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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시간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그때그때 기억나는 사건을 재구성하여 작성하고 있습니다. 고로 예전 글을 안 읽으시고 바로 보셔도 무방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으신 분은 윗부분에 위치한 지난 글보기를 이용해주세요!
"매월 1일과 15일은 쓰레기 분리수거의 날입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스피커폰으로 재차 방송을 하고 있다. 어느덧 쓰레기 분리수거는 전혀 이상할 게 없는 하나의 풍경이다. 그러나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물건을 살 때는 쉬워도, 막상 버릴 때는 남 몰라라 하기 일쑤였다.
문득, 군시절이 떠올랐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철저하고 완벽하게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는 곳? 당연 군대라고 말할 수 있겠다. 군대에는 일반 쓰레기 용역차량이 들어오지 않는다. 철저하게 군인들이 분리수거를 하여, 분출하여야 한다. 재활용 가치가 있는 품목은 재활용업자에게 내다팔아서 복지비용으로 충당하고, 일반쓰레기는 군용트럭에 실어서 바로 매립지로 직행한다.
"목숨걸고 분리수거하는 곳!"
그렇기에,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캔이 있어야 할 곳에는 캔이 있어야 하고, 스티로폼 또한, 깨끗이 씻어서 본래의 색, 흰색으로 재탄생 되어야 한다. 우유팩도 깨끗하게 씻어서 정확하게 펴서 차곡차곡 쌓아올린다. 항상 말했지만 군대는 각이 생명이기에, 쓰레기 분리수거장도 얼핏보면, 대형마트 상품진열대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전시되어 있는 듯한 착각이 들곤 하였다.
그러나 100여명의 중대원들이 매일 같이 쏟아내는 쓰레기의 양의 꽤나 많았다. 아침마다 마시는 우유, 근무 마치고 먹는 라면, 각종 부식과 간식, 각종 생활쓰레기까지 늘 쓰레기 분리수거장은 가득 차 있었다. 평소에는 중대별로 모아두었다가 정기적으로 대대 분리수거장으로 옮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대 밖으로 분출하는 시스템이다.
자신의 내무실은 생활하는 소대원들이 직접 청소하지만. 중대 분리수거장은 다 같이 이용하기 때문에 소대마다 3명정도 차출하여 청소를 하였다. 그러나 각종 쓰레기를 맨손으로 만지며 하는 작업이기에 주로 일, 이등병 위주로 투입되었다. 고로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의 왕고는 일병이었다.
나도 일, 이등병 시절, 자주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다. 사실 손으로 더러운 것을 만진다는 점이 에러였지만, 마음만큼은 편하였다. 무엇보다도 상, 병장들이 없기 때문에 분위기도 화기애애하였고, 타 소대원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타 소대 동기들과 담배도 피우며, 편하게 대화를 나누곤 하였다. 그리고 일찍 청소가 끝나면, 커피 내기도 꽤나 솔솔한 재미였다.
그렇게 쓰레기 분리수거장에서의 추억을 뒤로 하고 상병이 되었고,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갈 이유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당직사관은 내일로 계획되어 있는 사단 위생검열을 대비하여 위생점호를 취한다고 하였다.
"오 마이 갓!"
2009/06/02 - [가츠의 군대이야기] - 가츠의 군대이야기, 위생검열
대략 위 글을 참고해보면 어떤 분위기인지 알 것이다. 내무실에 먼지 한 톨이라도 나오면, 그 날은 잠을 다 잔 날이다. 고로 병장들까지 가세하여 빡세게 점호청소를 해야한다. 딱 봐도 힘들어 보였다. 순간 분리수거하러 가는 윤일병과 그의 잔당이 보였다. 순간, 묘책이 떠올랐다.
"야 윤일병!"
"무슨 일이십니까?"
"너 이따가 근무나가야 되잖아! 그냥 여기 이따가 근무투입 준비나 해!"
"오호! 왠일이십니까?"
