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보기
어제 점심먹고 왔더니 채팅창에 부모님께서 글을 남겨놓으셨더군요. 현역때라면 모르겠지만 이미 예비군 2년차인 저에게 보내신다면 전군 역사상 가장 군기빠진 훈련병이 탄생할 듯합니다. 훈련병때부터 조교의 라면을 훔쳐서 맛있는 뽀글이를 만들어 먹을 것이고, 항상 조교의 눈을 피해 짱박히므로 탈영병으로 오인받을 수도 있습니다. 모름지기 정예신병육성의 요람 훈련소에서 차근차근 정규교육 받는 것을 권장합니다 ^^*
오늘은 가츠군이 이등병때부터 꿈에 그리고 그리던 중봉으로 파견나가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이용해주세요!
06년 3월 20일 월요일, 드디어 우리 중대가 지옥같은 주둔지를 벗어나, 2개월동안 경계파견을 떠난다. 쉽게 설명해서 GOP나 GP 투입이라고 보면 되겠다. 다만 지키는 곳이 다를뿐, 그 기간동안은 외출, 외박이 통제되며 면회도 물론 안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우리 소대만 단독으로 화악산 중봉에 위치한 비밀첩보부대로 간다. 나머지 중대원들은 중대장, 행보관님과 함께 군단탄약고를 지키러 간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츄레이션인가? 주둔지의 수많은 간부들을 뒤로하고 무수한 훈련과 작업을 뒤로하고 우리만의 보금자리로 가는 것이다. 게다가 중대장, 행보관님과도 떨어져 있으니 정말 너무 행복하였다.
출발 당일, 아침부터 소대원들은 들떠있었다. 이미 지난 주말, 육공에 물동량을 다 적재해놓았다. 소내에 있는 TV부터 싸그리 다 가져간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엄연한 대한민국 육군 소총수, 알보병들 아닌가? 목숨과 같은 총과 절대친구 완전군장만은 육공에 실을 수 없었다.
조식후, 이제 2달간 못보는 중대원들과 정답게 인사를 하고 각자의 차량에 탑승하였다. 다들 출동하면서 그렇게 기쁜 얼굴은 처음인거 같았다. 마치 휴가 나갈때나 볼 수 있는 표정이라고 하면 우리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겠는가? 특히나 중봉에서 전역을 맞이하는 우리 말년 병장들은 한껏 고무되어있었다.
'가자~! 중봉으로~! 가자~! 파라다이스로~! 잘 있거라 주둔지야~! 다시는 마주치지 말자~!'
그렇게 5중대는 빛나는 육공을 타고 당당하게 위병소를 벗어났다. 나가면서 교육훈련 나가는 타중대원들과 마주쳤다. 우리는 너나할것없이 즐거워하며 손을 흔들었고, 그들은 애써 우리의 시선을 외면하였다.
좋아하는 것도 잠시, 탄약고로 가는 중대원들은 육공을 타고 마냥 신나게 달리면 된다. 하지만 우리 소대가 가는 곳은 1450고지 화악산 꼭대기에 위치한 곳이다.
물론 물동량을 실은 차는 올라간다. 그곳에도 엄연히 군인들이 생활하고 있고, 하루에 2차례 간부나 휴가자들을 위한 통근차량이 목숨을 걸고 오르락 내리락 한다. 하지만 우리는 통근차량이 아닌 육공아닌가! 그것도 소대원 30명이 빼곡히 탑승한 묵직한 육공!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없다. 우리에겐 튼튼한 두다리가 있잖아!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화악산 입구를 알려주는 촛대바위가 우리의 시야에 보이기 시작하였다. 관광객들은 촛대바위를 만나게되면 너나할것없이 신기해하고 좋아라한다. 하지만 이기자부대원들에게 촛대바위는 고통의 시작이다. 그곳에서부터는 병력을 실은 차량운행이 안되기 때문이다. 고로 우리들은 촛대바위를 보면 항상 X대바위라고 투덜거렸다. 사실 생김새도 비슷하다.
'3소대 하차!'
소대장님의 하차명령과 함께 신속하게 우리는 차량에서 하차한 뒤 대열을 갖추었다. 평소같으면 한숨을 쉬면서 내리던 곳인데, 오늘만큼은 다들 신나서 빨리 출발할려고 난리다.
여기서 잠깐! 왜 소대원들은 잔뜩 신난 것일까? 꾸준히 읽어오신 분들이라면 이해하시겠지만, 오늘 처음 보시는 분들을 위해 잠깐 설명하겠다. 제일 좋은 방법은 지난 글보기를 이용하여 가츠군의 부대상황을 보시면 확실하겠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가츠군의 부대는 전군에서 훈련량이 가장 많고, 부대 시설도 가장 낙후되었다. 아직까지 나무관물대 사용하는 곳, 진짜 손에 꼽힌다!
