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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지난 시간에 이어서 계속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지난 편을 안 읽은 분은 먼저 페스티벌 上편, 페스티벌 中편부터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바로 코 앞에 그녀가 있어!"
나는 그녀를 가까이서 보겠다는 일념 하나로 건장한 군인들을 밀쳐내며 앞으로 전진 또 전진하였다. 이미 무대 앞은 수천명의 군인들로 인해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눈 앞에 보이는 군인들의 옆구리를 찔려대며 파고 들기를 수 분여, 드디어 가장 앞 선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가지마! 내가 어떻게 왔는데! 어흐흑흑ㅜㅜ"
어렵사리 도착하였는데, 어느덧 무대는 막바지였다. 우리의 로망, 하유선은 그렇게 작별인사를 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나는 무대를 내려가는 하유선을 따라 갔다. 당시 출연자들은 무대 뒷 편에 임시로 만들어 놓은 대형 천막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곳은 간부들로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었다.
간부들은 천막 입구에서 매의 눈으로 불순분자를 색출하고 하는 듯 같아 보였지만, 실상은 천막 안에 있는 연예인들을 힘끔거리며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날만큼 간부들이 부러운 날도 없었다. 천막 옆에서는 군악대가 모여서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군악대는 무대 막바지에 있을 사단장님의 색소폰 연주를 위해 행사 시작부터 연습하느라 제대로 공연을 보지도 못했다.
"완전 불쌍해!"
이윽고, 다음 출연자가 무대로 올라왔다. 이건 뭔가요? 딱봐도 아저씨같은 남성 출연자! 군부대에 남성 출연자가 왠말인가? 병사들은 이내 들떠 있었던 감정을 진정시키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하나 둘씩 돌아갔다. 남성 출연자는 분위기 전환을 위해 강진의 땡벌을 열창하였다.
당시, 모 연예프로에서 소개되는 바람에 땡벌은 전국민적 사랑을 받고 있었다. 흥겨운 멜로디에 구수한 목소리로 열창하는 아저씨, 우리들도 좀 전의 열광적인 무대는 아니었지만, 흥겹게 듣고 따라 불렀다.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앨범을 낸 박상철입니다. 다음 곡은 제 앨범 타이틀 곡인 무조건입니다!"
무...무조건? 그랬다! 그는 그 후 대한민국 노래방을 휩쓴 밤무대의 황제가 되어버린 박상철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전혀 인지도가 없는 무명 가수였지만 말이다. 우리들은 낯선 멜로디에 심드렁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재치있는 박상철은 후렴부분을 바꿔서 열창하였다.
"이기자를 향한 나의 사랑은 무조건 무조건이야~!
이기자의 향한 나의 사랑은 특급 사랑이야~♪"
하하! 저 아저씨 재밌다! 우리들은 무명 가수의 센스에 감탄하고, 무조건 특유의 멜로디에 심취하여 신나게 따라 불렀다. 이때부터 대박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우리를 의자에서 일어나게 하지는 못하였다.
화장실 간다고 해놓고, 벌써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었다. 다들 정신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찾기라도 한다면 혼날 수도 있으니, 슬슬 제자리로 돌아갈려고 하는 찰나, 사회자가 다음 무대를 소개하였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제 그녀가 우리 군장병들을 유혹하러 나오겠습니다! 성은이 부릅니다~♪"
무대가 어두워지더니, 한 무리의 인원들이 무대로 올라오고 있었다. 성은이라? 하유선만큼 기대해도 되는 걸까? 나는 돌아가는 발걸음을 뒤로 하고, 다시 무대 앞쪽으로 뛰어갔다. 곧 무대의 조명이 켜졌다.
"오 마이 갓! 신이시여! 어찌하옵니까!"
무대 위에는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 나온, 섹시한 여교사가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절제된 섹시미였다. 순간, 뒤에서 밀려오는 폭발적인 함성, 의자에 앉아 있던 15000여명의 군장병들은 1초만에 기립하였다.
순식간에 내가 서있던 곳은 생애 최고의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하였다. 우리들을 통제하던 간부들과 헌병, 진행요원들은 밀려나오는 우리들을 안간힘을 다해 저지하고 있었다. 너나 할 것없이 쓰고 있던 전투모를 흔들며 그녀의 손짓, 몸짓 하나에 하나에 열광하였다.
그녀가 왼쪽 관중석을 가리치자, 왼편은 말그대로 초토화가 되었다. 핵폭탄급의 손짓이었다. 오른편에서는 자기들에게도 손짓을 해달라며 아우성이다. 손가락 하나에 건장한 남성 만여명을 녹아내린다. 히어로즈의 사일러가 부럽지 않은 절대적 능력이다.
"야야! 앞으로 오지마! 뒤로 가!"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간부들은 연신 뒤로 물러나라며 지시하였다. 그 순간, 성은의 무대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고, 그녀는 우리들 앞에서 안경을 벗어 던졌다. 도발적인 섹시댄스를 추기 시작하였다.
"와아아아아!"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이미 통제할 수준을 넘어섰다. 강원도 전역을 아니 평양까지 들릴만한 함성이었다. 이윽고, 통제하던 간부, 헌병들마저도 무대를 바라보며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까지 묵묵히 연습을 하던 군악대까지 무대 옆으로 나와 자신의 악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그리고 오로지 공연에는 관심없고, 행사장 주위에 마련된 포장마차에서 부어랴 마셔랴 하던 술고래들까지도 불려 모았다.
훗날, 성은의 무대는 중부전선의 수호자, 이기자 부대의 단합력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고 평가되었다. 길이길이~!
나는 성은의 무대가 끝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화장실 간다고 나온 녀석이 벌써 수십분째 이러고 있었다. 나는 성은님이 계신 천막을 뒤로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하였다. 자리로 돌아오니, 분대장과 분대원들이 성은 이야기로 여념이 없었다.
"우리 가츠님 이제 오셨쎄여?"
"네 그렇습니다!"
"우리 가츠님은 고참들 놔두고 혼자 앞에서 보고 오니깐 좋았어요? 좋았지? 좋았겠지? 좋았을거야!"
"..........."
"아주 그냥 대가리 큰 놈 하나가 생쇼를 하드만!"
"..........."
"니가 성은이야? 어? 성은보다 니가 더 잘보여! 이걸 확!"
"........,.."
그렇게 이기자 페스티벌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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