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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등병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5년 4월, 온천지에 푸르른 봄이 찾아오는 시기이다. 혹한의 추위도 가시고 싱그런 풀내음이 우리를 반겨준다. 가족끼리 혹은 연인끼리 그마저도 없으면 친구끼리라도 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봄나들이를 떠난다. 엣지있는 부대에서도 군인들을 위해 부대집중정신교육이라는 행사를 한다.
말그대로 한 주동안 훈련이나 작업없이 집중적으로 정신교육을 실시한다. 자살사고예방, 대적관 확립, 엣지있는 군인되기 등 매일같이 내무실에서 정신교육을 실시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체육대회, 장기자랑등 나름 편하게 보낸다. 각 종목마다 포상휴가도 걸려있으니 이 기회를 잘 노리면 행운을 잡을 수도 있다.
부대집중교육 3일차, 여느때처럼 오전에는 중대장의 정신교육을 듣고, 점심을 먹고 올라 왔다. 주간 계획표에서 일정을 확인해보니 계급별집체교육시간이라고 적혀 있었다.
"심이병님! 계급별집체교육이 뭡니까?"
"글쎄? 계급별로 모여서 노는거 아냐?"
"쉽게 말해서 이등병끼리 모여있는거지 말입니다?"
"그렇지! 근데 넌 어차피 막내잖아! 앜ㅋㅋㅋㅋㅋㅋ"
"..........."
그래도 좋았다! 무시무시한 상,병장들과 떨어져 있을 수만 있으면 된다. 곧 이어 집합하라는 전파가 왔다. 우리들은 중대 사열대 앞으로 모두 뛰어 갔다. 사열대 위에 올라온 행보관은 신명나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하였다. 딱봐도 30분짜리 잔소리였다. 항상 같은 레파토리, 막내인 나도 벌써 수십번은 더 들은 거 같은데, 말년병장은 얼마나 들었을까?
일장 연설을 하고 있는데, 연병장으로 군용 트럭 한 대가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우리 중대 쪽으로 오더니 주차하였다. 그제서야 행보관은 잔소리를 중지하고 지시사항을 전달하였다.
"오후에는 계급별 집체교육이다. 근데 뭐 따로 할게 있나? 쌈빡하게 청소 한번하고 볼이나 차라! 그라고 우리 귀여운 이등병님들은 차량에 탑승한다!"
오오 역시 이등병은 대우가 달라! 뭔가 근사한 곳으로 가는 거 같았다. 고참들은 청소하는데 말이다. 우리들은 잽싸게 차량에 탑송하고는 고참들의 눈치를 살피며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분대장이 행보관에게 다가가서 물어 보았다.
"행보관님! 우리 아가들은 어디갑니까?"
"천사의 집!"
"아하! 천사의 집 가는구나! 아가들 가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와!"
분대장은 우리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으며 배웅해주었다. 머지 저 가식적인 웃음은? 그나저나 천사의 집은 머하는 곳이지? 이등병인 우리들은 아는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곧, 우리들의 실은 차량은 힘차게 위병소를 통과하여 밖으로 나갔다. 오랫만에 부대 밖을 벗어나니 가슴이 뻥 뚫리는 거 같았다.
막내인 나는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얌전히 앉아 있었다. 옆에서 이등병 왕고가 말년병장 부럽지 않은 포즈로 늘어지더니 한숨을 쉬며 우리들을 바라보았다. 불과 몇분전에는 같은 이등병으로서 찍소리 못하던 녀석이 지금은 황제포스다.
"어이 막내! 1월 군번이지?"
"네 그렇습니다!"
"깝깝하다! 앞이 보이냐? 에혀 열심히 해라!"
"네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천사의 집에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오라고 했단 말이지! 왠지 기대되는데!"
나도 분대장이 배웅하면서 해준 말이 자꾸 떠올랐다. 맛있는 거! 맛있는 거! 맛있는 거! 도대체 뭘 주는걸까? 치킨? 피자? 탕수육? 상상만 해도 침이 고였다.
