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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경기장으로 들어서자 아르헨티나 응원객들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별 생각없이 손을 들어 인사하며 같이 사진을 찍었다. 알고보니 그들은 아르헨티나 청소년국가대표선수였다. 훗날 메시처럼 유명한 선수가 된다면, 값진 사진 자료가 되지 않을까 싶다.
"꼭 대성해라뉴!"
"오홋! 우리나라 선수들이야!"
정해진 관중석에 자리를 잡고 경기장을 둘러보니 국가대표선수들이 한창 몸을 풀고 있었다. 입장하기 전에 지정된 자리를 떠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지만,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하는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마음같아서는 펜스를 훌쩍 뛰어넘고 싶었지만, 무섭게 생긴 안전요원들이 나를 가로 막았다.
"오오옷! 메시다!"
나의 카메라에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인 메시가 포착되었다. 새벽마다 그의 플레이를 TV로 시청하며 감탄하였는데, 이순간 바로 코 앞에 그가 있었다. 비록 오늘은 우리의 적이었지만, 축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컨디션이 안좋기를 빌고 또 빌었다.
"오호! 가츠 왔어!"
스포츠기자로 보이는 낯선 외국인이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신기해보였는지 나를 향해 렌즈를 들이밀며 셔터를 눌렀다. 그 때만 하여도 분명 나를 찍는 줄 알았는데, 지금 다시 보니 뒤에 있는 미모의 관중을 찍는 게 아닐까 싶다. 나 같아도 당연히 그랬을테니 말이다.
"경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경기시간이 다되었고, 스포츠기자들은 저마다가 좋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가고 있었다. 그들이 메고 있는 대포같은 망원렌즈, 하나같이 자동차 한 대 가격이었다. 혹시라도 하나 흘리고 가지 않았나 살펴보았지만 다들 목숨처럼 애지중지 하였다.
"언제 어디서나 빛나는 태극기!"
붉은 악마의 마스코트인 대형 태극기가 사커시티에 등장하였다. 아르헨티나 관중들은 대형 태극기를 보며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인원이 부족하여 지난 월드컵처럼 카드섹션은 할 수 없었지만,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며 승리를 각오하였다.
"리오넬 메시!"
전광판에 메시가 등장하자, 사커시티는 환호하는 팬들의 함성으로 뒤덮혔다. 역시 그의 인기는 인종과 장소를 초월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그에 못지 않는 최고의 선수가 있지 아니한가?
"캡틴 박 지 성!"
그러고 보니 박지성 선수의 뛰는 모습을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뿐만 아니라 기성용, 이청용, 이영표, 박주영 등 하나같이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축구선수들이지 않은가? 내심 이변을 바라며 열심히 응원하였다. 문득 관중석의 모습을 담기 위해 몸을 돌렸는데, 낯익은 얼굴이 눈에 보였다.
"저..저 아저씨는?"
"예쁘게 찍어!"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축구 광팬, 호랑나비의 주인공인 김흥국 아저씨도 연신 커다란 부부젤라를 불며 관중석에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냉큼 달려가서 기념촬영을 부탁하였을텐데, 지금은 기념촬영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열심히 대한민국을 응원해야 한다.
"오 필승 코리아!"
열띤 응원이 펼쳐지는 가운데 아르헨티나의 매서운 공격이 시작되었다. 순식간에 2골을 성공시키며 경기장은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누나! 너무 용감하신 거 아니예요!"
비록 경기는 지고 있었지만, 붉은 원정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연신 대한민국을 외치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 때였다. 이청용 선수가 매처럼 파고들어 추격의 신호탄을 아르헨티나 골문에 쏘았다.
"오오! 대박이야!"
만회골과 동시에 곧 전반전이 종료되었고, 사커시티는 양 팀을 응원하는 응원단의 함성으로 떠나갈 듯 하였다. 나 또한, 전반내내 열정적으로 응원하다보니 잠시 휴식을 가지고자 빈 자리에 앉았다. 후반전 전략을 예상하며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경기장에 한 무리의 여성들이 뛰쳐 나왔다.
"뭐지? 훌리건인가?"
"치...치어리더잖아!"
예상치 못한 치어리더의 등장에 나는 본능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녀들 앞으로 다가갔다. 쉬는 시간이라 그런지 안전요원들도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기에 쉽게 이동할 수 있었다. 아름다운 그녀들의 치어리딩을 보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렀다. 한참을 넋놓고 구경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바라보니, 이 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 아니었다.
"오 마이 갓! 아르헨티나 응원단 한가운데잖아!"
그제서야 주변에는 아르헨티나 응원단 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였다. 내 얼굴만한 팔뚝을 가진 아저씨들이 아르헨티나 국기를 흔들며 신나게 응원하고 있었다. 분명히 웃고 있는 거 같은데, 내가 느끼기에는 흡사 나를 잡아 먹을 듯 보였다.
"일행인 척 해야 돼!"
나는 잽싸게 주변을 둘러보았고, 마침 아리따운 아르헨티나 누나가 눈에 띄였다. 앞 뒤 가리지 않고 다가가서는 불쌍한 표정으로 같이 사진을 찍자고 말하였다.
"당신의 나의 구세주!"
흔쾌히 기념촬영을 허락한 이름 모를 그녀에게 감사를 전한다. 그리고는 자연스레 왔던 길을 되돌아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이윽고 시작된 후반전,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 무산되고, 되려 추가골을 실점하며 승부가 결정되었다.
"1:4 패배!"
안타깝게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찬스를 놓치지 않았고, 경기 종료까지 최선을 다해 대한민국을 압박하였다. 그렇게 사커시티에서의 경기는 아르헨티나의 승리로 결정되었다.
"괜찮아! 괜찮아!"
비록 경기는 패하였지만, 붉은 악마들은 자리를 지키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뛰어준 국가대표들을 응원하였다. 경기장을 꽉 채운 아르헨티나 관중들은 썰물 빠지듯 나갔지만 우리들은 차마 쉽사리 발길을 돌리지 못하였다. 나가는 관중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며 서로 고생하였다며 격려해주었다.
"고생하셨습니다!"
"대한민국 파이팅입니다!"
비록 경기에 패하였고, 생전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단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유 하나로 뜨거운 악수를 나눌 수 있었다. 가뜩이나 불안한 치안 속에서 펼쳐지는 월드컵이다 보니, 어느 때보다도 원정 응원단의 규모가 작았다. 그렇기에 더욱 반가웠고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 날 경기장에서 보여 준 대한민국 붉은 악마들의 모습은 결코 패배자가 아니었다. 누구보다도 축구를 사랑하고 자신의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는 세계 최고의 멋쟁이들이었다.
"16강은 조국에서 응원하겠습니다!"
내일 새벽 치러지는 나이지리아전, 그 곳에서 대한민국의 사상 첫 원정16강이 결정된다. 평일 늦은 새벽시간이라 부담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필살의 응원을 각오해본다. 아니 꼭 16강에 가지 못하여도 괜찮다.
그저 한마음이 되어 나의 조국, 대한민국을 마음껏 외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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