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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헌혈 上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아침식사를 마치고 정신교육을 위해 중대원들은 모두 2소대 내무실로 집합하였다. 평소와는 다르게 하나같이 깨끗하게 씻었고, 복장도 단정하였다. 중대장은 이런 우리들을 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오늘 위생검열이라도 오나? 다들 신수가 훤하네! 평소에 좀 씻고 살자!"
예전에 발냄새편에서 말한 적이 있는데, 사실 나는 군대있을 때가 더 자주 씻었던 거 같다. 문제는 씻어도 씻은 티가 안난다. 또한 군인 특유의 냄새! 사실 군인들은 모른다. 전역하고는 군인들을 접할 기회가 없어서 아직도 군인 특유의 냄새가 무엇인지 확실히 모르겠다.
지난 밤, 불침번의 정성스런 물수건 간호가 주효한건가? 머리에 열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몸에 기운은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어제 하루종일 기절모드로 잠만 자느라 의무중대에 가지 않았다. 그말인즉슨, 약을 먹지 않았다는 거다. 감기약을 먹으면 헌혈을 못한다고 들었기에 내심 안도하였다.
"내 피는 깨끗해!"
정신교육을 마치고, 휴식시간이 되었다. 우리들은 중대 앞 벤치에 모여서 삼삼오오 흡연을 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위병소에서 힘찬 경례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위병소를 통과하여 연병장으로 들어오는 갤로퍼와 헌혈버스가 시야에 보였다.
우리들은 통닭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아버지를 반기는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맞이하였다. 차량들은 8중대 막사 앞으로 가서 정차하였다. 딱히 헌혈 할 공간이 없기에, 8중대에서 임시로 헌혈할 공간을 마련하였다. 차량에서 사람들이 장비를 가지고 내리기 시작하였다.
아저씨들이 내렸고, 뒤이어 여자들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8중대 막사는 우리 중대에서 거의 100여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서 어렴풋이 보인다. 근데 딱봐도 아주머니들 같았다. 김병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는 걱정하였다.
"이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갑자기 몸살기운이 도지는데 말입니다!"
순간, 뒷좌석에 타고 있던 간호사들이 내렸다. 100m 밖에서 보아도 우월해보이는 S라인! 대낮인데도 그들 주변에는 빛이 나는 거 같았다.
내무실로 돌아온 우리들은 다시한번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매만졌다. 곧, 행정반에서 8중대로 헌혈을 하러가라고 전파가 왔다. 소대원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쳐 나갔다. 내무실에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말년병장들과 몇몇 후임들만 남아 있었다. 윤일병도 안가고 멍때리고 있다.
"야 깐돌이! 왜 안가? 누나들이 기다리는데!"
"피곤하지 말입니다! 제 피는 소중합니다!"
나와 김병장은 별 꼴이라는 표정으로 8중대로 향하였다. 남들은 부리나케 뛰어가지만, 우리들은 천천히 걸어갔다. 원래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이다.
8중대로 들어서니 후임들이 헌혈기록카드와 주의사항 팜플렛을 챙겨주었다. 침상에 엎드려서 하나하나 기록해 나갔다. 문득, 나를 주저하게 만드는 문항이 눈에 띄었다.
최근 1개월 이내에 고열, 춥고 떨림, 땀흘림이 반복적으로 나타난 적이 있습니까?
어제 열이 나고 춥고 떨리긴 하였지만, 반복적이지는 않잖아? 나는 당당하게 아니오를 체크하였다. 그리고 임신, 출산 여부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니오에 체크하였다. 마지막 부분에 최근 3년 이내에 외국여행을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입대전 중국에 있었기에 별 생각없이 예라고 체크하였다.
카드를 작성하고는 혈압을 측정하였다. 꼭 혈압계랑 싸우는 녀석들이 있다. 그러지 마라! 쫒겨난다! 무사히 혈압측정까지 마치고, 보다 자세한 확인을 위해 상담을 받아야 한다. 작성한 헌혈기록카드를 손에 들고는 상담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칸막이 사이로 얼핏보니 3군데에서 상담을 실시하고 있었는데, 2군데는 아주머니였고, 오른쪽은 아리따운 천사님이었다.
"무조건 오른쪽!"
나는 앞에 줄 서 있는 인원의 수를 체크하고는 내가 갈 곳을 가늠해보았다. 그러나 상담이 길어질 수도 있기에 정확하게 유추할 수 없었다. 잠시후 내 차례가 되었고, 칸막이 안에서 아주머니가 다음 사람! 오라고 하였다. 뒤를 돌아오니 2소대 이등병이 서 있었다.
"얼레? 이거 작성 안했네! 너 먼저 가봐라!"
나는 볼펜을 꺼내서 수정을 하는 척 하면서 후임을 먼저 보냈다. 이등병은 주삣주삣거리며 아주머니에게로 갔고, 나는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곧 천사님께서 천상의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가츠님 본인 맞나요?"
"넵! 불꽃남자 악랄가츠입니다!"
"손 좀 주실래요?"
"헐! 진도가 너무 빠른거 아님?! 저 쉬운 남자 아니예요!"
