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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현재 기온 영하 19도! 전원 방한대책 확실하게 강구할 수 있도록!"
영하 19도라고? 웃기지마! 체감온도는 이미 영하 30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반경 수킬로 이내에 2층짜리 건물은 전무하였다. 오로지 야생 그 자체인 강원도의 이름 모를 야산, 그 곳에서 우리는 맨몸으로 하룻밤을 꼬박 보내고 있었다. 코로 숨쉬는 데도 입김처럼 김이 나온다. 정말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옆에 있던 후임이 너무 조용하다. 이대로 얼어버린 것일까? 고개를 돌려 확인하고 싶었으나, 움직일 힘이 없었다. 그저 몸을 덮은 모포만 손에 꼭 쥐고 있었다.
"야! 말 좀 해봐! 살아 있는 거야?"
"으으윽! 아직은 죽지 않았습니다!"
"죽지마라! 얼어 죽는 건 너무 슬픈 일이야!"
"다시 녹이면 살 수 있지 않을까요? 데몰리션맨처럼 말입니다!"
후임의 말을 들으니, 초등학교 시절 보았던 데몰리션맨이 생각났다.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실버스터 스탤론, 웨슬리 스나입스, 산드라 블록이 나오는 작품이었다. 극중에서 주인공은 냉동감옥에 수감된다. 말 그대로 얼려버린다. 그리고 36년 후에 해동되어 다시 싸우는 내용이었다.
"그건 영화에서 가능하다구! 넌 그냥 죽어!"
"그렇겠죠?"
"게다가 나중에 널 녹인다고 해도, 군생활은 계속 해야지! 막내가 니 선임이 되어 있을지도 후훗!"
"............"
그렇게 우리는 되도 안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잠들면 정말 얼어버릴지도 모르니 말이다. 새벽이 되면서 추위는 절정을 향했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상황이 종료된다는 사실에 버티고 또 버텼다. 그렇게 훈련의 마지막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몸에서 열을 내기 위해 열심히 열량을 소비한 탓일까? 무척 배가 고팠다. 지난 밤 받은 전투식량을 마저 먹을려고 꺼냈는데, 이미 꽁꽁 얼어있었다. 도저히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침은 상황이 종료되어야 먹을텐데 말이다. 그순간, 여기저기서 무전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곧 이어 다급한 소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원 방독면 착용하고 아래로 집결해!"
뭥미? 화생방 상황이라도 걸린 건가? 우리는 부랴부랴 방독면을 착용하였다. 그리고는 호 안에 널부려져 있는 짐을 군장에 쑤셔넣기 시작하였다. 어찌되었건 좋다. 이 곳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아니 몸을 움직일 수만 있다면 말이다. 군장을 메고 조심스레 산 아래로 내려갔다. 방독면을 착용하니 좀처럼 앞이 보이지 않았다. 입김때문에 방독면은 금새 뿌옇게 흐려졌다. 분명히 흐림방지포라는 부수기재가 있는데, 그걸 발라도 별 소용이 없었다.
어렵사리 산 아래로 내려가니 우리를 태우고 갈 육공트럭이 대기하고 있었다. 소대장은 연신 다급한 목소리로 빨리 차량에 올라타라고 하였다. 마지막 소대원까지 무사히 탑승하자, 육공트럭은 굉음을 내며 신나게 달려나갔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낸들 아냐!"
소대장은 앞좌석에 탑승하고 있기 때문에 물어볼 수도 없었다. 방독면을 쓴 채, 한참을 달려 낯선 군부대 연병장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 가니 화생방 제독차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소대는 화생방 전사상자 훈련을 실시하게 된 것이었다. 그 곳에서 적의 화생방 공격시 우리의 신속한 대응을 점검하고 평가하는 것이었다. 화생방에 관한 글은 이미 일전에 몇차례 소개하였기에 다음 내용을 참고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09/09/28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화생방훈련 上편
2009/09/29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화생방훈련 下편
2009/09/14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아트로핀
오늘은 방독면 착용은 기본이고, 보호의까지 착용하는 FM평가였다. 그리고 이어서 오염된 부위를 제독하는 거 까지 평가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크나큰 문제가 생겼다. 보호의를 입는 건 사실, 번거롭기는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제독의 마지막 단계는 모든 옷을 벗고, 샤워를 해야된다.
"이 날씨에 알몸으로 샤워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야!"
