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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전병력 2소대 내무실로 집합하시랍니다!"
어김없이 찾아 온 수요일, 군대에서 매주 수요일 오전이 되면 정신교육시간을 가진다. 근무병력을 제외한 전 중대원들은 모두 2소대 내무실로 모인다. 당시 막내였던 나는 선임들을 따라 조신하게 2소대로 들어갔다. 일전에도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당시 2소대는 정말 위험한 곳이었다.
2009/12/02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2소대
"이기자! 이병 가츠! 2소대에 용무있어 왔습니다!"
이미 내무실 상석에는 각 소대 병장들이 들어눕다시피 앉아서 장난치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지고자 한기가 심한 문쪽으로 바짝 붙어 앉았다. 나의 이런 뜻도 모르고 박병장은 친히 자신의 앞자리로 나를 불렀다. 결국은 병장들이 바글바글한 중심부로 들어갔다.
곧, 정신교육이 시작되었고, 첫시간에는 모두 국군방송을 시청한다. TV 화면에는 우리 국군의 자랑스런 위상과 활약상이 나왔다. 나는 재밌게 보고 있는데, 고참들은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이제 1번만 더 보면 집에 가는구나! 많이 봐라! 나중에는 대사까지 외운다! 앜ㅋㅋㅋㅋ!"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을 맹세합니다!"
소개 영상이 끝나면, 주로 토론 프로그램이 나왔다. 그 때는 장교로 구성된 남녀 아나운서가 나와 게스트들과 토론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사실 사진처럼 아리따운 여군이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였다. 위 사진은 8사단 신병교육대 정훈장교를 시작으로 국방홍보원 홍보지원병사대장, 즉 연예병사 전담 중대장이자 국군방송 아나운서를 거쳐 지금은 KBS스포츠에서 활동하는 이지윤 아나운서이다.
게스트들은 일반 대학생과 각 군에서 파견된 병사들이었다. 그나마 카메라가 여대생을 비춰주면 다들 환호성을 내며 좋아하였다. 그러다가 문득 공군에서 파견나온 병사가 비춰졌는데, 졸고 있었다. 이 시각 전군에서 모두 시청하고 있을텐데, 그 병사는 용감하게 졸고 있었다.
"오오! 용감해! 저녀석 진짜 사나이야! 완전 영창감이야!"
"국군병원부터 먼저 갈 거 같은데 말입니다!"
특별출연한 붐에게 감사드리며, 참고 사진이 없다보니 그만, 예능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이며 승승장구하던 붐이 작년에 입대하였다. 지금은 위문열차 MC를 보며 열심히 군에서 자신의 끼를 발휘하고 있다. 일전에 방송국에 갔다가 들은 이야기인데, 신교대를 퇴소하고 자대배치를 받은 붐은 부대장에게 전입신고를 하였다고 한다.
"이병 이민호!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아!"
"으음! 자네 낯익은데... 누구였지?"
"붐이예요!"
"............"
그날밤, 붐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얼마 후, 연말 시상식에 나와 보여 준 그의 군기잡힌 모습만이 당시 상황을 예상해 볼 수 있겠다.
다시 돌아와서 모든 TV시청이 끝나면, 중대장과 함께하는 안보교육이 실시된다. 당시 중대장은 연대 최강의 포스를 자랑하는 특전사 출신의 이대위였다. 이미 몇차례의 포스팅을 통해 익히 알고 있을거라 믿는다. 참고로 연대장, 대대장에 이어 중대장까지 나의 블로그 존재를 알고있다는 소대장의 첩보가 입수되었다. 더욱 조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이노무색히들! 요즘 빠져가지고! 먼저 군기본자세 확립!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응? 뭐라고?"
"네에에에엣! 알겠습니다아!"
"아무튼 아무나 하나 걸려봐!"
그렇게 시작된 중대장과의 안보교육, 곧 집에 가는 중대 왕고마저도 각을 잡고 무한한 존경의 눈빛으로 중대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등병이었던 나는 따뜻한 침상에 앉아서 가만히 중대장만 바라보고 있으니, 곧 잠이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이상하게 학창시절 때부터 무서운 선생님이 수업하는 과목만 졸음이 밀려왔다. 이날도 아니나 다를까? 중대장이 눈 앞에 떡하니 서 있는데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있었다. 게다가 위 그림에서처럼 침상을 마주하고 있기 때문에 맞은편에 있는 고참들의 시선도 한 몸에 받고 있는 위치이다.
'졸면 죽는다! 다시는 깨어날 수 없을지도 몰라! 근데 너무 졸려! zZZ'
쏟아지는 졸음을 참는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나의 눈은 연신 껌뻑거리고 있었고, 이내 감고 있는 시간이 더욱 길어졌다. 중대장의 목소리도 자장가처럼 들리더니, 어느순간부터 들리지 않았다. 헉!
얼마나 눈을 감고 있었지? 중대원이 가득 차 있는 내무실이 너무 조용하였다.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뜨자 마자 보이는 중대장의 시선이 나로 하여금 간 떨어지게 만들었다. 중대장은 멘트도 하지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관등성명을 떠나가랴 외쳤다.
"이이벼어엉! 가아아츠으으!"
"깜짝이야! 너 뭐야! 갑자기 왜 그래? 뭐가 불만이야! 집에 가고 싶어?"
"헐! X됐다!"
순식간에 나에게 이목이 집중되었다. 중대장은 단지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할 말을 생각하기 위해 말을 끊은 것이었는데, 순간 나는 졸다가 걸린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등 뒤에서 박병장의 한숨소리가 태풍소리마냥 크게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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