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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시끄러워 죽겠네!"
본격적인 지방선거 운동기간이다. 온종일 아파트 밖에서는 선거유세 차량 빵빵한 스티커를 탑재한 채 소음을 내고 있다. 온동네가 떠나가랴 틀어대는 음악소리에 절로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유심히 듣고는 후보자의 이름을 기억해둔다. 내 절대 당신만큼은 안 뽑으리라!
전국이 선거로 시끄러울 때도 강원도 깊은 산 속에 위치한 군부대는 그저 고요하기만 하다. 군인들은 미리 부재자 투표를 완료하였기에 선거 당일에는 그냥 하루 푹 쉴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4년전, 5월 31일은 제 4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린 날이다.
"유치원 같애!"
별다른 통제가 없었기에 오전부터 내무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당시 우리 부대는 대대장이 교체되면서 멸공대대에서 꿈터대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실 처음에는 전문싸움닭 부대인 멸공대대의 포스가 마음에 들었기에, 유치하였는데 듣다보니 뭐 괜찮았다.
그리고 대대장은 누구보다도 축구를 열렬히 사랑하였다. 자연스레 꿈터리그가 결성되었고 매일 같이 중대별로 리그 대항전이 열렸다. 평일에는 저녁식사 하기 전에 한게임씩 진행되었고, 쉬는 날에는 2, 3게임씩 꼬박꼬박 진행되었다. 최종 리그 우승이 되면 포상휴가가 뒤따르기에 다들 열심히 축구 경기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먼나라 이야기였다. 일전에 소개하였지만 나의 군대스리가 공식 경기는 화려하게 데뷔함과 동시에 은퇴하였기 때문이다.
2009/06/18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군대스리가
"안그래도 힘들어 죽겠구만! 왜 뛰어다녀!"
당시 내무실의 실세라고 불리우는 짬팀, 상병 5호봉이었기에 대놓고 나가지 않아도 크게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게다가 그날은 우리 중대 경기도 없었기에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김병장 옆에서 연신 아부를 떨며 신나게 놀고 있는데 내무실 문이 열렸다.
"축구 부심 볼 인원! 행정반으로 오시랍니다아!"
"니가 가면 되잖아! 이 밥탱아! 암튼 요즘 애들은 개념이 없어요!"
"상병층으로 오시랍니다아!"
"............."
잽싸게 주위를 둘러보니, 적합한 인원이 없었다. 죄다 근무를 나갔거나 휴가, 파견, 그것도 아니면 축구의 축자도 모르는 도움 안되는 녀석들 뿐이었다. 나랑 재밌게 놀던 김병장은 발길질을 하며 빨리 가라고 재촉하였다. 역시 군대에서 믿을 인간은 하나도 없다.
"그래! 기왕하는 거 모레노 주심처럼 제대로 하자!"
활동복으로 갈아입고 연병장으로 나가니, 6중대와 본부중대가 시합준비를 하고 있었다. 참고로 본부중대는 모두 전투병이 아니라 행정병같은 특기병 위주로 편성되어있기에 병력의 수도 매우 적고, 전투력도 다소 약하였다. 그러나 대신 대대장과 대대 참모진들이 있기에 무시할 수만은 없는 전력이었다.
오른쪽 그라운드에 위치하고 부심을 보기 시작하였다. 전반전은 6중대가 공격하는 방향이었다. 축구실력은 뛰어나지 않지만, 위닝, 피파, FM으로 다져진 나이기에 전술 이론만은 완벽하였다. 실제 룰이 그대로 적용되기에 당연히 오프사이드도 존재한다. 아니나다를까? 6중대의 기막힌 스루패스가 들어가더니 골키퍼와 1:1 찬스가 찾아왔지만. 나의 시야에 딱 포착되었다.
"삐이이이이! 오프사이드!"
"아나 가츠아저씨! 뭐가 그리 꼼꼼해! 여기 프로경기 아니다! 살살해!"
그러나 기왕 부심을 보기로 한 거,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하고 싶었다. 게다가 병사들에게 있어 제일 중요한 포상휴가가 걸려있기 때문에 나의 책임감은 더욱 막중하였다.
"다들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도 열심히 해야지!"
어느덧 전반전이 끝났다. 6중대의 공격이 상당히 매서웠지만, 본부중대도 만만치 않았다. 후반전이 시작되면서 본부중대의 선수교체가 이루어졌다. 드디어 대대장이 투입되었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축구실력을 뽐내셨기에 더욱 기대되었다.
"대대장님 파이팅!"
"무조건 대대장님께 연결해야되!"
하지만 대대장의 투입으로 본부중대는 오로지 충성축구 모드로 바뀌었다. 모든 공은 대대장에게로 집중되기 시작하였다. 그순간 대대장에게 결정적인 패스가 들어갔고, 결정적인 찬스를 맞이하였다. 하지만 나는 똑똑히 보았다. 패스를 받는 순간, 대대장의 위치는 분명히 오프사이드였다. 물론, 나 뿐만 아니라 6중대 인원들도 보았고, 주심도 보았다.
"가츠아저씨! 오프사이드잖아! 뭐해요!"
주심도 아니 연병장에 있는 전 병력이 내 손에 들린 깃발만을 바라보았다. 짧은 찰나였지만, 나는 똑똑히 보았다. 꿀패스를 받고 웃으며 골대를 향해 질주하는 대대장의 표정을 말이다. 나는 차마 그의 질주를 막을 수 없었다. 아니 막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깃발은 올라가지 않았고, 묵묵히 플레이를 진행시켰다.
나를 죽일 듯이 째려보는 6중대 병력들이 두렵기도 하였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지금 골대를 향해 달려가는 중년의 아저씨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신 그 자체였다.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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