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전역에서 만날 수 있는 기념비!"
캐나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사실 중 하나가 바로 도시 곳곳에서 만날 수 있었던 수많은 기념비였다. 벤쿠버, 토론토, 오타와 등과 같은 대도시는 물론이거니와 새스커툰 같은 작은 도시라 할 지라도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라면 어김없이 조국과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자리잡고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대표적인 격전지나 박물관 같은 곳에 가야만 겨우 볼 수 있는 반면 캐나다에서는 정말 어디를 가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이는 분명 정부와 국민 모두가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지 않고 있으며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는 평화와 자유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깨닫게 해주었다.
"우리나라를 지켜준 캐나다군!"
평소에도 캐나다에 대한 이미지는 우호적인 편이었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더욱 더 좋아지게 되었다. 사실 캐나다 하면 평화로운 국가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지만 세계 전쟁사를 놓고 본다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캐나다는 초기 식민지 시대 때부터 영국과 프랑스의 끊임없는 영토 전쟁에 시달려야 했고 나아가 미국으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어진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 대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등 거의 모든 전쟁에 참전하였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 실종자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
"저는 커서 멋진 군인이 될 거예요!"
지금 이 시간에도 기념비 앞을 지나는 시민들은 머나먼 전장에서 쓰러져간 이름 모를 병사들의 넋을 추모하고 있다. 그만큼 캐나다에서 군인은 그 어떤 직업만큼이나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으며 대우 또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하였다.
이는 캐나다 정부의 관심과 노력이 얼마나 지극정성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분명 우리나라도 수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목숨을 다해 조국을 위해 희생하였는데 말이다.
"오타와 강변에 위치한 캐나다 전쟁 박물관!"
캐나다의 수도인 오타와에는 수많은 박물관과 미술관이 운영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가볼만한 곳을 꼽으라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캐나다 문명 박물관과 전쟁 박물관을 추천할 수 있겠다. 운좋게 이번 여행을 통해 두군데 모두 가이드 투어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소 군에 관심이 많다보니 캐나다 전쟁 박물관이 더욱 기억에 남는 거 같다.
약속 시간에 맞춰 박물관에 들어서자 내부 투어를 안내해주는 가이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특히 한국에서 군관련 취재를 하고 있다니 하니 더욱 따뜻하게 맞이해 주셨다. 박물관 구석 구석을 돌아다니며 하나라도 놓칠세라 자세한 설명을 해주셨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의 영어실력이 문제였다.
"캐나다 역사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초기 캐나다는 영국과 프랑스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영토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영국의 승리로 식민지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프랑스계의 반발이 너무나도 강했기 때문에 지금도 퀘백주는 말만 영연방의 캐나다이지 실제로는 프랑스라고 하여도 무방할 정도이다.
"캐나다의 독립을 이끌어 낸 제 1차 세계대전!"
제 2갤러리는 제 1차 세계대전에 관한 주제로 전시되어 있다. 캐나다는 영연방의 일원으로 제 1차 세계대전에 적극 참전하게 되었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당시 캐나다의 여성들 또한 전쟁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많은 여성들이 군수품 공장에서 일을 하거나 간호사로 전쟁에 직접 참가하였다고 한다. 이에 정부는 여성들의 공을 인정하여 1918년 모든 여성들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베르사유 조약에서 캐나다는 당당히 연합국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하나의 독립된 국가로 서명을 하기에 이른다. 이는 캐나다의 주권을 인정받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되어 주었으며 훗날 법적으로도 완벽하게 독립할 수 있었고 정식 명칭 또한 캐나다 자치령에서 캐나다로 변경되었다.
"독립국가 캐나다의 명성을 전 세계에 떨치다!"
제 3갤러리는 제 2차 세계대전에 관한 주제로 꾸며져 있다. 갓 독립한 캐나다는 더이상 영국의 노골적인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으로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으며 제 1차 세계대전에서처럼 많은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전 세계의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되었다.
특히 네덜란드와 폴란드에게는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존재로 큰 도움이 되어주었기에 지금까지도 양국간의 관계는 매우 우호적이다. 세계적인 규모의 오타와 튤립축제만 보아도 당시의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는 매년 수만 송이의 튤립을 캐나다로 선물하고 있다.
나아가 캐나다 산업 발전에도 가시적인 성과를 이뤄낼 수 있었고 남성들의 전쟁 참여로 인해 여성들의 활동이 급부상하게 되었다. 또한 전쟁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 때문에 캐나다의 민족성이 더욱 굳건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6.25 전쟁에 참가한 캐나다!"
제 4갤러리는 냉전 시대에 관한 이야기로 꾸며져 있다. 특히 주목해야할 부분이 바로 캐나다의 6.25 전쟁 참전이다. 당시 캐나다는 가평일대에서 중공군의 무지막지한 인해전술을 막아내야만 하는 절대절명의 임무를 부여받았다. 중공군은 화천 사창리 지역을 돌파하여 가평 방면으로 진군, 연합군의 경춘 보급노선을 차단함과 동시에 수도권을 장악하고 남하할 계획이었다.
그만큼 가평은 연합군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전장이었다. 당시 캐나다군의 지휘관은 제임스 R. 스톤 중령으로 이미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시실리 전투, 이태리 전투, 네덜란드 전투 등 수많은 전장을 누비며 맹활약을 한 전쟁 영웅이었다.
결과적으로 3일간 치열하게 벌어진 가평 전투에서 캐나다군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대승을 이뤄내며 6.25 전쟁사에서 가장 훌륭한 전투로 평가받게 되었다. 가평 전투에서 캐나다군의 사망자는 10명인 반면 중공군은 1만명이 훌쩍 넘었다고 한다.
"나의 작계지역이기도 한 가평!"
문득 당시 가평전투의 전장을 보니 어디선가 많이 본 것만 같았다. 다름아닌 군 시절 내가 복무한 부대의 작계지역이었다. 화천에 위치한 사창리 역시 현재 이기자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이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부대는 도경계선을 넘어 경기도 가평까지 커버하는 중부전선의 수호자였다. 덕분에 죽도록 산만 넘고 다녔지만 말이다.
하지만 60년 전 목숨을 바쳐 가평을 사수한 캐나다군을 생각한다면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캐나다는 6.25 전쟁에서 309명이 사망하고 1203명이 부상하였으며 32명이 실종되는 등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의 희생을 치뤄야만 하였다.
언제 어디라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어김없이 나타나 손을 내밀어 준 캐나다, 이와 같이 그들의 숭고한 희생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캐나다가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캐나다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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