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이 끝나는 곳!"
외국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대도시 위주로 제법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 이제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 이상 그 끝을 예측할 수 없는 골목길을 걷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골목길을 마주하면 일부러 들어가보고 싶은 마음까지 생길 정도이다. 오늘 찾아간 인천 배다리는 유독 유독 골목길이 많았다.
"인천 개항기 문화유산과 삶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배다리!"
인천 동구에 위치한 배다리는 주로 송현동과 금곡동, 창영동, 금창동 일대를 말하는데 과거 항구에서부터 조성된 수로를 통해 작은 배들이 철교 아래까지 드나들었다고 하여 지금의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하지만 배다리에는 아픈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1904년 러일전쟁 이 후 일본군에게 내쫓긴 사람들이 모여 살게 되면서 형성된 배다리 일대 마을은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맨손으로 터전을 일구어야만 하였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배다리 곳곳에는 당시 서민들의 삶과 애환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인천 배다리 일대 관통도로를 전면 재검토!"
배다리에 가면 전통공예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이 곳에는 각종 공예품과 헌책방거리, 근대 교육의 요람, 기독교 선교의 시발지 등 마치 시간이 멈춘듯 거리 곳곳에 근대문화유적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되어 있다. 하지만 인천 중구와 동구를 관통하는 산업도로 건설계획에 따라 한 때 이 곳이 사라질 뻔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다행히 얼마전 인천시의 발표에 따르면 배다리가 가지는 역사와 문화공간의 중요성과 재정 부담으로 인해 이 구간의 공사는 유보한다고 밝혔다.
"지금은 겨우 명맥만 이어가는 헌책방거리!"
학기 초만 되면 교과서과 참고서를 사고 파는 학생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는 헌책방거리, 하지만 오늘날의 모습은 다소 초라하기 짝이 없다.
한창 때는 40여 곳의 책방이 영업을 하였지만 지금은 손에 꼽을 정도로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아마 이 곳에 있는 책방들의 서적을 모두 합하여도 도심에 위치한 대형문고의 절반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우와! H2다!"
"오오! 오빠 이니셜이네!"
"야구계의 슬램덩크같은 존재야!"
"헌책방이 우리에게 주는 매력은 무엇일까?"
평일 오후였음에도 불구하고 책방마다 손님들로 가득하여 다소 놀랐다. 물론 과거처럼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찾는 학생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득 내가 살던
고향에 헌책방이 있었다면 분명 나는 집 안에 있는 책이란 책은 모조리 들고 나왔을 것이다.
또한 최근에는 학생들 뿐만 아니라 옛 추억과 향수를 느끼고 싶어하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다고 하였다. 하긴 나 역시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이 곳을 찾아왔으니 말이다.
"거리 곳곳에 위치한 문화공간!"
헌책방 거리를 나와 창영동으로 들어서면 미술대안 공간인 스페이스 빔을 비롯하여 다양한 문화공간을 만날 수 있다. 이 곳에 있는 예술가들은 문화예술거리를 조성하기 위해 허름한 건물 벽면마다 동네의 풍광을 담은 멋드러진 벽화를 그리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골목 전체가 마치 전시관을 방풀케하다!"
일반적인 벽화거리처럼 한 구역에 집중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띄엄띄엄 그려진 벽화를 찾아 다니다 보면 어느새 동네 한바퀴를 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얼마나 걸었을까? 아이들의 우렁찬 기합소리가 나의 발길을 멈추게 하였다.
"내일은 야구왕!"
기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창영초등학교 야구부였다. 아직은 제 몸만한 글러브가 엉성하기 그지 없었지만 구슬땀을 흘리며 연습하는 모습이 실로 대견스러웠다.
창영동에 위치한 창영초등학교와 영화초등학교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교육기관이다. 우선 창영초등학교는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로 과거의 이름은 인천공립보통학교이다. 그리고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영화초등학교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초등교육기관으로 1892년에 설립된 사립학교 영화학당의 후신이다.
"오빠! 여기 내가 졸업한 초등학교다!"
"으응? 진짜? 엘리트 코스를 밟았구나!"
오랜 역사를 지닌 초등학교답게 이들 학교는 인천을 대표하는 명문학교로 이름을 날렸다. 과거 전국의 상이란 상은 모두 창영초등학교와 영화초등학교에서 다 받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금도 교문 앞에는 상패와 트로피를 제작하는 기념품 상점이 줄지어 위치하고 있었다.
"15년 전 꼬꼬마 숙녀를 만나러 갑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영화초등학교 본관동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무척 조심스러웠다. 그녀 역시 졸업 후 처음 방문하는 자리였기에 당시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듯하였다.
본광동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신이 나서 교실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나에게 설명해주었다. 나무로 된 교실 바닥은 걸을 때마다 삐그덕거리며 불안한 소리를 내었지만 그녀는 당연하단 듯이 당시에 선생님들이 매일같이 뛰어다니지 말라며 주의를 주었다며 해밝게 웃어보였다.
비록 나의 눈에는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교실이었지만 그녀에게만큼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곳임에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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