27회까지 포스팅하면서 수십만명의 예비역분들께서 다녀가셨고 수천개의 댓글도 달렸지만, 반박글보다는 공감과 동정의 글만이 달렸다. 물론 가장 힘들다고 하면, 공수부대 아저씨들께서 낙하산타고 내려와서 사뿐히 밟아주시거나, UDT/SEAL 아저씨께서 바다에서 뛰쳐나와 대검을 날리실지도 모르겠다.
여튼, 주둔지에서의 생활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빡센 곳이다. 하지만 경계파견을 가게되면, 경계근무만 확실하게 수행한다면, 소대장님을 제외한 어느누구도 우리에게 터치를 하지 않는다. 근무시간을 제외한 24시간 풀TV연등, 오침이 보장된다. 물론 소대장님이 FM으로 한다면 힘들어지겠지만 말이다. 또한, 산 꼭대기에 연병장이 어디 있겠는가? 구보도 없고 점호도 없다. 주둔지 생활에 찌들린 우리에게는 천국, 그 자체였다.
내가 이등병때 전역을 앞둔 한 병장의 회고록을 들어보자.
'저에게 지난 2달간의 중봉파견은 꿈만 같았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때, 발 밑에 깔리는 안개를 보며 마치 제가 신선이라도 된 거 같았습니다. 영영 그곳에서 살고만 싶었습니다. 주둔지로 다시 돌아오면서 자살충동이 밀려오더군요. 만약 당신이 그곳에 간다면 정말 축복받은 것입니다. 조국에 감사하며 또 감사하십시오'
그만큼 우리 소대원들은 부푼 희망을 가지며, 갈망하며 지난 겨울을 버텨온 것이다. 지난 혹한기 훈련과 혹한기 대항군훈련때도 단지 중봉파견만을 꿈꿔오며 버텨왔다.
'가츠야 좀만 참자~! 우리에겐 중봉이 있잖아~! 이 모든것을 보상받을 시간이 얼마안남았어~!
그리고 그날이 온 것이다. 이번만큼은 모든 것을 가지고 가야했기에 완전 FM군장이었다. 그러나 무겁지 않다! 내 어깨에 짊어진 K-3도 오늘만큼은 권총같았다.
그러나 1시간후, 꿈에서 깨어나서 현실을 직시하였다. 힘들다! 겁나 힘들다!군장은 완전 무겁고 K-3는 집어던지고 싶다. 아직 갈길은 멀고도 멀었는데 말이다. 등산객들과는 달리 우리는 부대 통근차량이 다니는 비포장도로로 끊임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걷기 모드도 약발이 다되었다.
3시간을 꼬박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슬슬 체력약한 신병들에게 한계가 오는거 같았다. 평소 같으면 다가가서 다시 친절하게 의욕을 불어넣어 주겠지만 오늘은 즐거운 날이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당장 죽을꺼 같다!
그리고 가는길에 점심을 먹어야했기에 우리는 손수 무거운 식관을 들고 올라가고 있었다. 물론 센스있게 출발하면서 이른 점심을 먹었지만 말이다. 빈 식관이라도 걸리적거리고 무겁기는 매한가지!
결국에는 우리 김이병 장렬하게 기절모드로 들어갔다. 잠시 행군이 중단되고 소대장과 분대장은 김이병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소대장님의 표정이 어두운걸 보아 더이상 군장메고 올라가기에는 무리같아 보였다. 자~ 김일병의 군장은 누구에게로 향할 것인가?
멋지게 소대장님이 군장을 2개 덥석 메셨다. 와아~ 사실 우리 소대장님 좀 강하다! 그렇게 군장을 2개 메신 소대장님은 후방에서 김이병과 천천히 걸어오고 계셨고, 우리는 다시 정상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찰나, 뒤에서 영화의 한장면처럼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빛나는 레토나가 올라오고 있었다. 201차량! 대대장님이다. 우리가 행군을 잘하고 있나 확인도 하고, 중봉부대에 병력 인수인계차 올라오고 있는 중이었다.
우린 전원 긴장하였다. 이윽고 우리 곁에서 레토나는 멈춰섰고, 대대장님이 내리셨다.
'이기자!, 3소대 행군중 이상없습니다!'
우리 소대장님 떡하니 군장 2개메고 땀 뻘뻘흘리면서 그걸 말이라고 하신다.
'껄껄~! 김중위~! 이상있어보이는데? 요거 깔짝 올라가는데 어느 녀석이 퍼졌어?'
'이병 김OO! 죄송합니다! 흑흑! 엄마 보고싶어요 ㅜㅜ'
'우리 김이병은 올라가서 체력단련 많이 해야겠구나~! 껄껄~! 근데 식관 무겁게 왜 들고 다니고 있어?'
아나~! ㅋㅋㅋ 그럼 택배 불러서 부칠까요?
우리 대대장님도 그걸 말이라고 하신다! 한데 왠일로 대대장님은 웃으시면서 우리를 격려하였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김이병의 군장과 식관을 레토나 뒷좌석에 싣고는 떠나셨다.
이야~ 그 악독한 대대장님도 말년되시니깐 변하셨다. 다시 시작된 행군, 저 멀리 정상이 보일듯 보일듯 안보인다. 항상 저 고개만 돌면 정상일꺼 같은데, 막상 돌면 같은 풍경이다.
