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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포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동생이 휴가를 나왔다. 오랫만에 보는 얼굴이라 무척 반가웠다. 특히, 혹한의 추위를 고스란히 군대에서 버티고 나와서인지 얼굴이 핼쑥하였다.
"죽어라 눈만 치우고 왔어!"
그나마 전투보직이 아니고, 경리병이라서 비교적 빵실하지만 어쨌든 군대에서 짬밥을 먹는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동생은 오자마자 자신의 무용담을 펼쳐놓기 바쁘다. 누가 보면 남극에 있는 세종과학기지에서 근무하는 줄 알겠다. 어디 행군도 안하는 녀석이 감히 소총수 출신인 나에게 징징거리다니, 살포시 날아서 드랍킥을 먹여주었다.
"아나! 맛있는 것도 못 사줄 망정! 하나뿐인 동생을 때리다니!"
"사줄게! 일단 마저 때리고! 퍽퍽!"
"살려줘!"
"그래 뭐 먹고 싶노?"
"한우!"
"야! 지금 구제역때문에 난리인데 뭔 한우야! 절대 비싸서 그런게 아니야! 구제역 때문이야!"
"형! 50도 이상에서는 바이러스가 모두 사멸된다구!"
"우린 안 익혀서 먹잖아!"
"게다가 구제역은 말굽있는 동물에게만 감염된다구! 사람에게는 절대 감염 안돼! 인수공통전염병 몰라?"
"뭥미? 아예 한우 먹을려고 작정을 하고 왔구나!"
"그리고 지금 가야지! 서비스가 좋다구! 이제 복귀하면 언제 볼 지도 모르는데! 너무해!"
"호오! 이 녀석 군대가더니 설득력이 늘었어! 그럴 듯 한데?"
하긴, 나도 한우를 먹은 지 오래되었다. 동생도 실컷 눈만 치우느라 고생이 많을텐데, 그깟 한우! 먹으러 가기로 하였다.
어느새 동참하신 부모님, TV를 보시면 좀처럼 움직이기 귀찮아 하시는 아버지께서 어느새 현관문 앞에서 손짓하고 계신다. 어머니는 고기 먹으러 가는데, 마치 선보러 가는 마냥, 한껏 꾸미시느라 바빴다. 오랫만에 가족이 다 모여서 외식하는 거라 그런지 다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였다.
"선수 입장!"
동생을 필두로 위풍당당하게 고깃집으로 들어갔다. 예상 외로 방마다 손님들이 많았다. 역시 한우는 끊을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나보다. 자리를 잡고 부리나케 주문을 하였다.
"여기 갈비살 주세요!"
"형! 국산이지?"
"아나! 너 옷은 맨날 수입메이커 타령하면서, 고기는 왜 국산 타령이야! 그래 국산이다 많이 먹어라! 어흐흑흑ㅜㅜ"
"브라보!"
엊그제, 입대한 거 같은데 벌써 소대왕고라는 동생, 내 눈에는 언제나 챙겨줘야 할 막내처럼 보이는데 말이다. 유난히 군대가기 싫어해서 온 가족이 제발 가라고 강제로 입대 시켰는데, 어느새 전역을 6개월 앞두고 있다. 마냥 신기할 따름이다.
2009/08/03 - [가츠의 보물창고] - 육군에서 받은 포상휴가증과 넷북
"고기! 고기! 고기!"
"아나 좀 기다려!"
"형!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눈 치우면서 아니 비질하면서 마치 고기 뒤집는다고 상상했단 말이야! 형이 내 맘 알아? 아냐구?"
".............. 어쩔? 싸우자는거냐?"
"아니 그냥 그렇다고! 고기! 고기! 고기!
"그렇지! 바로 이 소리야! 고기 굽는 소리!"
고기가 나오자, 동생은 기다렸다는 듯이 숯불 위에 고기를 올렸다. 그리고 딱 한번 뒤집어서 먹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점 한점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쉴새없이 홍알거리던 그의 입은 지그시 꾹 다문 채, 고기와 결전을 벌이고 있었다.
"바로 지금이야!"
최고의 타이밍을 포착한 동생은 무림고수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고기를 향해 젓가락을 놀렸다. 이에 나도 질세라, 단전에 기를 모으고 젓가락을 내질렀다.
그렇게 한동안 말 없이 우리들은 묵묵이 먹기만 하였다. 맛있는 한우 앞에서는 휴가 나온 군인도, 민간인도 없었다. 둘이 먹다가 둘 다 죽어도 모를 맛이었다.
동생은 입가심으로 육회비빔밥까지 먹고나서야 만족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동생의 눈은 초승달처럼 연신 웃고 있었다.
"끄억! 이제야 살 거 같다!"
"그래 이제 복귀하면 또 한동안 먹을텐데! 후훗!"
"아? 내가 말 안했나?"
"응?"
"나 포상 3개에 정기 2개 남았어! 매달 나와도 빠듯할 거 같은데?"
"●█▀█▄"
낚였다! 이 녀석 분명히 고깃집에 올 때만 해도 다시는 못 볼거처럼 말했는데 말이다. 그제서야 진실을 말한 동생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잊지 않고 내 손에 계산서를 꼬옥 쥐어주는 센스를 발휘하고는 유유히 가게문을 나섰다.
"형! 다음 휴가 때는 일식으로 하자! 앜ㅋㅋㅋㅋㅋㅋㅋ"
추천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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