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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보기
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평온한 토요일 오전이다. 당시 토요일은 격주로 쉬고 있었는데, 일병으로 진급하는 05년 7월부터 전면 휴일로 바뀌었다. 그래봤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완전군장 산악행군을 하기 일쑤였다. 휴일 오전, 완전 군장을 메고 천고지를 찍고 오는 일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제발 토요일 오전에 근무 좀 넣어주세요!"
고로 병사들은 토요일 오전에 근무서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랬다. 하지만 선임 근무자의 짬에 따라 근무시간이 결정되었기에 누구와 근무를 나가는 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었다.
"이상병님 근무입니다!"
"오호! 그래?"
"너무너무 행복합니다!"
"후훗! 나를 찬양하라!"
당시 병장진급을 한 달 앞둔, 상병 7호봉의 빛나는 이상병! 그가 나의 구세주였다. 근무투입을 준비하면서 이렇게 행복한 적이 또 있을까? 나는 연신 어깨춤을 추며 근무를 준비하였다.
"이노무색히! 고참들은 뺑이치러가는데 좋아? 좋아?"
"아닙니다아!"
"이걸 확! 어쭈! 이빨 보이네? 어디 물일병이 이빨 보이게 되어있나?"
"아닙니다아!"
갈굼을 받아도 마냥 좋았다. 잠시후, 그들은 무더운 한여름에 완전군장을 메고 산을 타고 있을 운명이니깐 말이다. 나와 그들이 가는 길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야! 빨리 투입하자! 불안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5중대 막사 바로 옆에 있는 대대탄약고로 근무투입하였다.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우리와 근무교대를 하는 선임근무자들의 눈빛을 말이다. 그들은 이제 복귀하자마자 바로 군장을 꾸려 부대 뒷산으로 향할 것이다. 지휘통제실로 돌아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애처롭기 그지 없었다.
얼마나 근무를 서고 있었을까? 막사 쪽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내무실에서는 이등병들이 뛰쳐나와 연신 큰소리로 전파를 하기 시작하였다.
"금일 산악행군 취소랍니다! 산악행군 취소입니다!"
".........."
"ㅅㅂ! 괜히 근무 넣어달라고 했잖아!"
전파를 들은 이상병은 연신 투덜거리며 전투화로 바닥을 차기 시작하였다. 당시 대공초소와 동시에 운용되었기에 이상병은 대공초소에 올라가 있었고, 나는 대공 초소 바로 밑에서 경계근무를 서고 있었다. 주간 근무에는 P-96K 무전기와 쌍안경을 항시 휴대하고 있다. 이론상으로는 대공초소에 있는 이상병이 쌍안경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현실은 나의 목에 덩그라니 걸려있다. 원래 군대는 이론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보기보다 꽤나 무거워!"
군용스러운 쌍안경은 꽤나 무거운 편이다. 게다가 강렬한 여름햇살이 서서히 나를 향해 비추고 있다. 갑작스런 산악행군의 취소로 인해 경계근무가 오히려 안습이 되어 버린 상황이다. 대대탄약고 초소 좌측으로는 대대탄약고가 위치하고 있었고, 전방으로는 위병소, PX, 부대 주차장, 지휘통제실, 야외화장실이 있다.
투입할 때만 하더라도 서로 자축을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는데, 어느새 이상병과 나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멍하니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위병소에서 힘찬 경례 구호가 들려온다.
"얼레? 이상병님! 면회객들 오는 데 말입니다!"
"면회객?"
당시 토요일 오전이었기 때문에 부대에는 장병들의 가족, 친구들이 면회를 오곤 하였다. 그나마 강원도 깊은 산 속에서 민간인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다.
"어어! 여자사람들인데 말입니다!"
"진짜? 예뻐?"
"어디보자! 오오! 최상급이지 말입니다!"
"진짜? 몸매는?"
"군인 아찌들 방가!"
주로 가족들이 많이 왔지만, 때로는 여자친구와 그녀의 친구들이 단체로 놀려오기도 하였다. 다들 들은 정보가 있어서일까? 하나같이 개념면회복장을 착용하고 방문해주는 센스를 발휘하였다. 조금전까지만 하더라도 무겁다고 투덜대던 쌍안경을 보물인 마냥 손에 꼭 쥐고 연신 그녀들을 관찰하였다.
"빨간 나시에 스키니 입은 여자가 대박이지 말입니다!"
"야! 됐고! 쌍안경 가져와!"
"잘못들었습니다?"
"아나! 미친 거 아냐? 빨랑 가져와!"
"어흐흑흑ㅜㅜ"
출처 : [대한민국육군 사진기록프로젝트 ARMY INSDIE]
그렇게 우리는 잃어버린 웃음을 되찾았고, 전방에 있는 주차장을 뚫어지랴 바라보며 경계근무에 최선을 다하였다. 행여 우리 쪽에 위치한 야외화장실로 오기라도 한다면, 괜시리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음부터는 A급 전투복 입고 근무투입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근무중 이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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