나의 두뇌는 절대적으로 하면 안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나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나에게는 K-3 기관총이 있지 않은가? 보통 이런 시범식 교육을 할 때는 기관총사수는 주로 멀리 떨어져서 경계를 한다. 적의 침입을 효과적으로 경계해야 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소대장이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질문을 하였다.
"이따가 평가할 때 샤워하고 싶은 사람?"
"..........(당신이나 하라구!)"
"야 너희들 훈련나와서 세수도 한번 안했잖아! 이 참에 한번 씻어!"
"..........(당신도 안 씼었잖아!)"
"혹시 알어? 포상휴가 줄지도! 게다가 온수로 한데!"
"오오오오!"
순진한 일, 이등병들은 소대장의 유혹에 쉽사리 넘어갔다. 너도나도 손을 들고 하고 싶다고 하였다. 포상휴가라는 말에 순간, 흔들렸지만 나는 절대 속지 않을 거다. 그렇게 포상휴가 받았으면, 벌써 열번은 더 나갔을 거다. 게다가 온수라니? 가당키나 할 일인가? 아니 온수를 받아 가지고 왔다고 해도, 오는 동안 차갑게 다 식었을 것이다.
"쯧쯧! 불나방 같은 녀석들!"
그렇게 어리석은 녀석들을 뒤로 한 채, 나는 K-3를 들고 경계를 하러 떠났다. 그러고보니 이 곳은 공항같기도 하고, 연병장 전체가 포장이 되어 있었다. 격납고도 보이는 거 같았고, 아무튼 은엄폐할 곳이 딱히 없었다. 결국 좀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군용트럭 앞 타이어 쪽에 엎드리고는 경계하는 자세를 잡았다.
뒤 쪽에서는 평가가 시작되었고, 후임들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연병장을 울려퍼졌다. 이런 날씨에 알몸으로 샤워를 하다니, 포상휴가 안가고 말지, 난 절대 못한다. 차가운 아스팔트위에 몸을 엎드리고 있으니 냉기가 제대로 엄습해왔다. 게다가 새벽부터 허기진 배는 연신 배고프다고 꼬르륵 거리고 있었다.
"얼레! 가츠 아이가!"
"어? 김상병!"
트럭 옆에 엎드려 있었는데, 조수석에서 누군가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는 나의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들어 확인해보니, 우리 중대 운전병인 김상병이었다. 그는 나와 동기였고, 나처럼 늦게 입대한 탓에 나이마저도 같았다. 하지만 운전병이라서 중대만 같이 생활하였지, 낮에는 수송부로 가서 생활한다. 게다가 훈련 때는 아예 만날 일이 없었다.
여기서 나의 운전병 예찬론이 시작된다. 예전부터 누누이 말했지만, 나는 입대할 당시 정말 운전병이 되고 싶었다. 평소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였지만, 운전병은 메리트가 참 많았다. 결정적으로 행군을 안한다. 산을 올라가지 않는다. 이거 하나면 끝나겠지만, 좀 더 설명해보겠다.
차량이 있기 때문에 먹을 것을 마음껏 실어가지고 훈련에 임할 수 있다. 사격도 안하고, 교육훈련도 안하고, 작업도 안한다. 그저 자신의 차량 관리만 잘하면 된다. 게다가 평소 운행을 나가면 부대 밖으로 나갈 일이 많다. 자연스레 음식점이나 분식점, 만화방, 비디오방 등을 들릴 수 있다. 게다가 전역하면 멋진 운전 스킬과 보험혜택까지 누릴 수 있다. 물론, 좋은 점만 이야기 했지만, 어쨌든 소총수보다는 훨씬 좋았다.
그날따라 김상병이 무척이나 부러워보였다. 육공트럭 안에서 지루하단듯이 하품을 하며 나를 보고 있었다. 안면위장도 안한 뽀얀 피부가 나를 보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나는 지난 몇일간 양치질도 못하고, 얼굴은 안면위장으로 범벅이 되어 꼬질꼬질한데 말이다. 왠지 같은 군인인데도 뭔가 심하게 달라 보였다.
"우리 가츠! 고생이 많타! 앜ㅋㅋㅋㅋㅋㅋ"
"닥쳐! 먹을 거나 내놔!"
"옛다!"
"오오! 마가렛트다! 음료수도 줘!"
그렇게 나는 몰래 김상병으로부터 과자와 음료수를 얻어 먹었다. 정말 그 때 먹은 마가렛트와 사이다의 맛은 평생 잊을 수 없을만큼 달콤하고 맛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군대에서는 동기가 최고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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