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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오늘은 이등병때 있었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때는 바야흐로 05년 3월, 타임머신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보자. 나는 행정반에 부동자세로 서있다. 양 옆에는 나의 동기들이 같이 서있다. 나의 눈 앞에는 마치 맛있는 먹잇감이라도 발견한 듯이 연신 군침을 흘리고 있는 분대장들이 있었다. 그렇다! 지금은 갓 훈련소를 퇴소하고 자대배치를 받은 시점이다.
지난 폭풍구보편과 같은 시간대이다. 분대장들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들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우리 등 뒤에 있는 인사계원이 질문하였다.
"너네들 집은 어디냐?"
"이이벼어엉 박XX! 강원도 춘천입니다!"
"이이벼어엉 가츠! 경북 경주입니다!"
우리들은 너나할 것 없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내가 대답을 마치자 앞에 있던 김병장이 나를 신기하단듯이 바라보았다.
"너 집이 어디라고?"
"이이벼어엉 가츠! 경북 경주입니다!"
"경주가 다 너거집이냐?"
"아닙니다! 경주시 솰랴솰랴~!"
나는 당황하여 집주소를 다 말하였다. 알고보니, 눈 앞에 있는 김병장의 고향도 경주였다. 대학을 가던, 회사를 가던, 군대를 가던, 고향 사람은 언제나 반가운 법이다. 외로운 객지 생활에서 자신이 자란 추억이 있는 고향 사람은 특히나 각별하니 말이다. 김병장은 나에게 호의적인 말투로 이런저런 질문을 하였다.
"학교는 어디?"
"XX고등학교 나왔습니다아!"
"몇살이지?"
"23살입니다아!"
"얼레! 너 잘하면 유병장 알겠네?"
유...유병장? 그사람이 누구지? 김병장은 연신 반가워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알고보니 김병장은 친한 후배인 유병장이라는 사람과 동반입대를 하였다. 유병장은 나와 같은 나이라고 하였다. 경주라는 동네가 원체 좁다보니, 같은 나이의 학년은 초, 중, 고등학교에서 한번쯤은 만날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머릿속으로 유씨로 시작되는 친구들을 떠올려 보았다. 대략 5, 6명의 친구들이 생각났다. 설마 그들 중에 한명이 이 곳에 있는 걸까? 와우 그러면 완전 대박일텐데! 나는 설레기 시작하였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얼마후, 소대가 결정되었고, 나는 김병장과 같은 소대인 3소대로 갔다.
소대에 들어서니, 기라성 같은 고참들이 나를 보며 음흉하게 웃고 있었다. 하나같이 무섭게 생겼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태반일텐데 말이다. 심이병과 김일병은 나의 떠블백을 풀더니 관물대 정리를 해주었다. 나는 그저 각잡고 앉아서 분위기를 살피고 있었다. 침상 반대편에는 조상병이 나를 보며 씨익 웃고 있었다.
"여기 경주사는 놈 왔다메?"
"이이벼어엉 가츠! 네에엣!"
어디서 산적같은 녀석이 내무실로 들어오더니 대뜸 나를 찾았다. 근데 이녀석... 정말 무섭게 생겼다. 입대전 중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도 볼 수 없었던 험악한 얼굴이었다. 14억분의 1의 사나이다! 나중에 고참이 알려준 건데, 별명이 헬보이라고 하였다. 산적같은 녀석은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눈과 눈이 마주쳤는데, 이녀석 어딘가 낯이 익다! 근데 기억이 안나...
"야 너 나 모르냐?"
"잘...잘모르겠습니다!"
"이색히 어디서 보긴 본 거 같은데? 너 혹시 OO중학교 나왔어?"
"네 그렇습니다!"
"얼레 나랑 같은 학교 나왔네!"
그랬다. 유병장과 나는 같은 중학교 동창이었다. 하지만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3년내내 같은 반을 한번도 한 적이 없기에, 제대로 대화 한번 한 적도 없었다. 그래도 복도에서 마주치기는 한 거 같다. 유병장은 무척이나 반가워 하였다. 나를 데리고 담배를 피러 나갔다.
"반갑다! 친구야!"
"네 그렇습니다!"
"말놔 임마! ㅋㅋㅋ"
"아닙니다아! 괜찮습니다아!"
"아나 이색히 위장군기 쩌네! ㅋㅋㅋ"
사실, 말을 놓고 싶었는데, 양 옆에는 고참들이 바글바글 하였다. 하나같이 새로 온 나를 주시하고 있는 시점에서 대놓고 말을 놓을 수 없었다. 그렇게 유병장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며칠후, 폭풍구보편에 소개되었듯이, 나는 아침구보를 낙오하였고 분대장으로부터 금연을 지시받았다. 그리고 한동안 일병들의 정신교육에 여념이 없었다. 나는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곳이 정녕 지옥이구나! 얼마나 갈굼을 먹고 있었을까?
"이것들이 지금 신병 붙잡고 머하는거여? 확 다 갈아마셔버릴라!!"
영화 친구의 한 장면처럼 유병장이 떡하니 나타났다. 헬보이라는 별명답게 유병장은 중대에서 가장 무서운 고참이었다. 일병들은 기겁을 하며 걸음아 나 살려라~! 모드로 쏜살같이 도망갔고, 유병장은 나의 어깨를 두들기며 담배 한개비를 주었다.
"가츠야 담배피고 싶지! 한대 펴라!"
"흑흑... 아닙니다!"
"아따 걱정말고 피라니깐!"
"감... 감사합니다!"
이미 말 놓을 타이밍을 놓친지라, 그냥 맘 편하게 계속 존대하였다. 당시에는 동창이 아니라 마치 든든한 친형같았다. 그와 함께라면 나의 군생활에 어떠한 장애물도 없을 것만 같았다. 그와 함께라면 그 곳이 설사 지옥이라고 갈 수 있었다. 그 후, 작업이나 교육훈련때마다 유병장은 항상 나에게 다가와서 든든한 방패가 되어 주었다.
"너 유병장님이랑 동창이라메?"
"네 그렇습니다!"
"중학교 때도 저렇게 무섭게 생겼냐?"
".........."
힘든 작업을 할 때마다 유병장은 나를 데리고 놀았다. 내 옆으로는 고참들이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무거운 돌과 나무를 낑낑대며 나르고 있었다. 나는 애써 못본 척하며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유병장에게 고향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말, 아는 사람 한명이 군생활을 180도 바뀌게 해주는 순간이었다.
심이병은 조상병과 함께 커다란 나무를 앞 뒤로 들고 지나가고 있었다. 딱봐도 좋지 않은 상황이다. 심이병은 나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조상병에게 또 한소리 듣고 있다. 그의 뒷모습은 유난히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행복도 한 때였다. 절대 와서는 안될 날이 와버렸다.
당시 말년 병장이었던 유병장의 전역일이다. 중대원들은 모두 연병장에 도열하여 그들의 전역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으로 떠나가는 그들을 배웅하였다. 단 한명! 울고 있는 자가 있었으니 바로 나였다!
"왜 벌써 가는거야! 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되었는데..."
그들은 중대 사열대 위에서 마지막 작별의 인사를 하고는 내려와서 일일이 악수와 포옹을 하였다. 곧 유병장이 나에게 다가왔고, 마치 물가에 내 놓은 아이를 바라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 보았다.
"가츠야 나 먼저 간다!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잘 지내! 경주서 보자!"
"가... 가지마! 안 가면 안돼? 꼭 가야 돼?"
"응! 꼭 가야 돼! ㅋㅋㅋ"
그렇게 그는 나를 두고 떠났고, 고참들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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