그녀는 비웃으며 나의 손을 잡더니, 무언가를 푹 찔렸다. 그리고는 나의 혈액을 파란 용액이 담긴 비커에 떨어뜨렸다. 파란용액은 황산구리수용액으로서 나의 헤모글라빈 비중과 빈혈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혈액이 바닥으로 가라 앉아야지만, 헌혈을 할 수 있었다.
근데, 혈액이 가라앉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가라앉지 않으면, 그녀가 나를 쫒아낼 것이다. 나는 속으로 제발 가라앉으라고 빌고 또 빌었다. 나의 기도가 통한 것일까? 이내 바닥으로 사뿐히 착지하여 주었다. 브라보!
"가츠님 과거에 약이나 마약같은 거 안하셨죠? 기타 복용하시는 약도 없으시고?"
"당신이 저의 사랑의 묘약입니다!"
"됐고! 외국 다녀오셨나봐요?"
"이미 지나간 과거예요! 지금이 우리가 함께 있다는게 중요하지요!"
"후아! 다시 한번 묻겠어요! 어디 다녀오셨어요?"
"집요하시긴! 상처 받지 말아요! 중국이요!
"잉? 중국은 헌혈할 수 없어요! 당장 나가세요!"
뭥미? 중국은 헌혈할 수 없다니? 이미 군에 와서 2차례나 헌혈하였는데 말이다. 나는 이미 군에 와서 2차례나 헌혈하였다고 어필하였다. 그러자 그녀는 관리지침서를 세심하게 살펴보기 시작하였다. 관리지침서에는 중국의 소도시, 시골, 산간 오지 여행시 헌혈을 할 수 없다고 적혀 있었다.
"여기 보시면 안된다고 적혀있네요!"
"저는 하얼빈에서 왔어요! 거긴 대도시라고요! 하얼빈 무시하지 마샴! 안중근의사한테 혼나요!"
그녀는 칸막이 옆에 있던 고참급인 아주머니에게 가서 물어보더니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헌혈할 수 있으니 냉큼 다음 장소로 이동하라고 하였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옆 내무실로 이동하였고, 그 곳에는 이미 많은 수의 군인들이 누워서 혈액을 뽑고 있었다.
침상에 편한 자세로 누워서 기다리고 있으니, 간호사가 채혈할 준비를 하였다. 그는 나의 혈액을 담을 빈 팩을 가지고 연결하였다. 그리고는 나의 오른팔을 잡더니 혈관을 찾기 시작하였다. 아쉽게도 나의 혈관은 너무 잘 보인다. 금새 혈관을 찾아서 주사 바늘을 찔러 넣었다.
"편하게 누워계세요! 심심하면 팜플렛 보시구요!"
"절 두고 가지마세요! 무서워요!"
그러자 그녀는 냉정하게 나를 두고 다음 헌혈자를 찾아 떠났다. 나의 혈액은 주사관을 타고 팩으로 끊임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천천히 조금씩 빠지기 때문에 별다른 느낌도 없었다. 애시당초 몸에 힘이 없었기에 힘든 줄도 모르겠다. 십여분이 지나고 그녀가 다시 돌아왔다.
향긋한 샴푸냄새가 나의 코 끝을 자극하였다. 까까머리 군인들한테서는 절대 날 수 없는 달콤한 향기였다. 그녀는 조심스레 나의 팔에서 주사바늘을 제거하고는 솜을 꾸욱 눌러주었다. 그리고는 10분가량 더 누워있다가 나가면 된다고 하였다. 벌써 끝나다니! 이제 그녀를 못 보는 걸까?
"저...저기 한번 더 해도 되는데!"
"........."
한심하단듯이 나를 보고는 그녀는 떠났다. 잠시후 충분한 회복을 취하고 옆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는 아저씨 한 분이 헌혈증과 간식, 기념품을 나눠주고 있었다.
과자와 음료수를 마시며 헌혈증을 보니 마음이 뿌듯하였다.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일도 하고, 무엇보다도 이쁜 간호사 누나들도 보았으니 말이다. 어느새 김병장도 내 옆에 앉아서 연신 앞 쪽에 있는 간호사가 이쁘다며 침을 튀기며 재잘거리고 있다.
"진짜 이쁘다! 완전 내 스타일인데! 몸매도 쩔어!"
"연락처 달라고 한번 해보시지 말입니다!"
"에이! 설마 주겠어? 난 군인이잖아 흑흑"
"하긴! 그럼 정표로 군번줄이라도 걸어주지 말입니다 앜ㅋㅋㅋ"
그렇게 김병장과 한참동안 농담을 하며,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발걸음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다. 겨우 일어서서 출입문으로 나갔다. 문 밖으로 나가니 눈부신 햇살이 나를 비추어 주는데, 순간 머리가 핑 돌더니 어지러웠다. 가까스로 문을 잡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역시 무리한 것일까? 입대하고 처음 겪는 빈혈증상에 다소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마음만은 행복하였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힘을 내어 눈부신 태양을 향해 걸어나갔다.
저 멀리 윤일병이 태양을 등지고 뒤늦게 뛰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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