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지난 글보기
오늘은 지난밤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사방이 온통 칠흑같은 어둠으로 깔렸다. 불과 몇분 전까지 아름다운 태희님을 영접하고 온 탓일까? 심장이 무척이나 뜨거웠다. 담배를 한 개비 물고, 조심스레 불을 켰다. 이제 과거로 돌아갈 시간이다. 레드썬!
"무엇이 보이는가?"
"군복 입은 제 모습이 보여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고참에게 혼나고 있어요!"
"불쌍해 보이는가?"
"네! 엄청 불쌍해보여요!"
"좋은 소재다! 더 상세히 말해봐!"
"..........."
그렇게 나는 매일밤, 블로그에 올릴 소재를 기억해내고 있었다. 어느덧 군대이야기를 작성한 지도 9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작성한 이야기도 130여편이 훌쩍 넘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군생활은 고작 2년 밖에 안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평소 나의 기억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기억이 난다. 너무나도 또렷하게 말이다.
어제는 국군방송 작가에게 연락이 왔다. 어느새 한 주가 지났고, 금주에 방송할 원고를 준비하라고 말이다. 부랴부랴 오후부터 방송할 원고를 작성하기 시작하였다. 원래 낮에는 좀처럼 글을 작성하지 않는다. 블로그에 작성되는 글은 항상 자정이 되어서야 작성하기 시작한다. 모두가 잠든 밤이 되어야지만, 나만의 타임머신이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블로그를 운영하기 전만 하여도, 가끔 전우들과 통화를 하면서 이야기하는게 전부였다. 물론, 본의아니게 꿈에 등장할 때도 있지만, 바쁜 일상을 살아가며 군시절을 회상할 여유는 많지 않았다. 물론 내리는 눈을 보거나, 라면을 먹을 때, 등산을 할 때는 잠깐씩 떠오르긴 하였지만, 이내 기억에서 잊혀졌다. 어찌보면 군대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각박한 사회는 추억을 회상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그 녀석 이름이 뭐였지?"
어느 순간, 나의 머릿속에서 전우들의 이름이 한명 한명 사라져갔다. 하루 수십번을 부르고 24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동고동락한 전우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다. 너무 슬프지 않은가? 누군가에게 잊혀진다는 사실이 말이다. 때마침 만들어 놓은 블로그가 있었고, 딱히 쓸 글이 없었던 나에게는 좋은 찬스였다. 그렇게 9개월동안 군시절의 추억을 기록해왔다.
어제는 병장이 되었고, 오늘은 이등병이 되었다. 내일은 무엇이 될까? 알 수 없다. 나는 미리 작성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날 그날 떠오르는 기억을 바로 작성하였다. 가끔은 바로 떠오르지 않는 날도 있었다. 한 개비를 피우고, 두 개비를 피워도 기억이 나지 않는 날, 그런 날은 전우의 추억을 훔치러 가야 된다.
당시에는 별 생각없이 우후죽순으로 맺은 미니홈피 일촌이 큰 도움이 되었다. 전우의 홈피에 들어가서 사진첩을 열어 본다. 한장 두장 살펴보면 그제서야 잊고 지냈던 기억이 떠올랐다. 블로그를 하지 않았다면, 영영 잊고 지내던 기억이었을 것이다. 당장 내일 올릴 글의 소재를 찾아서 기쁜게 아니라, 나의 추억을 찾을 수 있어서 기뻤다.
또한, 평소같으면 연락도 하지 않고 지낼 전우들과 소통이 재개되었다. 한 줄의 안부인사, 한 통의 짧은통화라도 하면서 근황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쑥스러웠다. 오랫만에 연락해서 한다는 소리가 포스팅해야 되는데 재미있는 소재가 없냐? 라고 하니 말이다.
그러나 반응은 의외였다. 하나같이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추억들을 쉴 새없이 내뱉었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그도 나와 같은 사람이기 때문일까?
"전역하고도 찌질하게 군대이야기 하고 있냐?"
가끔 채팅창에서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아직 어린 영혼인지라 그런 글을 보면 순간 울컥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들이 너무 측은하였다. 그들에게 군대는 단지 시간낭비였고, 잊고 싶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들은 2년이라는 시간을 그냥 고생만 하면서 보냈을테니 말이다. 당연히 남는 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병장 때 만들어진 우리 대대 커뮤니티에 있는 중대게시판이다. 지금은 거의 활동하지 않는 죽은 커뮤니티지만 가뭄에 콩나듯 간간히 글이 올라온다. 하나같이 작성시간은 늦은 밤이다. 그들도 나처럼 지난 날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하였던 군사진의 출처는 바로 미니홈피와 커뮤티니이다.
사실, 오늘 발행할 글을 작성하는 와중에, 필요한 사진을 구하기 위해 들어갔다가, 오랫만에 게시판에 있는 글들을 읽어 보았다. 호주에서 남긴 전우, 전역하고 다시 입대한 전우, 결혼하고 잘 살고 있다는 전우 등 그들의 사연이 소소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다 낯익은 이름이 하나 보였다. 유난히 적응을 못하고 사고만 쳐서 항상 혼나기만 했던 후임이 남긴 글이었다.
과연 무사히 제대는 할 수 있을까? 걱정하였는데, 후임에게 보란듯이 조언까지 해주는 여유를 보이는 그의 글을 읽으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문득 나의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마 나의 군대이야기를 읽는 고참들도 지금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많이 컸네! 가츠!"
"제가 갈게요! 하와이!"
이러고 있다! 아무튼 오늘은 유난히 그 때 그 시절이 많이 떠오르는 밤이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 씻지도 못하고, 좁은 텐트에서 옹기종기 모여 자던 겨울밤이 말이다. 한 개 남은 초코바를 7명이 나눠먹으면서도 웃을 수 있었던 그 때가 말이다. 서로 먹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쾌재를 불렀던 그 때가 말이다.
서로 아무 것도 없었기에 행복할 수 있었던 그 때가 그립다.
반응형
'가츠의 군대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츠의 군대이야기, 신나군 上편 (214) | 2009.12.11 |
---|---|
가츠의 군대이야기, 생일 (370) | 2009.12.07 |
가츠의 군대이야기, 2소대 (222) | 2009.12.02 |
가츠의 군대이야기, 온수샤워 (288) | 2009.12.01 |
가츠의 군대이야기, 전투사격 下편 (269) | 2009.1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