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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화생방훈련 上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화생방 교장 앞에 집결한 10중대 훈련병들, 하나같이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우리들 앞에서는 조교가 연신 화생방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흔히 화생방이라고 하면 가스 먹고 나오는게 전부인 줄 알지만, 은근히 알아야 되는게 많은 과목이다. 화학의(chemical), 생물학의(biological), 방사선학의(radiological) 또는 방사능의(radioactive)의 머리글자를 따서 화생방이라고 지칭한다. 추가로 핵의(Nuclear)도 포함된다.
일반 무기와는 다르게 대량 ·무차별살상무기이고 군인, 민간인 차원을 떠나서 살아있는 생명체를 가리지 않고 피해를 주기 때문에 비인도적인 무차별 학살이다. 게다가 현재 북한군이 보유하고 있는 생화학무기 중 생물무기는 탄저균, 천연두, 콜레라 등 13여종의 균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화학무기는 신경성, 수포성, 혈액성 등 10여종 이상의 유독성 작용제를 6개 저장시설에 2천500~5천톤을 저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백킬로만으로도 서울 전 인구를 몰살시킬 수 있으니,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에 군인들에게 화생방교육은 그 어떤 훈련보다도 중요한 것이다. 훈련병들은 가스의 고통을 몸소 체험하여 그 위험성을 인식하고 비상상황 발생시 당황하지 않게 해준다.
"적의 핵폭탄 공격시 대응자세를 알려주겠다! 따라할 수 있도록!"
우리들은 조교의 시범에 맞춰서 위와 같은 자세를 취하며 생존방법을 하나 하나 배워나갔다. 손으로 귀를 막고, 최대한 지면에 낮게 엎드려서 눈을 감고, 입을 살짝 벌리라고 하였다. 이때 중요한 것은 상체는 지면에 완전히 밀착하지 말고, 살짝 띄운채로 유지하라고 하였다. 이유인즉슨, 핵폭발시 지면의 엄청난 파동으로 밀착시 내부장기의 손상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츠야! 상체 띄우니깐 은근히 힘든데!"
"이거 가혹행위아냐?"
"호오 나중에 써먹어야지!"
"당하지나 마셈! ㅋㅋㅋ"
간단한 교육이 끝나고, 방독면 착용법을 본격적으로 실습하기 시작하였다. 보호두건을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9초가 합격이었다. 그러나 처음 착용하는 우리들은 어리버리 되었고, 특히 안경을 쓰는 나에게는 무척이나 불편하였다. 철저한 반복숙달을 하는 수 밖에 없었다.
제시간에 성공하지 못하면 어김없이 이어지는 얼차려로 인해 우리는 가스실에 들어가기도 전에 녹초가 되었다. 그러나 군대에서 포기란 없다. 될 때까지 하다보면 결국에는 9초만에 착용하고 여유를 부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누누이 강조하였던 거지만, 어릴때부터 군에서 공부를 시작하여 서울대에 합격하면 전역시켜준다고 한다면, 서울대의 남자들은 모두 군에서 온 사람들로 채워질 것이다.
"진짜 이렇게 공부했으면 나 서울대 갔다!"
"글쎄? 넌 군에서 말뚝 박을거 같은데?"
".........."
어느정도 숙달이 되었다고 판단한 교관은 가스실습을 준비하라고 지시하였다. 조교들은 가스실로 들어가서 마지막 점검을 하였고, 우리들은 긴장한 상태로 정렬하였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가스를 마신다. 기절하는 건 아닐까? 온갖 걱정이 밀려왔다.
"지금부터 가스체험을 하겠다. 가스실이 오래되어 붕괴 위험이 있으니 각별히 유의하도록 한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우리 기수가 가스실에서의 마지막 실습이었다. 다음 기수부터는 붕괴 위험이 있어서 그냥 야외에서 체험하였다고 하였다. 후임에게 그 사실을 듣고는 얼마나 아쉬워 했는지 모른다. 역시 군대는 줄을 잘 서야된다.
"1조 입실!"
차라리 먼저 하면 좋을텐데, 우리 조의 순서는 3조였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1조 인원들은 조교를 따라 순순히 가스실로 입장하였다. 오히려 지켜보는 우리들이 더 초조하였다. 1분... 2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는데도 가스실은 조용하였다. 아니 너무 조용하다 못해 적막감마저 흘렀다.
"이거 이상한데? 너무 조용한 거 아냐?"
"설...설마 다 죽은 건 아니겠지?"
얼마후, 출입문이 열리더니 1조 인원들이 뛰어나왔다.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는데, 행동을 보아 매우 널널해 보였다. 우리가 생각하던 그런 모습이 아니었다. 이거 설마? 선배들이 말한 화생방 훈련도 모두 허풍이었단 말인가? 아무리봐도 고통스러워 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몇몇은 웃고 있었다.
이제서야 안심이 된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밖에서 지켜보던 교관이 가스실로 다가 가더니 내부를 확인하였다. 그리고는 내부에 있는 교관에게 큰소리 호통을 치기 시작하였다. 아마 내부 교관은 신입소위였는데, 처음이었나 보다.
"야 3소대장! 지금 장난하냐? 여기가 무슨 찜찔방이야? 어! 팍팍 태워!"
