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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상병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6년 2월, 한창 사회는 WBC대회로 시끌벅적할 때였다. 군대라고 예외는 없었다. 비록 본방사수를 할 수 없었지만, 항상 스포츠뉴스나 하일라이트 빼놓지 않고 시청하였다. 특히, 야구라면 사족을 못쓰는 최병장은 항상 내무실에서 투구폼을 따라하며 우리들을 웃겨 주었다.
수요일 오후, 전투체육시간이 다. 간부들은 다음주에 예정된 훈련때문에 연신 작전회의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통제하는 간부가 없자, 우리들은 가볍게 3Km 구보를 한 뒤 자유시간이었다. 날씨는 제법 쌀쌀하였지만, 상병인 나는 대놓고 내무실로 들어갈 수 없었다.
평소 같으면 간부들의 통제하에 다채로운 게임이나 축구를 할텐데, 막상 없으니 허전하였다. 나는 벤치에 앉아서 담배를 피며, 연병장의 전경을 바라 보았다. 축구공을 가지고 축구를 하는 병사들, 한 편에서는 농구장에서 농구를, 또 한편에서는 미니축구를 제각각 하고 싶은 운동들을 하고 있었다.
"음... 딱히 땡기는 게 없어! 따분해!"
이미 왕고들은 내무실에 들어가서 시체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도 슬슬 눈치를 보며 내무실로 조금씩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찰나, 최병장이 웃으면서 뛰어오고 있다. 그 뒤로는 김이병과 이이병이 무언가를 손에 가득 들고 있었다. 최병장은 내 앞으로 오더니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였다.
"가츠야! 창고에서 글러브와 배트를 찾았어!"
"오오! 브라보입니다!"
"야구 할 사람 다 모여!"
"와아아아아~!"
철저한 계급사회에 맞춰서 A급 글러브부터 하나씩 착용하고는 그럴싸하게 폼을 잡았다. 힘들게 가져온 김이병과 이이병은 빛나는 맨손이다. 새삼 우울해 할 필요없다. 원래 그런거다. 사회에서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아!
나는 테니스 공을 들고 투수마운드에 올랐다. 181cm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로 포수의 미트에 내리찍어 꽂아주마! 나는 있는 힘껏 마인드업 하여 던질려고 하는 찰나, 최병장이 나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나와!"
"........."
새삼 우울해 할 필요없다. 나는 멋적게 웃으며 옆으로 비켜섰다. 다소 땅딸한 몸집의 최병장은 그동안 연마한 투구동작을 선보이며 포수에게 공을 뿌렸다. 이건 뭐 폼도 엉성하고, 공의 제구력도 엉망이었다. 옆에 있던 동기 박상병이 냉큼 공을 잡더니 가볐게 던졌다.
박상병의 공은 창용불패의 용직구처럼 쏜살같이 포스의 미트를 향해 꽂혔다. 나와 최병장은 그런 박상병을 보며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이녀석에 이런 능력이 있다니, 새삼 놀라웠다. 그러나 어김없이 최병장은 박상병을 투수 마운드에서 쫓아 내었다.
나는 배트를 들고, 타자석으로 이동하였다. 최병장은 나를 보며 씨익 웃더니 가소롭단듯이 공을 던졌다. 그러나 그의 공은 매섭지 못하였다.
까아앙~♪
대충 휘둘렀는데, 정타로 맞더니 연병장 깊숙이 날라가버렸다. 그러고보니 고등학교때부터 학교 옆에 있는 타격연습장에서 틈틈이 연습한 성과가 있나보다. 나는 더욱 거만해진 자세로 배트를 붕붕 돌리며 다시 타석에 섰다.
"나와!"
"........."
최병장은 나에게로 오더니 배트를 뺏었다. 그렇게 우리들의 몸풀기가 끝난 뒤, 본격적인 게임을 하기 위해 편을 갈랐다. 한창 편을 가르고 있는데, 연병장 바로 왼쪽 편에 위치한 지휘통제실에서 6중대 소대장이 출입문을 열고 나오더니. 6중대 행정반으로 총알같이 뛰어갔다. 뭔가 회의 준비에 미흡한 부분이 있나보다. 문틈으로 살짝 보이는 대대장의 표정은 자뭇 심각해보였다. 이거 또 대대 분위기 다운되는가 보군.
어쨌든, 그건 나중에 생각할 문제이고, 우리는 재밌게 야구를 하면 된다. 어차피 투수는 병장들이 하니깐, 나는 그나마 수비하기 편한 좌익수를 하기로 하였다. 프로선수들도 아니고, 오합지졸인 우리들은 쳐봤자, 파울이나 땅볼이다. 게다가 좌익수 쪽은 지휘통제실 바로 앞 화단이라서 수비할 공간도 매우 적다. 가만히 서있기만 하면 되는 곳이다.
"플레이볼!"
우리편 투수는 나의 듬직한 후원자, 김병장이었다. 축구는 나만큼이나 지지리도 못하는데, 꼴에 대구 산다고 야구는 좋아라 하였다. 자기 말로는 느린 커브를 던지다고 하는데, 아무리봐도 그냥 힘이 없어서 자연스레 떨어지는 아리랑볼이었다. 근데 신기하게 그게 또 통하고 있다. 아낰ㅋㅋㅋㅋㅋ
타자들이 좀처럼 치지 못하자, 나는 경기에 집중할 수 없었고, 지휘통제실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간부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대대장은 무언가 마음에 안드는지 지휘봉으로 연신 탁자를 두들기며 질책하고 있었다.
"하아 회의 끝나고, 우리까지 피곤해지겠군~!"
나는 걱정을 하며, 다시 타석을 바라 보았다. 타석에는 3번타자 박상병이 들어 서고 있었다. 저녀석은 왠지 칠 거 같애. 나는 글러브를 고쳐 잡고는 나름 수비자세를 취하였다. 김병장은 어김없이 느릿느릿한 아리랑볼을 박상병에게 던졌다.
아니나 다를까? 박상병의 배트는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공을 정확히 맞췄다. 잘 맞은 타구는 3루수를 넘어 내 쪽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근데, 너무 잘 맞아서일까? 타구는 빠르고 낮게 쭈욱 뻗어 나가고 있었다. 나는 공을 보며 연신 달리고 있는데, 이미 타구는 내가 잡기에는 불가능 하였다.
지휘통제실과 연병장 사이에는 배수로가 있기 때문에 자칫 뛰어가다가 빠지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기에 나는 속도를 줄이고 제자리에 섰다. 사람은 모름지기 아니다 싶으면 일찍 포기해야 된다. 나는 배수로 앞에서 날아가는 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은 떨어질 생각도 없이 계속 지휘통제실 쪽으로 날아가더니, 알루미늄으로 된 출입문 하단을 통타하였다.
콰아아앙~♪
순간, 나는 보았다. 출입문에 맞은 공의 엄청난 소리에 엄숙하게 회의 중이던 간부들이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말이다. 그리고 화가 난 작전장교가 출입문 쪽으로 나오고 있었다.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출입문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뭐어어야? 누구야!"
나는 작전장교 앞으로 뛰어갔다. 따지고 보면, 내가 친 것도 아닌데 은근히 억울하였다. 박상병이 원망스러워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 순간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렸다. 같이 야구를 하던 인원들은 어느새 근처에서 축구를 하던 무리에 합류하여 축구하는 척을 하고 있었다. 김이병과 이이병만이 빛나는 맨손으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결국, 나는 혼자 공놀이를 하다가 앙심을 품고, 지휘통제실을 테러한 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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