파견부대 아저씨는 내무실로 갔다오더니 한갑을 주었다. 우와아아~ 구세주다! 구세주~!
그렇게 앵벌이 맛들린 노일병, 담배가 구해주면 소대장님이나 고참들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시키지도 않았는데 혼자 온 천지를 돌아다니면서 담배 앵벌이를 시작하였다. 사실 파견부대 아저씨들도 연초를 받는 건 똑같다. 고로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양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도 자기 피는 양에 맞게 계획적으로 피고 있을테니 말이다. 우리 소대원 24명+소대장,부소대장님이 노일병이 주는 담배로 연명하고 있었으니 얼마나 많이 앵벌이 했겠는가?
이제 파견부대에서도 소문이 났다. 특히 노일병이라는 놈의 몽타주가 배포되었고, 담배필때 조심하라는 것이다. 만나면 다 털리니깐 말이다.
사실 우리도 자존심이 있지! 앵벌이하고 싶어서 하는게 아니잖아! 이게 다 행보관때문이다. 나중에 한번 이야기 주제로 다룰 예정이므로 넘어가겠지만, 암튼 행보관이 우리에게 안 보내주고 있는 것이다. 소대장님도 화가나서 재차 중대에 연락해서 보급품을 보내달라고 했지만, 그냥 기다리란다.
그렇게, 우리는 근무자특식도 없이, 담배도 없이, 멍하니 살아갔다. 사실 복에 겨웠다. 불과 몇주전만해도 매일같이 아침구보, 훈련, 작업, 근무에 내무실에서 30분만 누워보는게 소원인 녀석들이 24시간 누워서 TV보는 이곳에 있으니깐 배떼지가 부른 것이다.
주군지 생활은 생각도 못하고, 이제는 당장 연초와 라면 생각만 간절한 것이다.
파견부대는 과연 우리나라 최상위급 부대답게, 취사병도 모두 일류호텔에서 근무한 요리사로서 우리에게 식사시간은 항상 호텔에서 먹는 기분이었다. 주둔지에서는 취사분대 6,7명이 대대 500인분을 만든다. 또한 개중에는 급하게 소대에서 차출한 인원들도 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열약한 조건에서 나름 맛있긴 했다. 우리 취사병 아저씨들이 참 고생이 많았다. 다들 착하고 말이다.
500인분을 준비하니, 모든게 크게크게 만들어야 된다. 그러니 요리의 질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이곳은 많아봐야 100인분만 만들면 된다. 또한 병사비율과 간부비율이 비슷한데, 군무원까지 하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식사는 같이 한다. 그말은 간부용 부식과 병사용 부식으로 같이 요리를 하니 당연히 고퀄리티 음식이 나올수 밖에 없다.
군대에서 계란덮은 오무라이스 먹어본사람? 못 먹어봤으면 말을 하지 말어~! 국도 가끔 냄비에 찌개로 나온다~! 분대원끼리 오순도순 숟가락 떠먹는 맛이란~! 그것도 일류호텔요리사출신의 그 맛이란~! 지금와서 말하는 거지만, 우리 엄마가 해주는 밥보다 맛있었다! ㅋㅋㅋ
하지만 밥만으로 버틸 수 없는 20대 청춘들 아닌가? 또, 맛있는 밥일수록 금방 소화되는 법~! 항상 배가 고팠다. 특히, 몸이 편하니 자라고 해도 잠도 안온다. 취침시간이 22시로 정해져있지만, 다들 드라마보고 예능보느라 잠이 올리가 없다. 낮에 하루종일 누워자니깐 말이다. 물론 후임들은 잔다. 아니 자는게 좋겠지?
김병장과 나, 노일병은 새벽에 식당을 침투한다. 그곳에는 파견부대의 야간근무인원 특식때문에 항상 오픈되어있다. 하지만 야간특식은 우리가 손되면 안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먹을게 없는게 아니다. 취사병아저씨는 센스있게 경계부대인원들은 라면에 밥 말아먹으라고 항상 여분의 밥과 김치를 오픈시켜 놓았다. 하지만 우리는 라면이 없다.