봄바람을 맞으며 신나게 달리던 트럭은 곧 길가에 정차하였다. 부소대장의 하차 명령에 우리들은 신속히 차에서 내려 집합하였다. 길 옆에는 천사의 집 표지판이 보였고, 그 너머로 수백마리의 닭들이 우리 안에서 신나게 뛰어 다니고 있었다.
"우와 저기 닭 겁나 많아!"
"맛있게 먹고 오라는 게 닭이었구나?"
"우하하! 짱이다!"
"분위기가 컨츄리삘 나니깐, 치킨은 아니겠고 삼계탕이구나!"
"삼계탕! 삼계탕! 삼계탕!"
우리들은 다들 흥분하여 연신 웃으며 떠들었다. 부소대장은 이런 우리들을 보며 한심하단듯이 바라보며 설명하였다. 이 곳은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 생활하는 공동체라고 하였다. 다들 거동이 불편하고 장애가 있는 고령자들이기에 우리 부대에서 매년 봉사활동을 하러 온다고 하였다.
봉사활동이라? 그래! 부대에서 삽질할 바에는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도 나쁘지 않지! 우리들은 의욕적인 자세로 부소대장의 설명을 경청하였다. 곧이어 아저씨 한 분이 오시더니 우리를 닭장으로 데려갔다.
멀리서 볼때는 몰랐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진한 닭똥냄새가 코끝을 자극하였다. 겨울내 얼었던 닭똥들이 날씨가 풀리자 녹아서 그런걸까? 정말 구수하였다. 아주 심하게...
아저씨는 능숙한 솜씨로 닭들을 모두 우리에서 빼내고는 다른 곳으로 데려 갔다. 그리고는 우리 안에 수북히 쌓여있는 닭똥과 썩어가는 볏짐을 모두 치우라고 하였다. 하필, 수많은 봉사 중에 왜 이거지? 우리는 오만상을 지으며 우리안으로 들어갔다. 질펀한 땅바닥의 느낌은 온 몸의 세포를 긴장시켰다.
"절대 넘어지면 안된다!"
그렇게 우리들은 4월의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청소를 하기 시작하였다. 고약하기만 했던 냄새도 어느새 적응되었는지 괜찮았다. 금새 찌푸리던 인상은 온데간데 사라졌고, 신나게 청소하였다. 냉철한 눈빛으로 째려보며 갈구는 고참들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들은 즐거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는데, 역시 우리들은 군인이었다. 러브하우스처럼 대변신한 닭장 우리는 반짝반짝 빛이 났다. 사라졌던 아저씨는 다시 닭을 몰고 돌아오셨고, 수고했다고 하였다.
이제 삼계탕만 먹으면 되는건가? 우리들은 해맑게 웃으며 연신 두리번 거리며 식당 건물을 찾고 있었다. 부소대장은 인원파악을 하더니 말하였다.
"전원 차량 탑승!"
"뭥미? 우리 삼계탕 안 먹습니까?"
"뭔 삼계탕?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하고 있어?"
"분대장이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오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아나 순진한 놈들! 그걸 믿었어? 그리고 양심이 좀 있어라! 여기가 무슨 식당도 아니고!"
"ㅅㅂ..... 당했다!"
우리는 분대장의 거짓말에 깜쪽같이 당했다. 삼계탕의 꿈은 산산조각났고, 씁쓸하게 차량을 타고 복귀하였다. 애써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간만에 봉사활동을 하였다는데 의미를 두기로 하였다. 고참들도 고생하며 봉사활동하고 온 우리들을 귀여워 해줄테니 말이다.
중대로 복귀한 우리들은 각자 내무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참들은 다들 침상에 누워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우리들은 각자의 분대장에게 복귀하였다고 보고를 할려는 찰나!
"우와 이거 무슨 냄새야! 야야 오지마! 나가!"
".........."
"우하 미치겠다! 너희들 오늘 텐트가지고 나가서 자!"
현실은 냉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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