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밴쿠버를 떠나야 한다!"
꿈만 같았던 밴쿠버에서의 하루가 모두 흘렀다. 마음같아서는 며칠이고 머물고 싶었지만 본격적인 캐나다 횡단을 떠나기 위해 비아레일을 탑승하는 퍼시픽 센트럴 역으로 이동하였다. 캐나다 전역을 운행하는 비아레일의 서부 종착점답게 퍼시픽 센트럴 역의 규모는 정말 크고 웅장하였다. 역 안에 위치한 맥도날드에서 가볍게 저녁을 해결하고는 대합실에서 휴식을 취하며 탑승 하기만을 기다렸다.
비아레일 직원들은 대부분 중년의 어르신들이 많았는데 모두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친절하여 깜짝 놀랐다. 짧은 영어실력 덕분에 짐을 맡기는 것부터 탑승까지 밑도 끝도 없이 어리버리거렸지만 친자식 대해주듯 살갑게 챙겨주는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마치 항공사 발권 부스같은 비아레일!"
캐나다를 횡단하는 특급호텔답게 비아레일은 항공사 발권부스처럼 꾸며져 있었다. 먼저 예약된 티켓을 확인하고 가지고 있는 짐을 부치면 모든 탑승 수속이 완료된다. 이미 오전에 방문하여 티켓을 발권하고 무거운 여행용 트렁크를 맡겨놓았기에 다시 찾아서 재결속하였다.
이번에 타게 된 비아레일 캐나디언 노선은 밴쿠버에서 금, 일, 화요일마다 주 3회 운행되며 재스퍼, 애드먼튼, 사스카툰, 위니펙을 비롯하여 캐나다 전역에 정차하는 대륙 횡단 열차이다.
한번에 쉬지않고 토론토까지 타고 가면 기차에서만 4박을 해야 되기 때문에 탑승 직전 만반의 준비를 하여야만 한다. 물론 나는 한번에 가지 않고 중간에 사스카툰과 위니펙에서 각각 2박 3일동안 자유여행을 하기 때문에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참고로 사스카툰까지는 약 36시간이 소요된다. 밴쿠버에서는 저녁 8시에 출발하기 때문에 타자마자 꿈나라로 향하면 된다.
"당신의 나의 구세주!"
난생 처음 타보는 비아레일때문에 하마터면 대형사고를 칠 뻔하였다. 사진 속의 파란옷을 입은 아저씨 옆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역 주변을 촬영하기 위해 잠깐 떠났었다. 그러다 문득 비아레일 티켓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진리의 캔레일패스!"
내가 가지고 있던 티켓은 사스카툰, 위니펙, 토론토, 킹스톤, 오타와, 몬트리올, 퀘백을 갈 수 있는 캔레일 패스였다. 캔레일패스는 21일 동안 7개 구간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티켓으로 이번 캐나다 횡단을 할 때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가격은 세금을 제외하고 성인 기준 비수기 $606, 성수기 $969이다.
쫄깃해진 심장을 부여잡고 쉬고 있었던 의자로 뛰어가니 파란옷의 아저씨가 해밝게 웃으며 나의 티켓을 흔들고 있었다. 안그래도 걱정이 되서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었다며 항상 조심하라고 하였다.
"승리의 비아레일 라운지!"
비아레일 탑승구 쪽에 위치한 라운지는 원래 비니지스 클래스에 해당되는 일등석 침대차 이용객들이 이용할 수 있었지만 쿨한 캐나다답게 들어가서 마음껏 구경하고 쉬어도 괜찮았다. 특히 이 곳에는 각종 음류와 비스켓도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전투식량을 챙기듯 탑승 전 듬뿍 가져가도록 하자.
비아레일은 객차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일등석 침대차의 경우에는 전 일정 식사가 포함되어 있으며 캐나다의 모든 와인을 마음껏 맛볼 수 있다. 또한 전담 승무원이 항시 서비스를 도와주며 샤워 시설이 완비된 안락한 침대칸에서 최고의 기차여행을 즐길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로 기념일을 맞이하였거나 황혼을 즐기는 노부부들이 많이 이용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캔레일패스는 좌석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한 이코노미석이기 때문에 공용화장실을 사용하는 일반석이다. 또한 식사 또한 직접 돈을 주고 먹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래도 서양인 체격을 고려한 좌석은 국내 기차에 비해 훨씬 크고 편안하였기 때문에 장시간 탑승하여도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였다. 실제로 대다수의 젊은 연인이나 학생들은 이코노미석에서 4박 5일동안 타고 토론토까지 이동하는 포스를 보여주었다.
"탑승 시작! 무브무브!"
이노코미 클래스의 경우 일등석과는 달리 정해진 좌석이 없기 때문에 탑승을 하게 되면 빈자리에 알아서 앉으면 된다. 여기서 팁을 주자면 일행끼리 가더라도 일단 같이 앉지 말고 혼자 앉아야 된다. 밴쿠버에서 출발하는 열차이기 때문에 빈자리가 많은 편이다. 괜히 사이좋게 같이 앉아갔다가는 밤에 잠을 잘 때 불편하다.
앞서 말한듯 좌석이 꽤나 크고 넓기 때문에 여성들의 경우 충분히 옆으로 누워서 편하게 잘 수 있다. 물론 180이 넘는 나조차도 무릅을 접으면 옆으로 눕기가 가능하였다. 심지어 객차마다 마주보는 4인용 좌석도 몇군데 위치하고 있는데 자그만한 체구의 여성이 혼자 이용하는 것도 목격할 수 있었다.