그럼 밥이라도 비벼야지~! 냄비에 밥을 넣고, 간장을 넣고, 참기름을 넣고, 깨소금을 넣고, 김을 뿌리고, 맛있게 비벼서, 김치와 함께는 먹는 맛이란~! 최고였다. 항상 12시까지 드라마, 예능을 보고 식당으로 침투하여 먹었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밥만 먹으니 뭔가 허전하다. 다들 라면 하나에 간절했다. 뜨끈뜨끈한 라면국물에 밥 말아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아 생각만 해도 침이 꼴까닥 넘어간다.
시간은 계속 흘러, 3주차에 들어갔다. 부식과 연초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우리는 다들 타도 행보관을 외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후임들이 분리수거를 하러갔다가 무언가를 들고 오더니 잽싸게 관물대에 넣는 것이 아닌가~! 이것을 놓칠리 없는 가츠는 후임들에게 물었다~!
'야 배일병, 김이병~! 방금 뭐 숨겼어~! 어~! 이것들이 못봤을줄 알고~! 형은 매의 눈이다~! 이색히들~!'
근데 이녀석들 완전 얼어버리면서 우물쭈물한다. 옳거니~! 잘 걸렸다~! 안그래도 무료해 죽겠는데 오늘은 니들이랑 놀아야지~!
'일로와~! 일로와~! 뭐야! 빨리 말안해? 가져와봐~!'
'아 그게~ ㅜㅜ 잇힝 ㅜㅜ 아 몰라.. 야 김이병 가츠상병님 보여드려~!'
헉~! 이건 쌀국수~! 베트남 쌀국수까진 아니지만 나름 퀄리티있는 국물맛이 좋은 쌀국수~!
'이 배신자들~! 이걸 너거들끼리 쳐먹겠다고 숨긴거야~! 아나 내가 후임들을 잘못 키웠네~!'
'흑흑 가츠상병님~! 그게 아닙니다~! 사실 분리수거하다가 파견부대아저씨들이 오더니 쌀국수를 박스채로 버리는거예요~! 물어보니 원래 부대원들이 잘 안먹는데, 유통기한 지나서 버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날짜를 보니 하루 지났길래 먹어도 될꺼 같아서 가져온거예요~! 괜히 유통기한 지나서 버린거 줏어왔다고 혼날까봐 ㅜㅜ'
'야 이런 똘아이들아~! 누가 쪽팔리게 남들이 버린거 줏어오라고 했어~! 어~! 우리가 거지야~! 그리고, 유통기한 지난거 먹고 탈나면 우짤라고? 니 몸이 니들꺼야? 어? 니들 아파서 들어누워봐라~! 그럼 형이 대신 근무나가야되잖아~! 형이 대타로 근무나가면 니들 살려주겠어? 더 아프겠지?'
'흑흑~!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갑자기 나까지 불쌍해진다. 우리 후임들 얼마나 먹고싶었으면 남들이 버린거 줏어왔을까? 내가 돈이 없어서 못사주는것도 아니고, 지들이 돈이 없어서 못 사먹는것도 아니다. 그냥 라면가 자체가 없는거다.
이 비참한 현실~! 사실 라면이 하루지났다고 먹으면 탈나겠는가? 부식창고에서 안전하게 변질없이 보관해온 것인데. 단지 파견부대사람들이 안먹는다고 버린 것을 좋아라하면 줏어 온 녀석들, 고참이 보면 혼날까봐 몰래 관물대에 숨기려고 하는 녀석들이 너무 측은했다.
'야~! 하긴 지금 상황은 아주 특수한 상황이다. 일종의 생존게임이지~! 자기가 먹을거 구하는 것도 능력이지~! 암~! 쌀국수 국물이 얼마나 맛있는데~! 그쟈? 가서 박스채로 회수해온다! 실시~!'
자정을 넘긴 시간, 어김없이 식당으로 침투한 가츠는 쌀국수에 맛있게 밥을 말아먹고 있었다.
국물이 끝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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