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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페스티벌 上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퍼레이드 행사가 끝나고, 국군방송 위문공연이 시작될 때까지 자유시간을 주었다. 우리 소대는 분대별로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오랫만의 자유를 만끽하였다. 이미 간이 포장마차들은 병사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대대적으로 회식을 하는 중대도 있었고, 분대별로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팀도 있었다.
"우리도 소주 한 잔 해야지!"
"브라보!"
그러나 행사장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포장마차는 이미 만석이었고,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전시해놓은 군용품과 각종 탱크, 자주포, 신형무기등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동안 궁금하였던 군 보급품의 가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윽고, 윤이병이 해맑게 뛰어오면서 빈자리가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포장마차로 들어가서 소주 일병과 파전, 골뱅이무침, 닭꼬치 등을 시켰다. 거국적으로 건배를 하고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였다. 얼마만에 먹는 사회 음식인가? 다들 한동안 말이 없었다.
"김상병님 오늘 초대 가수는 누굽니까?"
"글쎄? 길건, 린, 서문탁이라고 하던데?"
"음... 조금 약한 거 같은데 말입니다?"
"그게 어디야! 그저 감사할 따름이지!"
그랬다! 지난 시간에도 이야기 했지만, 당시에는 우리 부대에 GOD의 김태우가 입대하지 않았다. 그의 막강한 인맥을 활용할 수 없는 시점이었다. 그리고 소녀시대, 원더걸스, 애프터스쿨, 2NE1, 포미닛, 카라같은 완소 걸그룹은 아직 데뷔도 하지 않았다. 그나마 쥬얼리가 걸그룹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었다. 솔로는 딱히 이효리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백댄서 누나들도 있을거고, 명색이 연예인들인데 재미있을거야! 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문득, 김이병이 먹다 말고는 한 곳을 계속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다.
"야! 혼자 보고 있어! 전우애는 이럴때 발휘하라고 있는거다!"
"이병 김OO! 죄송합니다아!"
김이병은 정복으로 곱게 차려입은 여군들을 정신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여군만 봐도 정신줄 놓는데, 잠시후 공연이 시작되면 어떻게 될련지, 심히 궁금하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면서 점점 축제의 분위기는 고조되었고, 본 행사장에는 군인들과 지역민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언제나 각이 생명인 군인들은 좌석위치도 부대별로 칼같이 정해져 있었다. 최고의 명당인 앞자리는 다른 연대가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구동성으로 불만을 표출하였다. 그러자 정훈장교가 오더니 설명해주었다.
조금전에 각 연대 간부들이 대표로 가위바위보를 했는데, 졌다는 것이다. 다시한번 이야기하는 거지만, 군대에서의 가위바위보 스킬은 필수다! 우리들은 속으로 겁나 욕하고는 투덜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2등이라서 중간 정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완전 뒷 편에 앉아있는 다른 연대 병사들은 모두 가위바위보한 간부를 노려보고 있었다. 2000명이 자신을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겠는가?
"가위바위보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야! 목숨을 걸고 해야된다!"
잠시후 사회자의 오프닝 인사가 나오고는 본격적인 무대행사가 시작되었다. 사단장, 화천군수의 축하멘트가 이어지고 오프닝 무대로 길건이 나왔다. 길건이라 최고의 섹시 여가수가 아닌가? 우리는 맥심에서나 볼 수 있었던 그녀를 본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길건! 길건!"
역시 이효리의 춤선생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그녀는 뛰어난 안무로 우리를 놀라게 하였다. 가냘픈 허리에서 뿜어져 나온는 폭발적인 파워, 허리를 90도 젖혀 추는 매트릭스 춤은 단박에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당시 1집 타이틀 곡 여왕개미는 모든 남자를 자신의 앞에 꿇게 한다는 직설적인 표현과 여성의 위대함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내용이었다.
모든 남자는 아니지만, 모든 군인들은 꿇게 만들었다. 하지만 당시 1집의 컨셉은 광전사 느낌의 사이버틱한 복장이었는데, 너무 강해보여서 그런지 오히려 섹시미가 반감되었다.
다음 초대가수는 린이 었다. 당시 3집 타이틀곡인 보통여자를 열창하며 우리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었다. 정서적 감정이 메마른 우리들에게 그녀는 천상의 목소리로 보듬어 주었다. 그러나 천상의 발라드라고 할지라도 우리들에게는 2%로 부족한 느낌이었다. 패션도 너무 노말하였다. 이건 아니잖아!
팜플렛을 보며 오늘 초대된 가수들의 명단을 확인하였다. 문득 나의 시야에는 다소 낯선 이름들이 보였다. 하유선? 성은? 누구지? 완전 무명이잖아?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김상병님! 혹시 하유선, 성은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완전 듣보잡인데 말입니다?"
"저번에 연예뉴스보니깐 둘다 에로배우 출신이라고 하던데?"
"진...진짜입니까?"
헐! 왠지 심상치 않을 거 같았다. 린의 무대가 끝나고, 이기자 부대 군장병들의 장기자랑이 이어졌다. 차력쇼와 댄스, 개인기 등을 하였는데, 나는 철저히 외면하고는 김상병과 대화를 나누었다.
얼마나 대화를 하고 있었을까? 갑자기 앞쪽에서 우뢰와 같은 환호가 들리더니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대화를 멈추고 정면 공연장을 응시하였다. 그곳에는 막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우리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지...지대로다!"
야구장에 시구하러 가면 개념복장을 갖추어야 하듯이 그녀는 군무대에 어울리는 개념복장을 하고는 무대로 올라왔다. 긴 생머리와 하늘하늘한 스커트는 연신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일어서서 팜플렛을 들고는 연신 흔들며, 그녀의 이름을 외쳤다. 누군가의 이름을 즐거운 마음으로 목이 터져라 외쳐본 적 있는가? 나는 있다!
"사랑해요! 하유선!"
앞에 있는 장병들이 모두 일어나는 바람에 잘 보이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무대앞으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나는 군인이다. 게다가 이제 일병이다. 항상 위치를 보고해야되며 마음대로 자리를 이탈할 수 없다. 그렇지만 정말 가까이서 보고 싶다!
순간 나의 머릿속을 스치는 아이디어! 화장실 간다고 보고하고는 몰래 무대 앞쪽으로 가면 아무도 모를거야! 거짓말이 찝찝하기는 하였지만, 큰 문제 없을거야! 나는 분대장에게 보고를 할려고 돌아보니, 그는 동기들과 술을 마시러 갔는지 자리에 없었다. 별수없이 김상병에게 보고하고는 자리를 이탈하였다.
화장실 가는 척, 뒤로 걸어나가서는 반대편으로 냅다 뛰었다. 그리고는 다시 몸을 돌려 무대 앞쪽으로 뛰어갔다. 이미 그녀의 무대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무대 앞쪽에는 우리들을 통제하는 헌병과 간부들이 있었고, 조금이라도 무대 앞 쪽에서 볼려는 병사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미 그곳은 전쟁터나 다름 없었다.
"하하! 기다려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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