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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에 위치한 문래예술공장!"
어느덧 서울로 상경한지도 3개월째에 접어든다. 지난 여름, 보금자리를 구하기 위해 신도림역에 내렸다. 지하철 노선도를 보고 무작정 결정한 곳이다. 마침 운 좋게도 괜찮은 매물을 구할 수 있어 앞 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계약을 하였다. 그러고 보니 그날은 유난히 무더웠다.
오피스텔 창문 너머로 철길이 보인다. 1호선과 KTX, 일반열차 등이 다니는 철길은 어림잡아도 5, 6개의 철로로 쉴 새없이 열차가 지나간다. 그 너머로 영등포 철재상가가 위치하고 있다. 지금은 폐허가 되어 버린 휑한 곳이다. 다시 그 너머로는 신세계백화점과 타임스퀘어의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 보인다.
지금 영등포는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곳이다. 과거의 공장들은 하나 둘씩 사라져가고 높다란 빌딩숲이 하나 둘씩 건설되고 있다. 그 중심에 문래창작촌이 위치하고 있다.
문래창작촌은 문래동 3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예술작업실 마을이다. 공장 이전 정책과 재개발로 인해 기존의 업체들이 옮겨가자, 홍대, 대학로 등지에서 활동하던 젊은 예술가들이 알음알음 찾아와 비어 있는 철공소 공간에 작업실을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자생적 예술마을이다.
누구도 그들을 부르지 않았다. 단지 좀 더 싼 곳을 찾다보니 폐허가 된 공장으로 오게 된 것이다. 지금은 70여개의 작업 공간에 약 170여 명의 예술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정해진 장르도 없다. 회화, 설치, 조각, 디자인, 일러스트, 사진, 영상, 서예, 영화, 패션, 애니메이션 등의 시각 예술 장르는 물론이거니와 춤, 연극, 마임, 거리 퍼포먼스, 전통예술, 음악 등의 공연예술가 그리고 비평, 문화기획, 시나리오, 자연과학까지 전 분야에 걸쳐 골고루 형성되어 있다.
지난 1월, 서울시 컬처노믹스 사업의 일환으로 지역민 조차도 발길이 뜸한 이 곳에 문래예술공장이 들어섰다. 유휴시설 활용을 통해 예술로 도시를 재생하는 프로젝트인 것이다. 예술가에게는 창작 지원을, 지역민에게는 문화적 소통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다.
"드디어 첫 페스티벌이 개최된다!"
지난 8개월간 연습실로, 작업실로, 때로는 공연장으로 예술가들의 상상과 열정을 담아냈던 문래예술공장에서 올 가을 에너지 넘치는 젊은 예술가들이 시민들과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페스티벌의 제목에서 얼마나 만나고 싶은지 여실히 확인할 수 있다.
"우리 지금 만나요! MEET!"
10월 8일부터 11월 5일까지 진행되는 문래예술공장 페스티벌 MEET은 문래창작촌 예술가들은 물론, 무용, 음악, 미술 분야의 가장 주목받고 있는 예술가들이 모여 공연과 전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들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마침 찾아간 날은 극단 몸꼴의 신작 신체악극, 빨간 구두의 공연이 있는 날이다. 그간 깊이 있는 신체극으로 주목받아온 극단 몸꼴은 지난 2002년 창단하여 창단하여 불,꼴이란 작품을 시작으로 시민들과 만나왔다. 그들의 공연은 문래예술공장 앞 골목길에서 시작되었는데 무척 신선하였다.
"제일 중요한 여배우가 없다?"
버스에서 내린 연기자는 대뜸 여배우가 없다며 죄송하다고 하였다. 그렇게 계속 시간끌기를 반복하자, 급기야 관객 중에 한 여성이 연기자를 향해 화를 내었다.
"지금 바쁜 사람들 불러놓고 뭐 하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아니 죄송하다면 다예요!"
"여배우가 없는 걸 어떡합니까?"
그제서야 그 관객이 여배우라는 것을 눈치챘다. 길거리 무대, 시작부터 관객들을 보이는 저 뻔뻔함, 확실히 기존 공연들의 틀을 깬 신선한 작품이었다. 정식 공연은 실제로 관객들이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펼쳐진다고 하였다.
"우리가 떠나 보낸 소외된 예술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다!"
역동적인 몸짓과 음악이 보는 관중으로 하여금 미소를 자아낸다. 빨간 구두는 시각이 모든 감각의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 보이는 것, 그로 인한 욕망의 그늘에 가려져 우리가 보지 못하는 세상과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남들 보여지고 싶고, 주목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여주인공 정혜가 빨간 구두를 신고 떠나는 여행을 그려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만나는 욕망과 집착으로 뒤틀린 인물들은 그녀의 빨간 구두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과연 그녀는 무사히 여행을 마칠 수 있을까?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버스는 우리 곁을 떠나갔다.
"사람들이 뛰어내리고 있어!"
문래예술공장 내부 곳곳에서는 예술가들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계단의 한 쪽 벽면에는 영상을 이용한 시각예술이 관객들을 놀라게 하였다. 확실히 상상과 열정이 가득한 젊은 예술가들이 많아서였을까? 평소 접하는 것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있었다. 작품 하나 하나 곰곰히 생각하게 만들어 주는 매력이 있었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숨을 쉰다!"
지난 2007년 결성된 숨[suːm]의 멤버 박지하와 서정민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기이다. 그녀들은 직접 노래를 작곡하고 세 가지 이상의 악기를 연주하는 실력파 듀오이다. 단순히 숨의 의미가 좋아서 이름을 정했다고 한다. 생명과도 직결되는 숨이지만, 연주 함에 있어서도 호흡만큼 중요한 게 없다.
그녀들은 음악이 삶을 확인하는 중요한 도구이자 방법이라고 하였다. 살아오며 배우고 느낀 것들을 자연스럽게 음악으로 옮겨 그녀들만의 음악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그녀들의 공연!"
가야금과 피리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사실 오늘 행사가 아니었다면 서울에 계속 살면서도 이 곳을 방문할 일은 좀처럼 없었을 것이다. 거리 상으로는 오피스텔과 불과 300, 400미터 떨어진 곳이지만 많은 철로와 육중한 고가도로가 나의 발걸음을 막고 있었다. 아니 굳이 갈 필요성을 못 느꼈다.
하루 하루 바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너무 앞만 보고 달려가지 말자. 지금 이 시간에도 놓치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수많은 것들이 우리 등 뒤로 멀어지고 있다.
가끔은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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