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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이 뜬금없는 포스팅은?"
간밤에 인터넷을 하다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게 최악의 공격을 받았다. 급기야 눈물을 머금고 컴퓨터를 깨끗하게 포맷하여야만 하였다. 부랴부랴 필요한 자료들을 옮기다가 작년 여름 남아공에서 찍은 사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남아공 여행기는 아직 제대로 마무리가 되지 않았다. 더욱 엄밀히 말하면 요한네스버그에 도착하지도 않았다.
"12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요한네스버그 국제공항!"
남아공 요한네스버그로 가는 길은 정말 긴 여정이었다. 인천에서 홍콩까지 3시간 반, 홍콩에서 다시 12시간을 비행하고서야 요한네스버그 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피곤함도 잠시 게이트 입구부터 온통 월드컵 열기로 뜨거운 공항을 마주하니 덩달아 신이 나서 촬영하느라 정신없었다.
"웰컴 투 사우스아프리카!"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당연 남아공월드컵의 마스코트인 자쿠미였다. 남아공을 의미하는 국제표준국가코드 ZA와 월드컵이 열리는 연도인 2010에서 10을 뜻하는 아프리카 토착어, 쿠미를 조합한 합성어이다. 또한 월드컵을 전세계 축구팬들과 함께 즐기겠다는 의미로 원주민인 코사족 언어로 자쿠미는 어서오세요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특히 녹색머리의 자쿠미는 월드컵 사상 최초의 표범 마스코트로 생일은 1994년 6월 16일이다. 1994년은 남아공에서 흑인차별정책이 폐지되고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가 취임한 해이며 6월 16일은 1976년 소웨토에서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발생한 날이다.
"첫 방문지는 넬슨 만델라 생가!"
요하네스버그에서 남서쪽으로 16km 가량 떨어진 소웨토는 South Western Townships의 약자이다. 단어 그대로 남서부마을들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지역 주민들은 So Where To(그래서, 어디로)라고 부른다. 요하네스버그 인구의 25%인 150만명 가량이 거주하고 있는 소웨토는 과거 백인들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의해 박해받은 아프리카계 주민들의 박해의 상징적인 지역이기도 하다.
"남아공 최대의 흑인 거주지이자 우범지역!"
분리와 격리를 의미하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남 아프리카 백인정권에 의하여 1948년에 법률로 공식화된 인종분리 즉, 남아프리카 백인정권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정책을 말하는 것이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 벌인 남아공 백인정부와 흑인대표인 ANC와 넬슨 만델라간의 협상 끝에 급속히 해체되기 시작하여 넬슨 만델라가 민주적 선거에 의해 대통령으로 당선된 1994년에 완전히 폐지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모든 사람을 인종등급으로 나누어 백인, 흑인, 유색인, 인도인 등으로 분류하였으며, 인종별로 거주지 분리, 통혼 금지, 출입구역 분리 등을 하는 등, '차별이 아니라 분리에 의한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사상 유례가 없는 노골적인 백인지상주의 국가를 지향하였고, 당시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FIFA 월드컵과 올림픽 참가가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
사실 소웨토는 외국인에게 매우 위험한 곳이다. 거주 인구의 절대 다수가 빈곤층이었기에 생계형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하였다. 길거리에는 흑인들 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몇몇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집집마다 온통 전기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어 치안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프리카 특유의 유쾌함와 자유분방함이 그들의 표정에서 느껴졌다. 비록 힘들고 척박한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이지만 희망을 가지며 살아가고 있었다. 바로 그들에게 희망을 준 사람이 넬슨 만델라이다. 소웨토에는 1962년 반란선동 및 거주지 이탈 혐의로 그가 체포되기 전까지 머물었던 집이 위치하고 있다.
"이 곳이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생가!"
넬슨 만델라의 생가는 소웨토 빌라카지거리 8115호이다. 남아공 월드컵을 맞이하여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하기에 집 일부를 새로 페인트칠하며 새단장하였다고 한다. 입장료는 60랜드, 한국돈으로는 만원 정도이다.
"용기! 평등! 자유! 희망!"
안내인은 우리들에게 열심히 설명을 해주었지만 나의 짧은 영어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에 관해 설명하는 안내인은 자부심 가득찬 모습으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정말 평범한 집이군!"
넬슨 만델라의 집은 주변에 있는 다른 집과 별 차이가 없었다. 석면 슬레이트 지붕으로 덮혀 있는 빨간 벽돌집이었다. 이 곳에서 그는 조국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정부와 투쟁하며 살아왔다. 그 후 27년의 고된 감옥살이도 그의 투쟁을 꺽을 수 없었다.
"남아프리카에서 태어난 흑인에게 자유를 위한 투쟁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건물 내부는 생각보다 협소하였다. 좁은 방으로 이루어진 내부, 그는 매일밤 침대에 누워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미래에 대한 걱정, 불안보다는 희망을 꿈꾸며 자유를 얻고자 다짐하는 젊은 넬슨 만델라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였다. 한편으로는 넬슨 만델라가 투쟁을 하고 있는 모습이 일제 시대의 우리나라 독립운동과도 무척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결국 그는 남아공에 자유와 평등을 찾아 주었고, 1993년 12월 10일에 당시 현 남아공 대통령인 데 클라크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4년 4월 남아공 최초의 모든 인종이 참가하는 총선이 실시되었고, 넬슨 만델라는 첫 평등 선거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자신을 모함한 모든 세력을 용서하고 민족 화해 협력을 호소하며 경제 불황을 회복하는데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다.
넬슨 만델라의 생가를 떠나는데 소웨토의 푸른 하늘이 나를 배웅해주었다. 비록 아직 모두가 잘 사는 나라는 아니지만 그가 있었기에 모두라는 단어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문득 그가 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대단한 인간이 아니다. 단지 노력하는 노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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