그리고 2조 인원들이 투입되었다. 정확히 10초후, 괴성이 들리기 시작하였다. 붕괴 위험이 있다는 가스실은 육안으로 보아도 흔들리고 있는 거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탈출하는 인원들이 속출하기 시작하였다. 문을 박차고 기어나와서는 그자리에 털썩 쓰러졌다. 그러나 어김없이 조교가 다시 끄집고 들어갔다. 살려달라는 훈련병의 메아리만 우리의 귀를 맴돌고 있을 뿐이다. 이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우리들은 모두 할 말을 잃었다. 공포 그 자체였다!
"잘 들어! 지금 이시간부터 가스실에서 무단으로 나오면 그 조는 전원 다시 실습한다!"
아나! 빌어먹을 놈의 연대책임이 발동되는 순간이다. 그나저나 신입소위는 얼마나 가스를 터뜨려였는지 출입문 틈새로 뿌연 연기가 쉴새없이 나오고 있었다.
"3조 입실 준비!"
"준비!"
"방독면 착용!"
"착용!"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가스실에 가까워 질수록 절규하는 인원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온다. 곧이어 반대쪽 문으로 그들은 자유를 찾아 훨훨 날아갔고, 이제 우리가 숨쉴 자유를 박탈 당할 차례였다.
입장할 때는 방독면을 착용하고 들어간다. 그래야지 건물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고, 전원 무사히 입장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니면 처음 입장하는 훈련병들은 나머지 인원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다가 죽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입장!"
출입문이 열리자, 뿌연 연기가 밖으로 새어 나온다. 가스실의 내부는 어두웠고,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교관과 조교는 음산한 목소리로 빨리 정렬하라고 재촉하였다. 나의 훈련병의 어깨를 잡고는 가스실 깊숙히 들어갔다. 입장이 완료되자 출구는 굳게 닫혔다. 다행히 걱정하였던 방독면은 무사히 작동되는 거 같았다. 약간 매케한 느낌이 났지만 호흡하기에 불편한 정도는 아니었다.
"반갑다! 지금부터 적 화생방 공격에 대비하여 가스체험을 실시하겠다! 전원 방독면 해체!"
"빨리 빨리 벗습니다아! 눈치보지 않습니다아! 신속히 벗습니다!"
왠지 신속히 벗으면 손해일 거 같았다. 최대한 주섬주섬 어리버리 까는 척하면서 천천히 벗었다. 이미 옆에 있던 60번 훈련병은 자기 목을 부여잡고는 괴로워 하고 있었다. 으음? 괜찮은 거 같은 커헉! 시작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가스는 나의 피부를 에워싸더니 숨을 못 쉬게 하였다.
누구나 한번쯤은 지인들과 오래 숨쉬지 않기 놀이를 해보았을 것이다. 그 놀이에서 최대한 버티고 버텨서 다시 숨을 쉴려고 내뱉았는데 공기가 없다면? 거기다가 목이 따갑고 쓰리다면? 바로 그 기분이다. 나는 있는 힘껏 주먹을 쥐고 발만 동동 굴렸다. 벽에 머리를 갖다 대고는 연신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하쿠나마타타! 비비디바비디부! 아브라카다브라!"
뭐든지 다 들어준다는 주문은 효과가 하나도 없었다. 이미 몇 명은 출구쪽에서 조교 다리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교는 그런 그들을 제자리로 밀어내고 있었다. 저승사자가 있다면 딱 저런 모습일 것이다. 교관은 연신 소리를 치며 제대로 정렬 안하면 안 내보내준다며 윽박지르고 있었다.
"앉아! 일어나! 앉어! 일어나! 군가 일발 장전! 군가 진짜 사나이! 군가 시작 하나 둘 셋 넷!"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처절한 군가가 시작되었다. 이미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되었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차례 군가를 부르고 나서야, 교관은 다시 방독면을 착용하라고 지시하였다. 9초가 뭐야! 1초만에 착용하고는 가쁜 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소 살 거 같았다.
그제서야 어둠에도 익숙해졌고, 가스실 내부 모습이 눈에 보였다. 중앙에 교관이 서 있었고, 좌우 문 쪽에 조교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정화통 교체 연습까지 마치고서야 퇴장할 수 있었다. 다들 나가기 위해 앞에 있는 훈련병들의 어깨는 잡고는 빨리 나가라고 재촉하였다.
"나가면 양팔을 벌리고 전방에 있는 조교에게 신속히 뛰어갑니다!"
출구 쪽에 서있는 조교는 행여 훈련병들이 넘어질까봐 한명 한명 등을 두들겨 주며 내보내고 있었다. 나가는 순간, 방독면을 착용한 조교와 눈이 마주쳤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쉴새없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다고 하여도, 가스로부터 완벽하게 보호될 수 없었다.
우리는 몇분동안만 참고 나가면 되지만, 그들은 하루종일 가스실에서 우리들을 교육하여야 하였다. 교관과 조교의 신분이다보니 힘든척 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우리들, 웃기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언제 자신의 조국을 위해 이렇게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겠는가?
지금 이시간에도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군인들! 너무나 자랑스럽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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