"근데 우린 몰랐어!"
"사이좋게 손잡고 같이 탔어!"
"비아레일의 핵심! 360도 파노라마 라운지!"
비아레일에 오르자마자 너무 피곤하여 제대로 둘러보지도 않고 바로 깊은 잠에 빠졌다. 얼마나 잤을까? 창 밖은 이른 새벽임에도 무척 밝았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비아레일 곳곳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비아레일이 자랑하는 360도 파노라마 라운지였다. 복층 구조로 된 파노라마 라운지는 가벼운 스낵과 햄버거, 샌드위치를 파는 1층 스낵바와 중앙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사진에서처럼 환상적인 주변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360도 파노라마 라운지가 위치하고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라면?"
아무도 없는 깊은 밤, 360도 파노라마 라운지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칵테일을 마시며 밤하늘의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보며 사랑을 속삭여보자. 그리고 이어지는 달콤한 키스! 상상만 하여도 진심 황홀하다. 하지만 현실은 남자와 함께 단둘이 떠난 삭막한 여행이었다.
"그럼 밥이라도 잘 먹어야지!"
19일 동안 캐나다 횡단을 하면서 평균적으로 가장 만족스런 식사를 한 곳을 다름아닌 비아레일 식당칸이었다. 실제로 가는 곳마다 제법 유명한 맛집, 으리으리한 특급 호텔의 조식 등 부지런히 먹었지만 비아레일 식당칸은 정말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준비되는 식당칸은 미리 예약을 하여도 되지만 식사 시간이 되면 승무원들이 돌아다니면서 알려준다. 물론 나는 항상 미리 가서 대기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야야! 아직 준비 중이야!"
"빨리 좀 해요! 배고파 죽겠어요!"
몇번 식사를 하다보니 자연스레 식당칸 직원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만약 토론토까지 한번에 쉬지 않고 갔었다면 군시절 취사병 아저씨들과 몰래 라면을 끓여먹듯 아예 식당칸에서 죽치고 놀았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비아레일 식당칸은 팁을 주지 않다도 되었기에 이 또한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래도 좀 비싼 거 같은데?"
"노노! 진심 제 값하는 가격임!"
메뉴표를 보면 다소 부담스런 가격이라고 생각할 수 도 있겠지만 앞서 말한듯 일반 레스토랑에서 같은 돈을 주고 먹는다면 무조건 비아레일 식당칸의 손을 들어주고 싶을 정도로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지금 이 글을 작성하면서도 그 때 먹은 음식들이 떠올라 너무너무 힘들다.
"자네! 코레일에서 일해보지 않겠나?"
메뉴를 주문하면 기본으로 빵과 커피를 준다. 특히 커피는 무한 리필이 가능하여 열심히 마셨다. 또한 작은 병에 담긴 과일쨈들은 센스있게 미리미리 챙기도록 하자. 그 때 챙긴 과일쨈이 아직도 내 방 냉장고에 남아 있을 정도이다.
종이 포장된 작은 물티슈도 여행 시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으므로 역시 듬뿍 챙기도록 하자. 참고로 깔끔한 레인맨은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고 물티슈를 사용해 보았는데 강력한 소독효과 때문에 새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며 나에게 적극 권유하였지만 쿨하게 무시하였다.
"아나! 밥 먹는데 밥맛 떨어지게!"
"미안해요! 조지형! 샘형!"
비아레일 식당칸의 또다른 매력은 4인용 식탁이라는 점이다. 물론 4인 일행이라면 상관없겠지만 혼자거나 둘이 왔다면 새로운 여행객들과 함께 식사를 하며 멋진 친구가 될 수 있다.
조지형과 샘형은 식사를 하는 내내 무한한 인내심을 보여주며 나와의 소통을 이어갔다. 마지막 목적지까지 무사히 가기를 바란다며 진심어린 걱정과 격려도 잊지 않았다. 아마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였으면 좋겠다.
"이제 금단증세와의 싸움!"
비아레일에서도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한국에서 미리 캐나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를 가입하여 출국하였다.
사실 평소에는 번거로운 것을 싫어해서 여행갈 때 굳이 노트북을 챙겨가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 들고간 LG 엑스노트 P210은 사이즈도 무척 아담하였고 성능도 제법 괜찮았기 때문에 대만족이었다. 여행 내내 P210 덕분에 지루하지 않고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단점은 캐나다가 원체 넓기 때문에 곳곳에 휴대폰 전파가 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도시나 역주변에서만 휴대폰 이용이 가능하였다.
어찌되었던 하루종일 아니 일주일 내내 비아레일을 탑승하여도 나름 재밌게 보낼 수 있을 듯 하였다. 다만 비아레일 전체가 금연이라는 사실만 빼고 말이다. 특히 식사를 하고 난 뒤에 밀려오는 담배 한개비의 유혹은 실로 치명적이었다.
"바로 지금이 기회다!"
비아레일 캐나디언 노선은 하루에 3, 4차례 정도 정차를 한다. 주로 작은 간이역에서는 잠깐동안 승객만 싣고 떠나기 때문에 내릴 수 없지만 큰 도시의 역이나 급유를 정차하는 역에서는 내려서 맑은 공기를 마쉬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다만 대다수의 승객들이 맑은 공기 대신 담배를 선택하였지만 말이다.
"비아레일은 주유 중!
"나는 니코틴 충전 중!"
그렇게 꿀맛같은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힘찬 경적소리를 울리며 육중한 비아레일은 동쪽을 향해 끝없이 질주하였다.
과연 다음 목적지는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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