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흑 배고파!"
"진작 많이 먹어둘걸!"
어느새 고려산에 올라온 지도 5시간이 훌쩍 넘었다. 고려산 입구에서 맛본 도토리묵과 잔치국수가 머릿속에서 계속 아른거린다. 진달래 군락지에서의 촬영을 모두 마치고 다음 코스인 낙조대를 향해 서둘러 발길을 재촉하였다. 진달래 군락지에서 낙조대까지는 약 4km의 능선길이다.
"꿀맛같은 아이스크림!"
다행히 정상 부근에도 등산객을 위한 먹거리 장터가 영업 중이었다. 냉큼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는 쪽쪽거리며 신나게 빨아먹었다. 순간 불쌍했던 군시절이 떠올랐다. 행군을 하다 작은 구멍가게라도 만나면 당장 뛰어들어가 시원한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싶었지만 단지 군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나에게 결코 허락되지 않은 자유였다.
"후훗! 그땐 그랬지! 이제는 추억이야 추억!"
"병력동원소집통지서가 발송되었습니다!"
"........."
"정이 가득한 이정표!"
능선길을 따라 이동하는데 곳곳에 먼저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고려산은 과거 오련산으로도 불렸는데 이는 적석사 대웅전 상량문의 기록에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지난 글에서 백련사를 소개할 때 언급하였듯이 장수왕 4년, 416년에 인도에서 온 천축조사가 이 곳에서 다섯 색깔의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 있는 오련지를 발견하였다. 천축조사는 연꽃을 바람에 날려 떨어진 곳에 절을 건립하였는데 이 절의 이름이 지금의 적석사, 백련사, 청련사, 황련사, 흑련사이다. 현재는 적석사, 백련사, 청련사만이 남아 있다.
또한 고려산은 고구려의 명장인 연개소문이 태어난 곳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그의 혼을 이어받은 군부대가 곳곳에 위치하여 국방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능선길!"
능선길이라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을거라 생각하였는데 연이어 나타나는 내리막, 오르막길이 나를 지치게 하였다. 확실히 요즘 운동부족인 듯 하다. 예전같았으면 완전군장을 메고도 안방 드나들 듯 쉽게 뛰어다녔을 법한 코스인데 말이다.
"부끄러운 줄 아세요!"
"아장아장 걸어가는 꼬마 숙녀들!"
낙조봉을 코 앞에 두고 귀여운 꼬마 숙녀들을 만났다. 나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니 나의 저질체력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이게 다 무거운 카메라때문이라고 핑계없는 무덤을 열심히 파본다.
"이름모를 비밀 공간!"
낙조봉을 코 앞에 두고 문득 발길이 드문 샛길을 발견하였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텐데 아직 해가 질려면 한참이나 남았기에 샛길로 들어가보기로 하였다.
주변에 군부대가 많았기에 인적이 드문 샛길로 들어가면 어김없이 군인들이 사용하는 교통호나 개인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의 예상을 깨고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멋진 휴식처가 나를 반겨주었다.
"오홋! 신선놀음이 따로 없구나!"
평평한 바위에 앉아서 눈 앞에 펼쳐진 강화도의 비경을 바라보니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연이은 취재와 시험, 여행 준비때문에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피로가 축적되어 만날 몸과 마음이 무거웠다.
바위를 침대 삼아,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이불 삼아 한참동안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고 나니 몸과 마음이 금세 상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그 곳에서 보내고 다시 낙조대를 향해 발걸음 옮겼다.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적석사 낙조대!"
혹시 강화팔경이라고 들어보았는가? 예로부터 강화의 풍광 좋은 여덟 곳을 골라 사람들을 이를 강화팔경이라 불러왔다.
지금 도착한 적석사 낙조대에 바라보는 서해의 아름다운 낙조를 비롯하여 전등사 삼경의 목탁소리, 보문사에서 새벽에 서해를 관망할 때 들려오는 파도소리, 마니산에서 관망하는 서해의 경치와 단풍, 산좋고 물좋은 함허동천, 정수사의 풍경 소리, 내가저수지의 밤 낚시 등불, 철산리에서 보는 북한 땅이 강화팔경으로 불리운다.
"다정다감한 부처님의 반가좌사유상!"
낙조대 중앙에는 적석사에서 모시는 부처님이 인자한 미소를 띄며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메고 있던 배낭을 벗어던지고는 해가 질 때까지 휴식을 취하기로 하였다. 어김없이 하늘을 바라보며 대자로 누워 단잠을 청하였다. 이상하게 산에만 오면 자꾸 눕게 된다.
"입 돌아가겠다!"
얼마나 잤을까? 주변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고 매서운 바람이 나의 몸을 엄습해왔다. 역시 산은 춥다. 더 이상 자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고 일어나 계속 몸을 움직이며 열기를 내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배고픔이 밀려왔다.
"우씨! 그냥 내려갈까?"
"기다려! 금방 내려갈게!"
마치 내 말을 들은걸까? 붉게 물든 태양은 신속하게 바다를 향해 떨어졌다. 이른 새벽 동해 정동진에서 불타오른 태양은 낙조봉을 가로질러 서해로 떨어지게 된다.
고로 적석사 낙조대는 일출과 일몰을 한번에 즐길 수 있는 신기한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강화팔경을 눈 앞을 두고 내려간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근데 왜 산 뒤로 떨어지는거지?"
".........."
적석사의 낙조는 봄부터 계절별로 해가 떨어지는 위치가 달랐다. 일반적으로 봄부터 가을까지는 석모도와 교동도 사이, 겨울에는 석모도 위로 해가 진다고 하였다.
비록 바다 위로 떨어지는 낙조는 만날 수 없었지만 이 또한 강화팔경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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