왠일이긴, 쓰레기 분리수거장에 가서 짱박힐려고 그러는거지! 나는 이등병들을 데리고 분리수거장으로 갔다. 이미 그 곳에서 타 소대에서 온 후임들이 모여 있었다. 윤일병보다 한 달 선임인 2소대 장일병이 한껏 폼을 잡으면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장일병 뒤로 다가가서 우렁차게 경례를 하였다.
"이기자! 사랑합니다!"
"어 그래!"
장일병은 보지도 않고, 건들거리며 손사래를 쳤고, 나는 살며시 그의 손을 잡고는 크게 꺽어주었다. 그제서야 나를 확인하고는 깜짝놀라 크게 경례를 하였다.
"우리 장일병! 간지나! 어우씨 병장인 줄 알았네!"
"아닙니다아!"
"됐고! 빨랑 분리수거나 해! 실시!"
"알겠습니다!"
그렇게 나의 지시에 따라 다들 일사분란하게 분리수거를 실시하였다. 사실 별 거 없다. 이 시간이 되면, 각 소대 내무실, 행정반, 화장실에서 쓰레기통이 실시간으로 배달된다. 그럼 바닥에 모두 모아놓고는 일일이 분류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숙달되지 않으면 시간이 지체되겠지만, 매일같이 하는 군인들이기에 모두 달인의 경지에 올랐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절대 쓰레기가 더럽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거침없이 손으로 집어서 분류를 해내야 된다. 물론, 화장실 쓰레기 같은 경우에는 딱히 분리수거를 할 필요가 없기에 다이렉트로 일반쓰레기로 가니깐 그렇게 더러운 것도 없다. 물론, 가끔 삑사리나서 만질 때도 있지만, 그냥 운명이려니 해야한다.
"요즘에는 손이 보이는구나?"
"잘못들었습니다?"
"나 때는 손이 안보였는데! 군대 많이 좋아졌어! 좋아졌어! 그쟈?"
"아닙니다아!"
"장일병! 나 심심해! 웃겨줘!"
"헐! 애들도 보는 데, 이러시면 곤란하시지 말입니다!"
"호오! 우리 장일병님 눈에는 애들만 보이고, 고참은 안보이나봐! 미친거지!"
"호잇!"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후임들과 신나게 놀면서 철저하게 관리감독하고 있었다. 역시 쓰레기 분리수거장은 훈훈한 곳이었다. 내무실에 있었다면, 병장들의 까탈스러움에 이미 지쳐 쓰러졌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만족해하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고는 입에 물었다.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순간, 퇴근한 줄만 알았던, 행보관이 나타났다. 걸어오는 폼만 보아도, 그의 기분을 유추할 수 있었다. 그는 지금 매우 화가 나 있었다.
"이기자 사랑합니다!"
"사랑은 개뿔! 내일이 검열인데 여기 이렇게 쌓아 놓으면 어떡해! 당장 다 내려!"
"지금 말씀입니까? 어차피 내일 쓰레기 또 나올텐데, 그 때 내리면 안되겠습니까?"
"군대 많이 좋아졌다! 이제 나도 옷 벗을 때가 되었군! 가서 니 분대장 좀 오라고 해!"
"맡...맡겨만 주십시오! 제가 다하겠습니다! 충성을 맹세합니다!"
예상 밖의 복병이었다. 당장 대대 분리수거장으로 모두 옮기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떠나지도 않고, 우리를 닥달하며 계속 지시하였다. 말년병장도 때려잡는 행보관 앞에서는 일개 상병인 나는 한낱 온순한 양일 뿐이다. 그때부터 두팔 걷어붙이고, 이등병마냥 신나게 쓰레기를 들고 뛰기 시작하였다.
그날밤, 윤일병은 내 마음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내게 연신 고맙다고 하였고, 고참들은 쓰레기냄새 난다며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하였다.
머리 굴리다가 자칫 몸이 구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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