'이곳은 지뢰매설구역입니다. 근처에 계신 민간인은 신속히 현위치를 이탈하시기 바랍니다. 다시한번 알려드립니다. 이곳은 지뢰매설지역입니다.'
어디선가 방송이 메아리처럼 들리기 시작하였다. 이제 마지막 고개만 돌면 되는가보다. 소대원들은 다들 신나서 더욱더 박차를 가하며 올라갔다. 힘든 기색이 가득한 얼굴에는 미소가 가만히 피어오르기 시작하였다. 마지막 고개를 돌자 우리의 눈 앞에는 한 폭의 장관이 펼쳐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드디어 눈에 그리던 그 곳에 도착했다. 부대의 철조망이 열리더니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 곳에는 우리랑 교대해야할 1대대 아저씨들이 떠날 채비를 마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서 전역한 병장의 회고록이 떠올랐다. 다들 주둔지로 돌아갈 생각에 풀이 죽어있었다. 이제 열흘만 있으면 4월이다. 훈련의 계절이 도래한 것이다. 그들에게는 이제 미래가 없는 것이다. 대개 2년에 한번 오는데, 이미 왔으니 아마 그들은 다시는 이곳을 밟지 못할 것이다.
바로 인수인계가 시작되었다.소대장님은 나부터 당장 위병소 근무를 서라는 것이다. 나야 완전 탱큐지~! 물동량 안내려도 되고, 내무실 정리를 안해도 되니 말이다. ㅋㅋㅋ
'아저씨! 완전 좋겠네요~! ㅜㅜ 우린 겨울에 와서 2달내내 눈만 치웠어요~! 아나~! 날 좀 풀린다 싶으니 주둔지로 복귀하네요~! 흑흑~! 요즘 주둔지 분위기 어때요?'
'솔직하게 말해드릴까요? 지금 사단장님 특별지시사항으로 사격과 강인한 체력! 맨날 PRI하고요! 산악행군하고 온갖 병기본 측정하고 주둔지는 지옥이랍니다~♪'
' 아 XX! 아저씨 너무 솔직하시네요 흑흑, 암튼 인수인계 해줄께요! 여기는 TA-312같은거 없어요 그냥 여기 전화기쓰시면 되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게 부대장님 출퇴근할때, 경례하는 건데 미리 연락이 오거든요. 그럼 출입문 활짝 개방한 다음 나가서 이기자 하지 마시고요! 충성하셔야되요~!
근무중 이상없습니다! 그것만 잘하시면 되요. 그리고 여기 오는 인원은 미리 다 허가받고 오는 사람들이거든요! 고로 우리 사단장님이 갑작스레 방문한다 해도 무턱대고 문 열어주시면 안되요! 무조건 상황실에 보고하고 확인한 다음에 통과시켜야 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는데 여긴 정말 천국입니다. 2달 만끽하고 오세요~!'
그렇게 그들은 인수인계를 마치고, 힘없이 내려갔다. 위병소 근무는 처음이었다. 주둔지에서는 위병소는 8중대만 전담으로 했기때문에 내심 초조하였다. 하지만 이곳은 워낙 다니는 인원이 없으니 위병조장도 없다. 그냥 2명이서 선임이 건물안에 앉아서 기록하고 한명은 건물 문앞에 서있으면 된다. 어차피 부대출입문은 항상 잠겨져있으니 누가 오면 그때 확인하고 열어주면 된다.
고로 선임근무자인 나는 항상 앉아 있으면 된다. 물론 다른 초소에서는 서서 근무해야되지만, 이미 경계전담때 하루에 6타임도 섰는데, 이정도쯤이야~ 후훗 가소롭다!
근무를 교대하고 내무실로 가봤다. 이야~ 우리에게 준비된 내무실은 2개다. 주둔지에서 그 좁은 내무실에서 30명이 옹기종기 생활했는데 말이다. 그리고 관물대 철제 관물대도 아니고 나무로된 고품격 관물대다. 우리 주둔지에 있는 그런 나무관물대말고, 마치 유럽의 고풍스런 벽장을 가져다 놓은 듯 하였다.
우리 애들 옷정리하는데 어리버리하고 있다. 항상 야상이든, 전투복이든 접어서 차곡차곡 올리는 나무관물대가 아닌지라, 옷걸이에 옷을 걸면서 고참들 눈치를 살피고 있다.
사실 고참들도 신교대이후로 처음 사용하는 관물대인데, 매한가지다. 결국 부소대장님이 오셔서 통제해주셨다. 야상, 전투복 순으로 걸고 아랫부분에 활동복 이곳엔 전투조끼,화이바,탄띠 등 하나하나 통일시켰다. 아나 ㅋㅋㅋ 마치 신교대같다!
그렇게 우리는 꿈에 그리던 중봉에서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재미난 동영상을 발견하여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작년에 우리대대 육군 아미송 UCC 경연대회 출품작이라는데 요즘에는 군대에서도 신기한 거 많이 하는듯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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