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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천사와 악마 上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나는 조상병이 건네는 구원의 손길을 덥석 잡았다. 비로소 여자친구의 여동생을 두고, 티격태격거리고 있는 악마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조상병은 나에게 별다른 질문도 하지 않았고, 그저 교회를 향해 발길을 재촉하였다. 이틀동안 자대생활을 하면서 조상병은 내가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낯익긴 한데, 기억이 안나..."
드디어 나의 정신적 안식처인 교회가 보였다. 사실 중학교 이후로는 거의 가지 않았다. 입대하고서야, 매주 꼬박꼬박 가는 셈이다. 그래도 교회에 있으면, 어린 시절의 추억과 조교나 고참들의 터치가 없기에 참 편안하고 좋았다.
입구에는 같은 분대원인 군종병 김일병이 우리들을 반겨 주었다. 나를 보더니 해맑게 웃으며 등을 두들겨 주었다. 곳곳에서 많은 병사들이 오고 있었기에, 우리는 자리를 잡기 위해 서둘러 입장하였다. 조상병은 행여 놓칠세라, 나의 손을 꼭 잡고는 데리고 다녔다. 그의 손은 참으로 따뜻하였다.
"여기 앉을까?"
"네! 감사합니다!"
"우리 가츠~♥ 음료수 먹을래?"
"아닙니다! 괜찮습니다아!"
"데끼! 이등병이 거절하게 되어 있나?"
"아닙니다! 캔커피 마시겠습니다!"
교회 입구에는 음료수 자판기가 있었다. 훈련병일때는 그저 바라만 보는 그림의 떡이었는데, 비로소 군인이 된 기분이었다. 천사같은 조상병은 음료수 자판기로 다가가서 음료수를 구입하고 있었다. 그의 뒷모습을 보니 마치 등에 날개가 있는 거 같았다. 조상병이라면 나의 군생활을 걸어도 될 것만 같았다.
잠시후, 그는 자리로 돌아오더니, 캔커피를 손수 따서 나에게 건네 주었다. 캔커피의 표면에는 시원한 서리가 맺혀 있었다. 나는 단숨에 캔커피를 들이켰다. 시원한 커피가 목줄기를 타고 넘어갔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면서 살 것 같았다. 문득 앞자리에 앉아 있는 심이병과 눈이 마주 쳤다. 한달 선임인 팀킬 심이병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러워 하는 건가?"
나는 그의 눈빛을 읽을 수 없었다. 그저 음료수를 먹고 있는 내가 부러운가 보다~! 라고 생각하였다. 조상병은 내 옆에 바짝 당겨 앉더니 어깨 동무를 하였다. 그리고는 이것 저것 질문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질문과는 달랐다.
"가츠 몇살이야?"
"23살입니다!"
"나랑 동갑이네! 완전 반가워! 학교다니다가 왔어?"
"네 그렇습니다!"
"어디? 아 중국에 있다가 왔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지난 이틀동안, 받은 질문의 첫마디는, 항상 여자친구 있냐? 였는데, 조상병은 역시 격이 달랐다. 그는 나의 고향, 가족관계 등 제대로 된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점점, 그의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있었다. 또한, 그는 언변이 매우 뛰어났다. 자신의 이야기도 많이 해주면서 대화다운 대화를 주도하고 있었다.
얼마나 대화를 했을까? 조상병에 대한 정보도 많이 알 수 있었다. 처음으로 마음이 통하는 고참을 만난 기분이었다. 조상병은 나에게 중국에서 있었던, 에피소드가 없냐고 물어 보았다.
입대전, 대학 동기들끼리 군대에서 말할 재밌는 이야기들을 미리 연습하고 왔다. 내가 있던 곳은 하얼빈이었는데, 러시아 국경이랑 무지 가까웠다. 어느정도 가깝냐면, 기차로 12시간 정도 달리면 된다. 기차타고 12시간이 뭐가 가깝냐고? 중국에서 이정도 거리는 서울에서 인천가는 기분이다.
고로, 우리학교에는 러시아 유학생들이 많았다. 하얼빈이라는 도시 자체에 러시아 친구들이 많았다. 언제나 술집, 나이트를 가면 빛나는 러시아 누나들이 놀고 있었다. 나는 조상병에게 러시아 누나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조상병은 연신 신기해하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 완전 재밌구나!"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내 옆에만 붙어 있어! 마구마구 사랑해주마!"
동기들과 특훈한 보람이 있었다. 조상병은 이미 나에게 완전 매료되었고, 나는 든든한 우군을 한명 만들었다. 종교행사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버렸고, 조상병과 나는 다정하게 손을 잡고, 부대로 복귀하였다.
갓 상병으로 진급한, 조상병은 전역까지 1년이나 남았다. 이제 그와 함께 1년동안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이다. 그가 전역할 때쯤이면, 나도 엄연한 상병이다. 마음같아서는 내가 병장 달 때까지 함께하였으면 좋겠다. 벌써부터 행복한 군생활이 눈 앞에 펼쳐지는 거 같았다.
그날 저녁, 점호 청소시간이 되었다. 나는 고참들의 지시를 받으며, 연신 열심히 뛰어다니며 청소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걸레를 깨끗이 빨아서, 침상을 닦기 위해 내무실로 뛰어가다가 누군가 와 부딪쳤다. 막내인 나와 부딪힌 사람은 분명히 고참일 것이다. 나는 화들짝 놀라서 바라보니, 조상병이었다.
"다행이다~! 천사같은 조상병님이구나~!"
다소 심하게 부딪힌 조상병은 잠깐 기우뚱 중심을 잡고는 나를 보았다. 나는 다소 안심하며 죄송하다고 말하였다. 그런데 조상병의 눈빛이 이상하였다. 화장실 조명에 반사되는 조상병의 안경테사이로 보이는 조상병의 눈동자, 낮에 교회에서 보던 그의 눈동자가 아니었다.
"야이씨 미친 색히! 정신 안 차려? 완전 개념을 상실 했구만!"
"죄송합니다!"
"죄송? 죄송하면 다야? 아나 이거 눈알을 확 뽑아버려! 어! 어?"
"죄송합니다!"
"이거 이등병이 완전 쳐빠져가지고! 요즘 군대 편하지? 장난같지? 아주 캠프를 왔구만!"
"죄송합니다!"
내 눈앞에 보이는 조상병은 악마 그 자체였다. 나는 화장실 벽에 바짝 붙은 채로 연신 조상병으로부터 기나긴 갈굼을 온 몸으로 받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낮에 보았던 조상병의 천사같은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모든 것이 조작되었던 것이다. 조상병은 신나게 나를 갈구고는 내무실로 돌아갔다.
화장실 바닥에는 미처 비상하지도 못하고 추락해버린 불쌍한 이등병이 있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화장실 형광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반대편에서 걸레를 빨고 있던, 심이병이 나에게로 다가오더니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조상병은 싸이코야! 이중인격자라구!"
이미 한달 고참인, 심이병과 김이병, 나보다 3주 먼저 자대배치를 받은 동기 박이병까지 조상병의 먹잇감이 되었다. 그제서야 교회에서 나를 바라보던 심이병의 눈빛을 알 수 있었다. 부러워 하는게 아니라 불쌍해 하였는 거였다.
그가 전역할려면, 아직 1년이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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